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를 좇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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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 유튜브를 보니, Meta의 유능한 직원이 감원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AI로 각색해 올려둔 영상이 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봐야 할 내용인가 싶었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누군가는 만족감을, 누군가는 불안을 느낄 만한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돈벌이가 된 세상이니 그러려니 했다.
작년 언젠가 비슷한 글을 적었던 것 같다. 지금이 마치 인터넷 붐이 일던 시절 같다는 느낌. 그땐 내가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이라 얼마나 닮았는지 단정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데자뷔를 보는 기분이다. 주식이 폭등하던 그 시절이 그대로 재현된다기보다는 — 이미 선례를 학습했으니 — 이런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를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 FIRE를 이뤘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부쩍 눈에 띈다. 쉽게 말해 개나 소나 주식하던 시절을 다시 보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낙관론과 비관론이 또 고개를 쳐들고 있다. 여러 해를 지나 돌아보면, 지구가 궤도를 돌듯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뻔한 해프닝처럼 보이고, 그렇게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광기’에 젖어들수록 멀쩡히 살아가려면 세상을 물 빠진 흑백 화면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로 채색된 세상은 너무 혼란스럽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것은 불안을 부르고, 그래서 각색된 세상은 당장이라도 무슨 부정적인 일이 터질 것처럼 보인다. 불안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더 잘 팔리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불안함은 안전해지고 싶은 욕구를 부르고, 그 욕구는 돈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진다. 더 많은 돈 — 더 나은 인생 — 성공한 삶, 이런 식으로. 살아갈수록 돈의 위력과 실체에 놀라게 된다. 왜 사람들은, 아니 나는 돈에 집착하게 되었는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같은 시절에 문명국가에서 멀쩡히 살고 있다면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다. 문제는 굶어 죽지 않는 수준과 세상의 주류가 누리는 듯 보이는 생활 수준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엄청난 자극적 채색이 덧칠되어 있는 듯하다. 그렇게 사람의 불안을 자극해 무한경쟁의 세계로 몰아넣는 것 말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어떤 거대한 힘이 온 세상을 이렇게 몰아가는 듯한 느낌. 예전에 비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변화의 속도가 가팔라졌다. 주가지수 그래프의 기울기도 그걸 반영한다. 세상을 움직여 온 원리나 규칙 같은 것이 무너지고,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세상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
아,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어딘가에 잘 정리된 정답지가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설사 그런 게 있다 한들 나 스스로를 그렇게 통제하지 못할 것이고, 도리어 그 정답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하다. 그러니 결국 옛 어르신들 말씀대로 ‘물 흐르는 대로 살아라’에 도달하게 된다.
한마디로, ‘쫄지마!’.
세상이 아무리 나에게 불안을 주입하려 해도 신경 끄고 내 길을 가는 것. 그게 나의 정답이다. 세상의 흐름에 저항하지도, 휩쓸리지도 않는 것. 이미 나는 내 정답을 알고 있다. 아니, DNA에 새겨져 있다. 다만 허접한 자의식이 불안을 틈타 이렇게 부산을 떨고 있을 뿐이다. 걱정으로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하든, 온종일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려본들 결국 나는 나 생겨먹은 대로 살아가게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