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지난 시간을 회상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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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나’라는 개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나’라는 것은 본래 주관적인 존재임에도, 우리는 그것이 마치 ‘나’라는 개체를 관장하는 실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착각이라기보다는, 뇌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교육받아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 ‘나’란, 나의 몸과 정신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모니터링하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이 관찰자가 아닌, 전혀 별개의 주체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가 어떻게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일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나의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된 해석일 뿐이다.
요즘 뇌과학 관련 책이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인간이 가진 인지 능력의 한계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조차 쉽게 인식되지 않는 이유도, 결국 우리의 뇌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등장하는 대규모 언어모델(LLM)들을 보면, 엄청난 학습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나’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에게 흘러온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나’라는 개념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 기억이라는 것도,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요약과 압축을 통해 정보를 간추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억하고 요약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여러 오류와 편향이 개입된다. 또한 어떤 사건을 관찰하고 느끼는 순간에도 이미 뇌의 해석이 들어가므로, 우리가 ‘나’ 혹은 ‘나의 과거’라고 믿는 모든 것에는 다층적인 오차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오류 위에 또 오류가 쌓이고, 그렇게 누적된 편향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흔히 ‘자기 객관화’란,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를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나의 시선도, 타인의 시선도 오류와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의 일상은 왜곡된 ‘자기 이미지(아상)’와, 마찬가지로 왜곡된 렌즈로 본 타인의 이미지가 서로 교차하며 이루어진다. 그 오류의 정도는 상상 이상이고, 그 모든 것이 인간이라는 모호한 언어를 통해 전달된다는 점에서 더욱 복잡하다.
인간은 스스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기준으로 자신과 타인을 평가한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오류와 편향, 불완전한 소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이 편향된 삶을 살고 있다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은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굴러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나의 행동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되돌아보며 원인을 탐색하던 중, 나는 하나의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억 자체가 불완전하고, 내 관찰과 해석에는 언제나 오류와 모순이 있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또 다른 모습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지금 돌아보면 ‘한심한 행동’처럼 보이는 일들도, 당시의 나에게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관찰자인 내가 알지 못한 무의식적 동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있든 없든, 나는 그렇게 행동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과거를 반성하며 미래를 대비하자고 말은 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은 반복되고,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 또한 유사하게 되풀이된다. 아마도 인간의 심리가 단기간에 형성된 맥락과 조건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나’는 관찰자일 뿐이므로, 내가 아무리 스스로를 잘 안다고 해도 알고 있는 것은 결국 제한된 일부이며, 그것마저 왜곡된 인식일 가능성이 크다. 좋아하든 미워하든, 내가 관찰하고 있는 그 주체는 스스로의 방식대로 행동할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처럼 엉성하고 모순된 존재인 내가, 나를 분석하고 교정하겠다고 애쓰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가장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관찰자인 ‘나’가 아무리 노력해도, 실제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주체에게 영향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의 왜곡된 판단 기준—좋고 나쁨, 옳고 그름—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타인을 평가하거나, 과거를 붙잡고 후회하는 것은 결국 무의미한 일이다.
나라는 존재가 그만큼 미약하고 부족하며 어리석음을 인식하는 것, 그 자각이야말로 진정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첫걸음이며, 동시에 타인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