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상태의 나로 돌아오기...

그동안 날이 너무 더워서 그랬나 아니면 특정 영역에 너무 신경을 썼기 때문인지, 근 1주간 몸살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다. 몸살처럼 열이 나는 것은 아닌데, 귀도 살짝 먹먹하고 눈도 뻑뻑하며 몸은 무겁고 기분도 몹시 가라앉았다. 틈만 나면 졸음이 쏟아지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모르겠다.

’늙어서 그래…’라거나 ‘유산소 운동을 게을리한 탓이지’라고 하면 반박할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복의 시작은 아주 조용히 찾아왔다. 갑자기 눈이 맑아지고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몸은 여전히 살짝 무거웠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상태로 돌아왔다. 아마도 별 생각 없이 과하게 집청소를 했다거나, 마당이나 차고를 블로워로 치우며 먼지를 마셨다거나 해서, 일종의 면역 반응이 일었던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정확한 원인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몸은 기억하는 듯하다.

한동안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지쳤다가 회복이 되는 시점이 되면, 이상하게도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막상 돌아가고 싶어도 ‘그 이전에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이건 여행이나 휴가를 보낸 후에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떤 상태가 ‘정상’이고 어떤 상태가 ‘정상이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잠시 멍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동안 내가 뭘하고 살아오던 사람인가가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니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그렇다면 만일 한참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게 되면, 아니, 아침에 눈을 떴는데 마치 전혀 엉뚱한 몸을 하고 있고 생전 처음 보는 장소에서 깨어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어차피 정신차려보고 나니 ‘내’가 ‘나’를 기억 못하는데 이 몸이 내 몸이었는지 이곳이 내가 살던 곳인지는 어떻게 알지?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무아’라고 했던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나’가 실체가 있긴 한 것인가? 아침에 일어났더니 다들 나더러 생경스러운 이름의 주인이 ‘나’라고 하면 나는 본래 그 이름의 주인이 가진 정체성을 띠고 살아가야 되는 것 아닌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주어진 그대로 살아내지 않을까? 어차피 어제의 ‘나’도 잘 기억 못하는데. 뜻하지 않게 단기 기억을 전부 상실해버려도 같은 상황이 되긴 매한가지 아닌가?

결국 내가 생각하는 ‘나’란 것은 본래 없고 주어진 상황에 맞춰 타자와의 관계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상태변수’에 불과한 것인가? 나라고 믿었던 것은 그냥 그 상태변수에 따라서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유기체에 불과하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쯤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것, 즉 ‘윤회’ 라고 하는 것도 거창하게 다시 태어난다라기 보단, 매일 아침에 새롭게 눈 떠 하루를 시작하지만 어제나 오늘도 다름없이 살아가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같은 상황을 맞이하면 여태까지의 삶에서 보여줬던 반응들 그대로 오늘도 반복하고 있는 것. 그래서 똑같은 감정상태, 똑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명목상으로는 기억을 가진 state space machine스러운 존재이지만 하는 짓은 stateless machine이랄까. 이전의 경험을 통해서 나아지지 못하는 존재.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존재, 그러니까 스스로 firmware update를 하지 못하는 기계나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것이겠지.

윤회를 끊었다 함은 적어도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 self-innovating system이랄까? 아니면 어느 시점에서 스스로의 반응 패턴을 온전히 개조해서 stateless하더라도 이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system이 되어버린 것이라 생각해야할까?

이제 운동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