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데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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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월말이고 금요일이면 한가로운 분위기가 되어야 맞을 것 같은데, 뜻하지 않게 어떤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과제를 해 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 거기에 데드라인까지 밀리다보니 여전히 하긴 싫지만 어쨌든 기분이 편치 않다.
살면서 뭐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걸 하면서 데드라인까지 밀리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는 특히 더 그런 것에 민감하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생각해보면 답은 뻔하다.
너무 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중요하지 않은 걸 알면서 뭐랄까 ‘대충’하면 가장 엉터리로 해서 제출한 사람이 되기 싫기 때문이겠지.
나란 사람도 살면서 수 많은 과제를 제출하기도 했고 제출된 과제를 받아서 평가를 해보기도 하면서 살았다.
과제라는 것은 그냥 과제일 뿐이다. 과제를 안 내주면 그나마 아무것도 안할 것 같으니 과제를 하는 동안 머리를 좀 써봐라 그런 뜻이다. 그래서 좀 생각이라도 하고 나면 조금이나마 달라질 거라 기대하니까.
왜? 궁금하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보면 안다. 말로 떠들고 칠판을 사용하고 PPT를 사용하고 별별 노력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막상 배우는 사람이 뭐라도 한 번 해보는 것과 안 해보고 듣기만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나마 과제를 하는 시늉이라도 하게 만들어야 다음 과정으로 갈만한 약간의 동력이 생긴다. 물론 배우는 사람이 한번 알려주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거나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아무나 다 한번에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난이도의 내용이 아니라면 말이다.
늘상 뭔가를 특별히 잘하진 않지만 (잘 해야 할 의무도 의미도 없다. 해본다는 게 중요하지.) 뭔가 좋은 결과를 얻어야겠으니까 좀 해보다가 좋은 생각이 안 떠오르니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하게 되는 거다.
그냥 매를 빨리 맞으면 후련할텐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하면서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거다.
나는 계획을 짜야한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는 일을 할 때 이렇게 뜸을 들인다. 나 자신을 괴롭히거나 타인을 괴롭히는 뭔가를 하는 게 그렇게나 싫다.
예전의 내가 이랬나? 하면 그렇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라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임무이니까 계획을 세우는 것에만 몰두해서 일을 끝낸다. 계획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니까. 그냥 계획만 생각나는 대로 되는 한 최대로 멋드러지게 세우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뭐라도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실천하는 것을 전제로 두고 있는 것이니까 (안 그러면 계획를 세운다는 일 자체가 시간 낭비다) 계속해서 머리 속에서 모의실험을 해야 되는 거다. 그러다보면 여러 가지 뜻하지 못한 일들, 변수를 생각해야 되니 머리가 피곤해지는 거다.
왜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서 괴로워야 하는가? 내가 배우기로는 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한다 라는 거다. 미리 괜히 걱정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 하게 된다 살게 된다 라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놈의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근심은 다 계획 세우라고 하는 일들을 하면서 우리 마음 속에 찾아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도무지 왜 미래를 대비하는 계획을 짜라고 하는 것인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것을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가면서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 어차피 때가 되면 다 살게 되어있는데.
언제 우리가 에측했던 것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 봤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게 되면 방학 계획이니 하는 거 개학 할 때쯤 되면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죄책감에 한창 시달린 나머지 마침내는 ‘이런 거 왜 만드나’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 않나?
어차피 계획은 계획일 뿐인데 왜 이렇게 심각하냐 라고 할 수 있지만, 글쎄 살아가면서 내가 하는 모든 것들, 그냥 무의미한 걸 하고 싶진 않아서 그러는가 보다.
어차피 간단하고 현실적인 계획만이 계획의 의미를 가진다. AI에게 물어봤더니 너무나도 거창하고 실현 불가능 할 (1% 라도 실현의 가능성이 있긴 하다) 것들만 현란한 단어의 조합으로 뿜어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만 그렇지 않으니 어쩌겠냐.
하도 황당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달라고 했더니 뭐랄까 더 힘든 이야기들이 나왔다. 뭐랄까 모든 내용을 읽어보면 다들 그럴싸 한 이야기인데 한마디로 너무 fancy했다. 말 그대로 된다면 너무 너무 좋을 그런 계획. 그러나 현실의 나와는 꽤나 거리가 있는 그런 계획.
결국 AI의 도움 따위는 다 개나 줘버리고 그냥 솔직하게 적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로. 누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Get out of your comfort zone!
언뜻 들으면 꽤나 그럴싸 하다. 쉽게 말해 모험을 하라는 거다. 그래야 너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다 라는 솔깃한 말이다.
나는 반대한다. 기회가 되면 자연히 이렇게 된다. 당장에 그러지 않아도 되면 너무 고생하며 살 필요가 없다. comfort zone에서 벗어나는 것은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혹여 나중에 잘 안되게 되면 변명은 가능할 수 있겠다. 내가 매일 같이 내가 새로운 환경에 나를 내몰아 혁신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실패자가 되지 않았을텐데 하면서 말이지.
Innovation이라는 말은 참 보고 듣기는 좋다. 그렇게 하려면 너무 스트레스 받는 게 문제지. 그래도 나는 이제 좀 편히 살련다.
구태여 혁신하지 않아도 되면 그대로 사는 게 좋다. 이렇게 저렇게 훨씬 좋은 방법론을 들이대면 그걸 따르기 싫다는 말을 계속 듣고 살아야 한다. 좋게 이야기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오랫동안 있어왔던 곳을 벗어나면 나는 어떻게든 혁신하게 된다. 스트레스 오지게 받으며. 안 그러면 생존하기 힘드니까.
그런데 이미 나도 지겨울만큼 혁신했다. 이제 좀 쉬고 싶다. 편안하게 놀고 먹는 거야 천성이 방해하고 있어서 어렵겠지만. 여태 혁신한 것만으로 그냥 먹고 살련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 나는 계획을 세우는 과제가 가장 피곤하다.
- 계획을 세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미래를 내다보는 기능이 있다면 이런 거 안해도 된다.
- 그래도 계획을 세우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막연히 시간만 흘려보낼까 걱정되서다.
- 막연히 시간만 흘러보내는 것 따위는 없다. 어떻게든 뭐라도 하면서 산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러니까 계획 같은 거 세우라고 누가 스트레스를 주거든,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작성하고 빨리 끝내라. 나처럼 고통받지 말고. 불안과 스트레스가 나를 좀먹는다. 때가 되면 다 알아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