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문...
on
오늘, 자리에 앉아 Yuval Harari의 책을 읽다가 하나의 실마리를 얻었다. 포유류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감각, 감정, 사고라는 알고리즘을 진화시켜 왔고, ‘나’라는 개념조차도 그 알고리즘의 산물이라는 이야기였다.
아니, 지금껏 ‘내가 살아왔다’고 여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감각과 감정, 사고의 작동 결과였다니. ‘나’라는 것도 그저 개체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탑재된 개념이라니!
이런저런 생각들과, 질문과 응답 속에서 그동안 품어왔던 수많은 의문들이 하나둘씩 풀려나갔다. ‘나’라는 존재의 가벼움도 알게 되었고, 왜 그렇게만 살아왔는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또렷해졌다고 할까.
예전에는 견성, 참나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불교 공부도 설렁설렁 1년쯤 하며 “왜 ‘나’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때가 떠오른다.
‘참나를 느껴보세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고, 그럴 때마다 그걸 발견하면 ‘내’ 인생에 무언가 대단한 혁명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느껴보면, 그것을 ‘모르고 있을 때’와 ‘살짝 알아차린 뒤’의 차이란 기대했던 혁명과는 많이 다른, 아주 작고 조용한 차이였던 것 같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일일 뿐. 어떤 일이 일어나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그건 아직 그럴 조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니 ‘나’를 포함해서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할 이유도 없다. 그저 그렇게 되어온 것이다.
어제 화분에 심은 씨앗이 당장 오늘 싹을 틔우지 않았다고 씨앗과 화분, 그리고 흙을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도대체 나는 살면서 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을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아직 때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나이 들어가며 이 자리에 닿게 된 것을 참 다행스럽게 느낀다.
그냥 조용히 앉아 주변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입가에 웃음이 머문다. 그저 그렇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