원치 않는 실직에 대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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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튜브에 50대 초반에 원치않은 실직을 하게 된 이야기가 추천으로 떴다. 보고 나니 뻔한 이야기임은 분명한데 뒷끝도 좋지 않고 계속 마음에 남아있는 게 영 기분이 안좋았다. 때마침 주변에서 실직해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좀 있는 상황이다보니 더더욱 남 이야기 같지 않고, 대개 그런 이야기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넌 준비 됐냐? 날 봐. 난 아무 준비 안하다가 쫄딱 망했어..’ 이런 흐름이라, 사실 ‘넌 (원치 않은 실직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냐?’라는 질문에 ‘응 언제든지..’란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흔할까 되려 묻고 싶다.
누구든 원치 않은 시점에 은퇴하고 싶지는 않을 거다. 나의 직장 생활 대부분의 시간도 ‘짤리지 않기 위해’ 애쓰다가 대부분 흘렀다. 열심히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그냥 매일 매일 간신히 면피할 정도로만 해도 되는 건데 쓸데없이 열심히 했단 말이다. 진짜로 잘릴 것 같은 위기가 와서 그랬다기 보단 그냥 스스로 기준을 세워두고 그 기준에 미달하면 ‘나라도 자르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랬던 거다.
물론 상황이 좋으면 엉터리로 살아도 안잘리고 상황이 안좋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린다. 내 짧지 않은 직장 생활에서 그런 경우는 수도 없이 봤으니까. 그러니까 ‘저렇게 개판쳐도 안잘리네..’, ‘아 저 사람은 들어온지 얼마 안됐는데 바로 잘리네..’ 뭐 이런 거다.
누군가를 회사에서 말 그대로 자르려면 그 과정이 쉽지 않다. 그러나 회사 상황이 안좋아서 대량 감원을 해야할 때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게 또 쉽게 가능해진다. 그런데 그런 시기라는 게 쉽게 예측이 불가능해서 원치 않은 시점에 일어나게 된다는 거다.
최근의 경우를 예로 들어봐도 팬대믹이 끝나갈 쯤 되니까 회사에서 거의 묻지마 채용을 해댔다. ‘이런 사람도 뽑나?’ 싶을 정도로 마구 뽑아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 때문에 도리어 일하기 힘들어지기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얼마 가지 않아서 상황이 안좋다며 그때 들어온 사람들의 대부분을 도로 내보냈다. 내 기억에 그들이 머물다 간게 2년이 채 안되었지 싶다. 그러니까 상황이 한참 좋을 때 와장창 뽑아놓고 그 약발이 다 하기 전에 내보냈으니까 당사자들은 사실 좀 ‘뜬금없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신기하게 좋았던 시절과 나빴던 시절의 구분이란 게 좀 애매해서 상황이 좋은가 싶으면 나빠지고, 나쁘구나 하면 어느새 좋아지고 이런다. 그러니까 원치 않은 실직에 대처한다는 것은 스팟성으로 일어나야 하는 게 아니고 늘상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다. 사실 그 말인 즉슨 당장 오늘 관둬도 될만큼 뭔가가 준비가 되어있어야 된다는 건데, 아니 그럴 거면 자발적으로 관두거나 해서 하루라도 새로운 일을 빨리 시작하는 게 맞지 회사가 날 잘라주어서 내가 새 일을 하게끔 만들어야 되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도 되는 거다. 그냥 내게 좋은 일이 생겨나면 적당히 준비가 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이륙해야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난 대대적인 세대의 물갈이가 AI에 의해서 곧 일어나리라 보고 있다. AI를 잘 이해하고 잘 쓸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뉘어진다거나 아니면 AI에 의해서 쉽게 대체되는 혹은 여전히 대체가 안되는 사람들로 나뉘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말이 그렇지 그냥 몇 % 감원하자고 합의가 이루어지면 AI고 뭐고 그냥 그대로 감원 될 거라 본다. 갑자기 내가 AI expert가 되었다고 한들 상황이 달라지겠는가? 그렇게 되면 또 어떻게든 살아내야지.
그 AI라는 게 실상 deep learning에 대한 것으로 흘러가고 그 deep learning이란 것은 어찌보면 ‘묻지마’식의 설계를 통해서 얻어진 어떤 블랙박스 같아서 몇 개의 node, 몇 개의 layer, 그리고 어떤 구조의 NN으로 되어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엄청나게 복잡한 곱셈/덧셈의 묶음에 엄청난 양의 weight로 그 결과를 응축해놓은 것이라 사실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어도 그걸 쉽게 아무렇게나 아무나 굴려서 쓰기란 쉽지 않다. 다루는 문제가 복잡해지면 흔한 PC 한 두대로 해결이 안될 수도 있고 말이지.
대개는 자신이 가진 PC 한대도 제대로 다룰까 말까한 사람들이 수십대의 PC 혹은 많은 GPU를 써야 풀어낼 수 있는 문제들을 풀기 위한 NN를 설계/학습 시키라고 하면 뭐랄까 이게 단숨에 적응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거다.
