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염려증 (hypochondria)...

hypo라는 접두어(?)와 hyper라는 접두어가 있다. 전자는 부족하다 모자르다라는 뜻이 있고 후자는 과다하다 라는 뜻이 있어서 언뜻 생각하면 건강염려증에 대한 단어가 hyper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hypo로 시작하네 할 수 있을 것 같다. 찾아보니 “under the cartilage”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잘은 알 수 없으나 마음속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다 보니 under - hypo가 된 거라고 이해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뭔가 마음에 불안함이 크게 찾아오면 우울해지거나 건강에 대해서 쓸데없이 크게 염려하게 되거나 하는데 그게 지나쳐서 ‘장애’의 수준으로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나의 건강에 대해서 염려하는 게 이를테면 의사가 이야기하는 것도 믿지 못하고 스스로 큰 병이 있다고 혼자 우겨대는 수준이라면 말 그대로 hypochondria가 되겠지.

나한테는 대략 이게 보름 전쯤 찾아온 듯한데 뭔가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기분이 들면서 살빼기를 일단 시작하고 이런 저런 부분을 체크해나가고 있는데, 그 덕택에 기본적인 수치들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동안 살아오던 모든 생활 스타일을 전부 접고 일단 수행자 수준의 생활 모드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이젠 내가 충분히 건강 상태가 좋으니까 살짝 오버해도 되겠지 하고 나 하고 싶은 대로 가끔씩 살 수도 있다가 아니라 무조건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을 가져올 행동은 애초에 전부 다 싹을 끊어야지 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거다.

나중에 뭔가 상태가 악화되고 나서 과거의 나를 탓하든 건강하지 않은 유전자를 물려줬다며 조상을 탓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스로만 불쌍하게 만들 뿐. 그래도 발달된 현대 의학 덕택에 수시로 나의 몸 상태를 알 수 있고 비록 얼마되지 않은 feature를 가지고도 향후의 몸의 변화를 짐작하여 호전시켜 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마련되어있다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지 싶다. 뭐랄까 나 자신이 안좋은 식습관이나 나이라는 것을 이겨낼 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버리게 되었달까?

오랜만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건강한 몸을 물려주셨는데 관리를 잘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말씀드렸다. 당신들은 현재 연세에도 별 탈 없이 잘 살아오셨는데, 훨씬 어린 나이에 이런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보니 도대체 뭘하고 살아온 건가 한심한 마음이 들었다.

딱히 따져보면 뭔가 몸이 잘못되도록 살아오기보단 무엇이 몸에 좋을까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몸에 좋을까를 더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술보단 살빼기, 과식보단 절식/단식을 하려고 애썼던 것 같지만 나이가 들고 그것이 유전적인 한계를 만나면 그냥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구나 싶다.

나의 몸의 변화를 나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극복해서 모든 수치를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대단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삶이 어느 시점부터는 수명 연장을 위한 활동으로 채워지는 것 같아 보기 안쓰럽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현대 의학에서 ‘병적인’ 상태로 분류하는 경우를 원래는 ‘건강한’ 상태인 것인데 제약회사의 농간으로 병적인 상태로 분류하게 되었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경우도 본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수 많은 의사들이 경고하는 상황은 분명히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자. 치료를 받고 안받고도 본인이 결정할 일이지만, 그 사람들이 왜 자신의 에너지를 써가며 경고하고 있는지는 잘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건강한 내가 그럴리가 없어…’

하는 마음은 잘 알겠다. hypochondriac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겠지만 세상일이건 내 몸이건 다 내 맘대로 안된다는 것은 좀 깨닫아야 하지 않을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