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를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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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에서는 말조심이 최고다. 오랜 친구들과 만나면 여태 그랬듯이 술을 끼워넣는 게 일반적이지만 역시나 술도 최대한 미사지 않는 게 좋다.
간만에 술을 마시면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지만 어디까지나 첫잔이나 그렇고 이내 술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은 곧 약발이 떨어진다. 첫잔만 받아놓고 끝까지 버티는 것도 나는 이걸 수행이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왜 안마시냐고 하는 말을 계속해서 듣고 있어도 영향받지 않고 초연할 수 있는 것도 수행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힘든 이야기, 피곤한 개인사 따위를 터놓는 이들이 있는데, 힘든 심정은 알겠지만 부정적인 주제의 이야기는 다들 피곤해 한다. 그렇다고 도움을 줄 수도 없으니까. 밝고 긍정적인 것도 많이 떠들면 지겹고.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게 물어보고 그냥 듣는 것이다. 물어보고 들어주자.
가까운 이웃인 경우엔 평소 내 사정을 잘 알 수 밖에 없다. 각자에게 최근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주제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사는 곳도 다르고 안보던 동안 생각과 생활 스타일도 다 각자 다르다. 그러니까 물어보고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 말곤 득보다 실이 많아질 뿐이다.
만남의 목적이 뭔가. 오랜만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간단히 정보교환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시시콜콜히 알 필요는 없다.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지나서 보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그저 여태 잘 살고 있으니 이 시점에서 서로가 한번 교차하려고 하는 것일 뿐.
전세계의 사람들을 필요한 때에 온라인으로 소환시켜 말과 이야기를 듣고 일도 하는 시절이지만 오랜 친구들과 그렇게 지내진 않는다. 그냥 몇 해에 한 번 얼굴 볼 수 있으면 다행인 거지.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나는 구나 하는 그 좋은 마음, 약간의 들뜸만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좋은 마음으로 다음에 또 보자 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고. 바쁜 사람들 불러냈으니 최소한 밥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어딜 가도 만나서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 외롭게 지낸 입장이 되고 보면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게 단발로 끝나게 되든 계속 이어지게 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