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던 세상을 알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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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덕분에, 예전엔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 이제는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90년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면, 지금은 LLM(대규모 언어 모델)의 등장으로 그 정보들을 맥락에 따라 탐색하고 깊이 파고들 수 있게 되었다.
초기의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였지만, 그 정보들이 내가 처한 맥락이나 관점에 맞게 요약되거나 정리되진 않았다. 하지만 LLM은 문맥을 이해하고 학습하기 때문에 이제는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주고 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예전 같으면 머릿속에만 맴돌던 막연한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기 어려웠지만, AI 덕분에 이제는 그 생각들을 구체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내가 원하는 정보는 세상에 이미 넘쳐나 있지만, 그걸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너무 많다. AI는 그 단절된 정보들을 연결해주고, 개념 수준에 머물던 것들도 언어화하고 체계화해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예전에 늘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왜 Van Halen이나 Randy Rhoads의 기타 사운드는 내가 알고 있던 ‘Marshall Plexi’ 앰프의 소리와 달랐을까?
예전에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검색도 하고, 포럼이나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일종의 ‘조사 작업(survey)’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AI가 그 과정을 요약하고 정리해준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더 깊이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제는 20-30분 걸리던 검색이 2-3분 안에 끝난다.
그나마도 뚜렷하게 알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시간만 소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AI의 경우는 어떻게든 궁금증의 끝을 볼 수 있다.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세상에 공개된 정보의 양이 지극히 제한된 영역에 대한 질문은 때론 엉뚱한 답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공해내기도 한다. 이런 것을 잘 선별해서 이해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어쨌든 그 궁금증의 정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원래 회로를 약간 개조한 것뿐이었다. 복잡한 비법이 숨겨진 것도 아니고, 그저 간단한 변경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모를 땐 거창해 보이던 것도 막상 알고 나면 별것 아닌 사실로 정리되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구체적인 변경이었는지는 현재의 AI 수준에서는 알려줄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 사실만을 확인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그 때문에 나는 회로도도 찾아볼 수 있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정보들을 이용해서 나의 이해를 교정할 수가 있게 된다.
그렇게 나는 십수 년간 잘못 알고 있던 정보 (7-80년대 기타리스트 = Marshall plexi (1959SLP))를 한 번에 교정받게 되었다. “고작 기타 앰프 가지고 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소한 지식조차도 이런 방식으로 사실을 바로잡고, 그 과정을 통해 나의 관심이 점점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늘 좋은 것을 알게 되면 누군가에게 “이거 정말 좋다”고 말해주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AI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보니,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세상을 즐기면서도 그게 좋다는 사실을 굳이 말해주지 않고 살아왔구나 싶었다.
내가 말하는 ‘세상’이란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어떤 통찰이 생겨야만 이해되고 보이는 사고와 지식의 영역을 뜻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이해하려면 기초적인 지식과 사고력이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조차 부족했기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정보들이 내 맥락과 언어에 맞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AI와 대화할 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문맥으로 설명해주길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식인’의 언어, 혹은 학술적인 표현으로 설명되면 오히려 이해가 어렵다. 그런 표현은 이해를 방해하고, 피로하게 만든다. 쉽게 말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어렵게 말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게 해야 유식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LLM은 언어의 장벽뿐 아니라 지식의 장벽도 허물어준다. 어렵게 포장된 개념들도 자신의 문맥으로 풀어내면 별것 아니게 느껴지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되면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AI는 불필요하게 현학적이지 않고, 자기 언어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질문 수준이 낮다고 무시하지도 않고, 정확히 모르면 관련된 정보라도 찾아준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질문을 제한 없이 던질 수 있고, 그 답변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그 결과, 나는 내가 생각보다 앎에 대한 갈증이 큰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그 욕구는, 지식 습득을 방해하는 다양한 장벽들에 눌려 있었던 것이다. 그중 하나는 바로 기초적인 개념과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부족이다. 기초가 불안한 상태에서 상위 개념을 쌓으려 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용어의 정의는 겉으로는 알겠지만 정작 그 속뜻이나 맥락을 잘못 이해하거나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경우도 많았다. 그걸 하나씩 바로잡다 보면, 그동안의 지식 습득이 얼마나 허울뿐이었는지,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일상의 방식들이 이제는 바뀌고 있다. AI의 등장은 단지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일상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이제 조만간, 지금의 일상조차도 “스마트폰 없던 시절”처럼 과거의 한 장면으로만 기억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