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난이도 낮추기...

이미 말했던 바와 같이 인생의 난이도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그에 걸맞는 능력이나 대가 없이 이루고자 할 때 급격히 높아진다고 했다. 대개 이것이 요행수라든가 타인의 호의/배려로 대부분 달성되는 경험을 여러 번 해왔던 이들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처럼 무엇을 하든 높은 기대치를 갖게 된다. 기대가 지나쳐 그것이 이루어지게끔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높은 기대치를 갖음으로써 얻게 되는 매일 매일의 실망감은 자신감 없음/불안/우울증을 불러오고도 남음이 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목표와 기대가 너무나도 과하기에 ‘안될지도 몰라’ ‘안되면 어쩌지?’ ‘실패하면 끝이야’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될 만한 목표를 세웠다면 불안감/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자신감이 생기는 게 정상적이다.

혹여 내가 누군가에게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면, 그것은 내가 진정 자신감이 없다기 보단 이루기 힘든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게 습관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를테면 내가 많은 사람들을 인솔해서 어떤 일을 해내야 하는데 그 누구의 불평/불만/사고 없이 완벽하게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내며 일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나는 분명히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나의 목표가 첫번째 시도는 그저 연습게임이라고 생각해서 일이 되면 다행이면 안되더라도 경험이라 생각하자라는 것이었다면 나는 자신감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실패해도 경험이 되는 것이니까.

누군가를 실망시킬 것 같은 두려움도 여기에 한 몫 한다. 어차피 인생에서 주인은 나다. 누군가를 만족시키고 말고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내가 즐겁고 행복한 게 더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살면 그 누군가는 옆에서 살짝 응원하는 폼만 잡아주는 easy rider가 되려고 할 뿐이고 결국 그 누군가의 욕구를 들어주는 노예로 살게 된다. 착각하지 말아라. 그 누군가는 너를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잡아놓고 허덕거리는 일 따위 해주지 않는다. 그냥 다 자기 할 만큼 하는 거다. 안되도 할 수 없고.

결국 인생의 난이도를 낮추는 것은 상대적으로 간단해진다. 그냥 기대를 접고 살아야 한다. 내가 초능력자들이나 해낼 수준의 일을 멋지게 해낼 거라는 착각, 누군가 나의 부탁을 들어줄 것 같은 기대, 내가 뭔가를 잘 해낼 것 같은 기대 등등의 바램을 갖지 않으면 된다.

나는 이런 말에 자유롭지가 못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모든 순간들이 엄청난 내 자신에 대한 기대 -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과 자학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글쎄 기대라기 보단 압박 내지는 강박이라고나 할까? 늘상 ‘이번에 안되면 나는 그냥 이 세상에서 젤 무능력한 실패가 된다’라는 말도 안되는 실패시 시나리오를 써두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모든 것도 내 힘과 노력으로만 이뤄내려 하고 타인의 도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오직 내 힘으로 뭔가 이루겠다는 의지의 삶. 얻어걸림이라든가 행운 따위도 바랄 이유가 없다. 그럴 수록에 한 두 번에 뜻한 대로 안되는 것에 낙심하는 습관을 버려야 난이도가 낮아진다. 나도 그냥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 일 뿐. 그냥 들판의 풀 한포기와 별 다를 바 없다 생각해야 불필요한 기대도 없어지고 쓸데없이 이루기 힘든 목표를 잡아놓고 그걸 이루려고 아둥바둥 허덕거리지 않고 삶을 편하게 살 수 있다.

내 경험상 엄청나게 날 우울하게 만들었던 순간은 대부분 뭔가 엄청나게 좋은 것들을 내 노력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거저얻었다가 도로 다 홀라당 잃게 되었을 때다. 또는 이루기 힘들 정도의 높은 목표를 설정해놓고 요행수로 이뤄놓았다가 몽땅 잃게 되었던 때다. 대개 많은 노력을 통해서도 얻기 힘든 매우 귀한 것을 거저얻게 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당연하게 여기다가 전부 잃게 되면 그 상실감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어차피 노력 없이 거둔 것인데 전부 다 잃는다고 한들 뭐가 문제냐 할 수 있지만 욕심/오만으로 가득찬 인간은 그것을 절대로 거저얻었다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손에 쥐었던 것을 쉽사리 놓고 싶을 리 없는 것이니까.

되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서 얻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된 것에는 되려 담담하다. 이미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과 힘듦을 경험해서 알기 때문에 다시 구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기대를 낮추면 된다. 탄탄했던 직장에서 갑자기 퇴사하게 되더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다.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든 잘났지만 그렇게 되었든. 그것이 나만이 당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매년 수 많은 사람들이 겪는 상황이니까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고. 왜 하필 일잘하고 능력도 뛰어난 내가 이런 상황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생각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새로운 일을 찾아나설 때도 이런 저런 잔머리 굴림 없이 일이 구해지면 구해지는 대로 만족하면 되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기다려보고 또 그렇게 살면 된다.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나 자신을 응원하면 그뿐이다. 어차피 인생의 긴 시간 속에서 당장의 문제는 지나고 보면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기억되게 마련이다. 별 탈 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인생에 대해서 특별한 기대를 거는 것은 그것이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남’의 인생이라고 할 땐 좀 더 객관적이 된다.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를 버리면 문제가 간단해진다. ‘나’의 인생은 소중한 것이고 선택받은 것이라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만 하고 노력한 만큼 특별히 많이 보상 받아야 되고 나는 남들에 비해 각별히 노력을 더하고 그만큼 나는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기대는 올라가고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못하니 실망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 그냥 나의 정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과대망상하고 적당히 이뻐해줘야 할 필요는 있다. 그렇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낙심하지만 않으면 될 뿐이다. 잘 되지 않는 다고 세상이 멸망해버리고 멀쩡했던 내가 갑자기 땅 밑으로 꺼져버릴 리도 없다. 안되면 또 하고 또 안되면 또 하고 할만큼 했다 싶은데 안되면 그만하고 다른 걸 해보면 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그다지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고 잘하다가도 막상 기대가 큰 일이 되고보면 한방에 되지 않는 것에 흥분하고 분노한다.

되려 그렇게 괴로워하고 화를 내는 동안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만 떨어져 나갈 뿐이다. 내 삶의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 그러니까 덜 힘들 게 살려고 기대를 낮출 뿐이지, 나란 사람이 형편없으니까 기대를 낮추는 게 아니다. 한두번에 안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시험이나 어딘가에 응모해서 떨어지는 확률은 매우 높다. 인생에서 뭔가 번트를 대려던 것이 예상치 못하게 홈런이 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뭔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에 대한 비정상적인 기대가 생기게 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