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해지기...
on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좀 뻔뻔하다 싶은 사람들 볼 때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보고 미국 살면서도 제법 봤지 싶다. 그런데 왜 요즘엔 보기힘든지 그 이유는 잘 몰라도 만나는 사람의 폭이 줄고 내가 회사에서 속한 그룹도 신규 인원이 들어오기 보단 예전에 머물던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재편성되는 일들만 일어나다보니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잘은 몰라도 좀 뻔뻔하게 살다보면 조용히 사라지게 되거나 그 뻔뻔한 기세 때문에 직장을 진작에 옮겨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만 여태까지 버티고 남아있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분위기를 봐서 은닉되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그 사람들은 원래부터 뻔뻔했을까 생각해보면 ‘아니오’일 가능성이 높지 싶다. 최소한 학교는 다녔을테고 학교에서 어떻게든 협업을 요구했을테니 뻔뻔함이 있다면 버텨오기 쉽지 않았을텐데, 30-40대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터득된 태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도 요새 슬슬 뻔뻔함을 익히려고 하는 상황이다. 안 뻔뻔하려니 너무 힘들다.
그러니까 이 뻔뻔함은 내가 해야 할 일임에도 타인의 일인 것인양 유체이탈을 하는 뻔뻔함이라기 보단, 내 것이 아니었음에도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보니 울며겨자먹기로 내가 맡아서 조용히 힘을 들이고 있었던 것들을 놓는 일에 가깝다. 이게 나의 ‘뻔뻔함’이다. 남들과 나누면 모두에게 도움이 돌아갈텐데 싶어서 베풀던 것을 이젠 거둬들이려는 것.
여럿이 붙어서 일하는 일이 잦아지다보면 적어도 매니저 레벨에서 지시하지 않은 것은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라는 걸 보게 된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꼭 필요한 것임에도. 또 누군가의 노력으로 무상제공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표하긴 커녕 이런 저런 이유로 잘 되지 않을 때만 연락이 온다.
개인에게 팀을 위해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말하기가 뭐하다보니 자발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불평은 잘 해도. 답답하게 일이 안 돌아가도 그냥 놔둔다. 누군가 해놓은 것을 발견하거나 친절하게 공지라도 띄우면 그제서야 무임승차 하는 식으로 살아간다. 팀을 위해 일 몇 개 대신해주고 관리 좀 해준다고 뭐가 그리 손해본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라고 한 것은 우주의 법칙이 개개인의 득과실을 엄청난 정확도로 계산해서 보상/징벌하겠다가 아니라 개개인간의 상호작용이 자신이 받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뻔뻔한 이들에게 되돌아가는 것이 적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여기에 운이 좋으면 대상을 갈아타며 끊임없이 무임승차를 할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사람도 제법 봐왔다.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혜택을 보는 이들이 적당한 대가만 지불하면 적절한 공생관계가 유지 될텐데 왜 그리 이기적이냐고. 그 대가라는 게 엄청난 게 아니다. 작게 나마 자신도 기여를 하거나 최소한의 감사라도 표현하는 걸 말한다.
그럼에도 대인배(?)의 마음을 가지고 그런 이들에게 일부러 더 베풀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뻔뻔한 이들과는 무의식적으로 인간관계를 멀리하게 된다. 원래 뻔뻔했다기 보단 난생 처음 호의를 받고 누리다보니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무임승차를 계속하겠다는 이들이란 표현이 더 맞으려나? 고마움을 모르고 내내 받아가기만 하는 이들에겐 처음 여러번은 도움을 주게 되지만 나중엔 인간된 양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다가도 저절로 닫게 된다. 그들의 태도로 봐서는 나의 작은 도움조차 필요없는 이들이기에.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이게 너희에게도 도움이 될테니까 베풀어주마’ 따위의 마음가짐이나 태도. 그냥 호구의 빌미만 될 뿐이다. 하날 주면 둘 이상을 달라고 하고 점점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요구한다. 배경을 알 수 없으니까 그냥 무임승차할 뿐이다.
난 그런 꼴을 참 많이 봐왔다. 물론 내가 늘상 그들에게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무인 서비스 시스템을 만들어놓는 것이 나에게도 편하니까. 그게 나에게도 이득이 되니까 그렇게 하지만. 조금 야박하다 생각될 지라도, 나만의 뻔뻔함으로, 그냥 내가 필요한 것은 자급해서 ‘나만’ 쓰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다라고 결론 내리고 싶다.
왜? 나는 여력이 남아서 뭔가를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때론 내 앞가림도 힘들어질 때가 있다. 차라리 그 여력을 다른 데 쏟을 바에야 ‘내가 하는 일이나 잘 하자’라는 접근이 훨씬 유익할 때가 있다. 내가 맡은 일이나 잘하는 게 다른 것으로 도움을 주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하는 일의 진척이 느려서 다른 팀원이 곤란을 겪을 걸 대비하여 과한 공수를 투여하거나 완성도가 낮은 결과물을 준다든가 일이 진척이 되지 않을 걸 생각해서 다른 이가 해야 할 일을 해줘버린다거나 하는 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남들이야 뭐라고 말하든지 자신의 에너지를 안배하면서 일의 완성도를 극도로 끌어올리는 것이 이런 저런 타인의 상황을 고려해서 나의 부하를 과하게 올려놓는 것보다 낫다.
‘왜 나는 일을 해도 해도 끝없이 바쁠까?’, ‘왜 나는 쉴틈없이 바쁜데 그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할까’ 하는 답을 찾아보면 내가 내가 해야 할 일의 범위를 넘어선 일을 하고 있거나 스스로의 짐작에 기반해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늘 정신없이 바쁨에도 내 결과물의 퀄리티가 낮아지고 힘을 들인만큼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니 답답하게 되는 거다. 결국 프로답지(=돈 받고 일하기) 못하게 살았단 얘기다.
나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하고 그만큼만 책임지고 그만큼의 보상을 기대한다면 정신없이 바쁘다거나 그만한 인정 따위 기대하지 않으니 억울할 것도 없다. 일이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 문제들은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다. 거기서 확실한 구분이 일어나야 한다. 여기선 ‘뻔뻔함’이 나와줘야 한다. 이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