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염려증 (hypochondria)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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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강력한 감원의 바람이 불고 있는지 뭔가 후방의 풀 한포기에 불과한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layoff 되진 않지만 곧 자신들이 대상자가 될 것 같은 해직염려증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있다.
불과 몇 주전에 자신 만만한 얼굴로 나에게 ‘여태 그 회사 다니고 있어요?’하며 나의 무능력함을 일깨워주던 X텔에 다니던 그 사람은 어찌 지내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들리는 소리에는 엄청난 감원 바람에 지금 바짝 쫄아있다고 하는데, 오늘 돌아다니는 뉴스를 보니 다들 이 때다하고 작정이라도 했는지 여기 저기서 엄청난 수의 감원을 하겠다고/했다고 한다. 잘 들여다보면 이미 8월에 감원을 발표했거나 최근에 감원이 실제로 이루어졌거나 하는 소식이다. 공개적으로 발표했는데 실행하는 데 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것인가 싶은데, 내 경험으로 보면 여태 발표안한 감원이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그래서 감원된 사람들도 꽤 많고), 또 감원하고 나중에 발표하는 경우도 많았어서 이 감원 바람이 그냥 늘상 일어나는 사람들 내보내기와 뭐가 크게 다를까 싶다. 그러나, 오늘 보이는 이 뉴스는 꽤나 신경이 쓰인다.
여태 이 동네에서 일했으면 지금쯤이면 그쯤 아무것도 아닐 보살이 되어있어야 할텐데 여전히 일희일비하며 살고 있으니까 나란 중생은 어딜가나 이 모양이구나 싶고.
이제 살아남으려면 ‘아니 이런 걸로 뭘 어떻게 일을 한다는 건가’ 싶은 것도 다 붙잡고 있고 할 줄 안다고 해야 되는 시대다. 과거에 뭘했고 뭐 어떤 걸 잘했는지 따위 의미 있을까? 운 좋아서 새로운 것을 하겠다고 제대로 펀딩 받은 곳이 아니면 다들 힘들어 할 수 밖에. 밖은 시베리아보다도 더 추운 것 같다. 다들 따뜻한 집 안에서 엄동설한인 창밖을 내다보며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같다.
흔히 이런 상황이 오면 하는 말이 있다. ‘그러게 시절이 좋을 때에 진작에 네가 네 살 길을 마련했어야지. 그래도 좋은 시절에 스스로 사업을 일으켜서 뭔가 했으면 이런 시절에 살아남는 것 쯤 걱정 안해도 될 거 아니냐’는 말이지. 글쎄, 호시절에 밖에 나가서 뭔가를 차렸더라도 한방에 대박을 낸 게 아니라면 그것은 잘해야 여전히 허름한 텐트에 불과했을텐데, 그안에서 어떻게든 어떻게든 잘 해 나갈거야 손 꼭 붙잡고 살고 있었더라도 이런 엄청난 눈보라가 오면 가장 먼저 날아가서 실종됐을 게 뻔한데 말이지.
어디에 있든 그냥 힘든 상황이 오면 오는 그대로 맞이 할 수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그런 상황이 오면 그때 살 길을 찾아보는 것 뿐.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는 것에 어찌 저항한단 말인가. 그래도, 아무리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그 상황이 되면 그냥 다 살아진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좋았던 시절에 비하면 괴롭겠지만, 매일 매일 너무 행복해서 감사하단 말이 절로 나왔던 시절도 있었으니 매일 매일 너무 괴롭고 힘들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시절도 있을 수 있다. 매일 매일 시달리던 잡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오로지 내 생존에만 집중하게 되겠지. 그래도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어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