또 어떤 경우는 기존에 많은 이들이 쌓아놓은 이론들이 탄탄하게 있는데, 거기에 묻지마 deep learning network이 들어와서 이론이고 뭐고 그냥 모조리 대체해버리는 거다. 그러니까 잘나간다는 박사님들 모셔다가 퇴직할 때까지 월급 줄 필요가 없이 그냥 좀 전기 많이 쓰는 기계로 대체 시켜버리는 거다. 박사님들이 뭔가 더 성능과 품질을 개선할 이론을 만들어내고 아이디어를 내게 하는 대신 그냥 일어날 모든 현상들을 데이터로 만들어서 기계에 학습시켜버리는 거다. 아무리 못해도 신경망은 그 수많은 discrete한 데이터 간의 extrapolation/interpolation은 할 수 있다. 그게 hallucination이든 뭐든. 그러니까 어떻게든 답을 낸다는 거다. ‘아 이건 전혀 예외의 상황이라 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 아닌 거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제 아무리 어려운 원리와 이론을 머리로 이해하더라도 교과서를 통째로 달달 외워서 시험 보는 것에 비할 바 못 된다. 달달 외워서 보면 여유있게 ‘올백’을 맞을 수 있지만 되지도 않는 원리와 이론이나 생각하다가 들어가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교과서 문장 몇 개에 허를 찔리게 된다.
이름을 댈 수 없지만 당시 전국 수석으로 입시를 통과한 내가 아는 누군가가 (교양) 영어 시험을 대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에도 정말 순진하기 그지없던 나는 시험장에 겨우겨우 시간 맞춰 땀 뻘뻘 흘리면서 들어가서 들리는 대로 듣고 답을 써내려갔는데, 그 속도가 말도 안되게 너무 빨라서 다 적어내기도 힘든 지경이었던 반면, 그 친구는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고 들어가서 여유있게 답을 쓰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그렇게 대학 생활을 ‘외우기’로 수석을 놓치지 않으며 잘 버텼다. 쓸데없는 고집 피우지 말고 외워야 하는 것이 가장 좋을 때는 닥치고 외우는 게 상책인거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러니까 원리를 학습해서 답을 내고 그것을 응용해서 더 좋은 답을 내고 하던 시절이 다 가고, 과정과 상관없이 어떻게든 가장 좋은 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서 해내기만 하면 그것이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절이란 거다. 방법이야 뭐가 되었든 가장 좋은 답이 나오면 되는 거다. 원리학습을 하고 실험해서 나온 현상을 분석하고 하면서 배우는 것은 다 옛날 고리타분한 학습법이라는 거다.
생각해보면 이런 세상에 변화에 대해서 진작에 시간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AI로 세상이 변화한다고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한 게 10년도 더 전부터 시작되었으니까 말이다. 그와 반대로 다 철지난 이론들을 제대로 공부한답시고 그때부터 다시 새로 시작했던 사람들도 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그들의 노력과 상관없이 도태되는 사람들은 도태되고 간힌히 따라잡는 사람도 있고 급부상되는 사람들도 있게 되겠지. 그런 모습을 한 두 번 보고 산 것도 아니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다. 사람이란 게 무슨 멀티코어 CPU도 아니고 분산 시스템도 아닌데 어떻게 한 가지 일에 집중한 상황에서 비슷한 중요도의 다른 일을 준비할 수 있나? 이거 저거 잘한다고 하다가 전부 다 죽도 밥도 안되는 수가 더 많다. 비록 한 분야에 진심으로 몰두해서 열심히 하다가 원치 않은 최후를 그곳에서 맞이하게 되더라도 난 차라리 그게 낫다고 본다.
‘내가 내 우물을 파지 못하면 내 인생은 남의 우물을 파주는 데 이용된다.’ 뭐 이런 류의 말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은데, 내가 나만의 우물을 파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되었으니 남의 우물을 파주면서 적당한 양의 물을 얻어먹고 살아온 거다. 이미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살아오고 난 뒤에 뒤늦게 마치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나에게 그 우물의 소유권이 1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처럼 행동하지 말란 거다.
그저 누군가가 성공한 스토리에만 주목하다 보니 뭔가 내 길을 빨리 찾아서 진작부터 ‘노력만 했으면 잘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이 길이 내 길이구나 싶어 혼자 우물을 파다가 잘 안되서 망해버린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건 잘 모른다. 남의 우물을 파다가도 잘 될 놈은 잘 되는 거고 내 우물을 잘 파내려가다가도 안될 놈은 그냥 안되는 거다. 안되는 놈의 수가 잘 되는 놈의 수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잘된 놈이 한층 돋보일 수 밖에 없고. 누구든 그의 성공이 그가 들인 노력에 온전히 비례한다고 생각하고 싶겠지.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남의 인생이 한없이 부럽고 내가 살아온 경로는 한없이 초라해보이는 모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