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별로네...

날씨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조차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이고, 그 좋고 나쁨이라는 판단이 곧바로 감정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니 우울해진다”라는 말도 얼핏 들으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리 당연한 일은 아니다. 비가 오고, 흐려지고, 맑아지는 것은 수만 년 동안 반복되어 온 그저 자연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이 그저 그러할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흐리고 비 오는 날씨를 ‘안 좋은 것’이라 여기고, 기분이 덩달아 가라앉는 것을 너무도 당연한 일처럼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렇게 느끼도록 길들여져 왔고, 그 결과 그것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굳어버렸다.

만약 이런 날씨가 정말 견딜 수 없을 만큼 싫다면, 맑은 곳으로 가서 살면 된다. 기온이 낮은 것이 싫다면 기온이 높은 곳으로 가면 되고, 아니면 북극이나 남극보다는 이 정도도 감사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도 된다. 먼 조상들이 겪었을 빙하기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살기 좋은 시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다. 맑고 더운 날씨가 지겨워질 때쯤, 한 번쯤은 추운 날씨도 겪어보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씨도 경험해보면 된다.

요즘 나는 그런 감정을 규정하는 말들 자체에 거부감이 생긴다. 왜 나는 흐리고 비 오는 날씨를 ‘안 좋다’, ‘을씨년스럽다’라고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쉽게 말해, 왜 나는 세상 모든 것에 붙어 있는 좋다, 나쁘다의 라벨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왔을까.

그렇게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다가, 이제 와서 ‘무색성향미촉법’, ‘불구부정’ 같은 말들을 읊조리며 그 라벨들을 하나씩 떼어내려 하고 있다. 좋고 나쁨으로 빼곡하게 라벨링된 이 세상과, 그만큼 복잡하게 어지러워진 내 마음이 이제는 조금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평생 마음과 세상을 어지럽히며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자 이제는 좀 정리 정돈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현재의 날씨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 말 안에는 늘 긍정 혹은 부정의 의미가 은근히 섞여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궃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쓰다가, 그 말을 하는 동안 어느새 “날이 개었다”라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뀌어버린다.

실제로는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아닌데, 이렇게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좋음과 나쁨이라는 라벨이 하나도 빠짐없이 붙어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세상의 소리에 눈감고 귀 닫고 살아야 할까. 별것 아닌 것에도 내 편도체가 지나치게 민감해진 탓일까. 아침 커피에 들어 있던 카페인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

누군 이 세상에서 감정을 모두 빼버리면 너무 재미없고 건조한 삶이 되는 것 아니냐고 하고, 누군 또 그런 좋고 나쁨을 아예 빼버리라고 말한다.

좋고 나쁨이 잔뜩 깃들어진 이 컬러풀한 세상의 채도를 모두 0으로 만들어 흑백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명도마저 0으로 만들어버리라는 걸까. 그렇다면 그것은 깊은 동굴 속이나 심해저에 들어가 살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