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예전부터 수면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잠을 잘 못 잘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쉽게 말해, 베개에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드는 타입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물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랬다. 잠이 쏟아지기 직전까지 공부나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가족 모두 수면장애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수면장애’라는 단어조차 내 삶과 무관했다.

고3 시절에도 하루 8~9시간은 꼭 잤다. 어머니 역시 규칙적으로 9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는 분이라, 내가 고3 때에도 어머니가 나보다 늦게 기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땐 ‘고3 엄마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불안이 많거나 수면장애가 있는 부모라면 잠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 여파가 자녀에게도 미쳤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건강한 수면 패턴은 내게 큰 복이었다고 생각한다.

학교나 직장에서 시험이나 긴급한 프로젝트 때문에 밤을 새운 적은 많다. 하지만 평소 수면 리듬이 안정돼 있었기에 금방 정상으로 돌아왔다. 밤을 샌다 해도 틈틈이 졸거나 자는 습관 덕분에 피곤함 말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결혼 후에야 비로소 나는 수면장애라는 현실을 알게 됐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불안이나 우울에서 비롯된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다. 잠들고 싶지만 잠이 오지 않고, 그 시간 동안 끝없는 생각과 반추에 빠지며, 며칠이고 이어져 머릿속이 부정적인 감정—불안과 원망—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수면장애는 당사자뿐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숙면을 취하면 아침에는 대체로 좋은 기분과 차분함을 느낀다. 전날의 고민들이 대부분 사라져 있기 때문이다. 사라졌다기보다 단기 기억에서 밀려나 내 생각의 주 무대에서 내려간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가볍고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전날 누군가와 말다툼을 했더라도 숙면 후에는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감정이 어느 정도 치유된 것을 느낀다.

그러나 수면장애가 생기면 이런 ‘감정 초기화’가 사라진다.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잠을 이루지 못한 시간 동안의 반추와 피로가 겹쳐 감정이 훨씬 더 증폭된다. 기억력 저하로 인해 실제보다 상황을 더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되고, 긴장한 편도체의 영향으로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숙면을 취한 상대방은 이미 감정이 누그러진 상태인데, 다시 날벼락을 맞는 셈이다.

게다가 옆 사람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면, 잠결에도 그 기운이 전해진다. 새벽에 잠시 깨어 인기척이나 움직임을 느끼면, ‘혹시 나 때문에 못 자는 걸까?’ 하는 미안함과 ‘또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불안이 스며든다. 거기에 수면장애와 약간의 야뇨 증상이 함께 있다면, 조금만 요의를 느껴도 금방 움직이게 되고, 그로 인해 옆 사람 역시 깊은 잠을 이루기 어려워진다. 하루 이틀이라면 참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다.

다시 말해,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생기지만, 숙면을 취하면 전날의 일은 대체로 사라지고, 아무리 화가 났던 일도 작은 여운만 남는다. 아침에 만나는 사람들도 숙면을 취했다면 기분 좋고 활기차게 반응할 것이다. 나는 이게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반대로, 전날 일을 밤새 곱씹고 부정적인 결과들을 떠올리며 어둠 속에서 보냈다고 상상해 보라.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나를 압도할 것이 뻔하다. 그런 사람이 어제 일을 다시 꺼내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으며, 숙면으로 기분 좋게 일어난 나에게 새로운 싸움을 건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이 매일같이 이어진다면, 살아서 지옥을 겪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 부를 이루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건강하게 살며 매일 아침 좋은 기분으로 일어나는 것이 그보다 우선 아닐까. 앞으로도 수많은 아침을 맞이할 텐데, 매일 과거의 고민을 안고 시작한다면, 또는 그런 사람 옆에서 매일 아침 고문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에도 숙면을 취한 나 자신에게 감사한다. 수면장애에 시달리지 않는 이 순간이 고맙다.

“고맙다, 푹 자줘서. 고맙다, 지금껏 잘 살아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