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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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음감의 소유자, 또 절대음감의 장점을 처음 본 게 아마도 대학들어와서 음악 써클에 들어갔을 때지 싶다.
뭐 초등학교 때도 어떤 노래를 들으면 즉흥으로 반주를 해내던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두드러지진 않았고. 반주를 위해 편곡된 악보를 활용하는 이들이 많았던 기억이고.
나도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피아노 교육을 받긴 했지만 1년 반 정도로 짧았고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늘상 피아노를 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진 못했으니, 음악은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또 그렇다고 절대음감을 형성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니라 음감이란 그저 들리는 음과 동조한다든가 기억하고 있는 가락을 반주에 맞춰 크게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는 정도?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개 음악 교육을 잘 받았거나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은 어려서부터 피아노 교육을 받음은 물론이고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거나 (시창), 누군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서 (청음) 반주를 붙이거나, 반주가 없이도 본래 음정을 틀리지 않고 부르는 일을 일과처럼 자주하면서 사는 이들이 있었다.
사실 나도 내게 이런 능력이 있었다면 음악하는 걸 업으로 삼거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로 만들었지 싶은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보면 그저 절대음감이 있다고 해서 훌륭한 음악을 하거나 하는 것 같진 않다. 그러니까 어떤 음악적 재능이나 음악을 잘하겠다는 의지가 절대음감이란 능력(?)에 더해질 때 빛을 발한다라고 봐야지 싶고.
어쨌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상대음감 (근음이 주어지면 상대적으로 음의 높이를 분절해서 인식하는 능력?) 조차 없는 나로서는 절대음감이든 상대음감이든 부럽기만 하다. 나의 음감은 뭐랄까 그 근음이란 것도 없고 바로 인접한 몇 개의 음에 대해서 유효한 어떤 조성/화음이나 인식하는 정도? 그것도 계이름의 형태라든가 음정(interval)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도저도 아닌 절반의 상대음감이랄까. 마치 반주가 끊어지면 서서히 제맘대로의 음으로 틀어져버리는, free-wheeling mode의 oscillator랄까.
내가 절대음감들을 구별하고 부러움을 느낄 땐 어떤 노래를 기억해서 부르든 음정이 굉장히 정확하단 것이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성부를 부를 때 거기에 끌려다니거나 하지 않고 자신의 파트를 정확히 불러내는 경우일 거다. 몇 가지 기술과 훈련을 더하면 딱 어울리는 화성의 사이드체인을 구성할 수 있으니까 그 역시 부러운 일이다.
나같은 사람들은 반주를 듣고 있어도 다른 성부의 음들이 들리면 내가 유지해야 할 음을 잘 지켜내지 못하고 다른 성부에 동화되려하기 때문에 음을 정확하게 유지하기가 힘들다. 특히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 내가 내는 음을 내 귀로 듣고 그것이 기준에 완전히 제대로 들어맞고 있는지 구분이 잘 안된다. 특히나 옆에서 많은 다른 소리들이 나고 있다고 하면 특히나.
절대음감들은 자신들이 내는 소리를 자신의 귀로 잘 들어가며 보정하는 일종의 feedback control(closed loop)을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훈련이 잘 되어있어서 원하는 음을 그냥 내 질러도 틀어짐이 없는 open-loop control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다. 그러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음계를 피아노 건반으로 누르듯 (물론 피아노는 잘 튜닝되어있어야 한다) 자신의 발성을 하는 거다. 사실상 이렇게 되면 노래를 부를 때 부담이란 게 굉장히 줄어든다. 내가 내야할 성부의 음계만 잘 기억하고 있다거나 악보를 통해서 읽기만 하면 곧바로 그대로 소리 낼 수 있으니까 기교랴든가 창법에도 집중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들은 수많은 요소를 의심해야 한다. 나는 악보에서 본 음의 높이 따위는 의미가 없다. 나에게 그 음의 높이는 어떤 피아노 건반을 눌러야 한다 정도이고 내가 내는 음의 높이와는 별개이다. 그 음의 높이는 반주의 조를 기준으로 내가 기억하는 가락을 얹어놓았을 때의 어울릴 것 같은 어렴풋한 추론에 기반하기 때문에 일단 음을 내뱉고 그것을 귀로 들어 그 음의 높이가 내 기억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에 따라 곧바로 보정이 들어가야 하는 시스템인거다. 그러니까 음의 기준 점이 오로지 반주에 의지하고 있고 내가 내는 음의 높이라는 것도 내가 그걸 내 귀로 들었을 때만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도 정확한지 아닌지의 여부를 판단하기가 힘들어질 때가 많다. 잠시라도 기준점을 놓치거나 내가 내는 음이 잘 들리지 않거나 하면 망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절대음감의 소유자는 정확한 Xtal을 가지고 있는 자. 말이 부품이지 유아기의 특정 시기에 기능이 발달되었다면 그것을 평생토록 신뢰할 수있는 기준클럭-인지시스템에서 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늘상 drift하는 일종의 floating된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그런 거다. 이게 있고 없고가 이후의 음악 생활을 결정한다는 게 참으로 뼈아프다. 기준 클락이 있는 이들은 음의 높이를 꽤나 분절되게 (quantized pitch)듣는다는 것이고 그 음의 높이를 octave에 상관 없이 계이름으로 인식함과 동시의 octave의 높이도 인식한다는 거다. 머리속에 어떤 음의 기준이 정해져있으니 눈으로 읽은 음의 높이를 머리속에서 재구성하고 부르거나 연주할 수 있는 거다. 시창과 청음은 자동으로 된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마이크(=귀)로 받은 신호를 바탕으로 오랜기간 패턴학습을 통해서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근음이나 조성을 캐채해야 하는 부하가 요구된다.
그래도 가끔씩 유명한 뮤지션인데 공연중이라거나 그들의 음반을 통해 듣다보면 ‘이 사람 알고보니 상대음감이었네’ 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악보와 담을 쌓고 살아온 이들도 많다. 더러는 그들이 절대음감이 아니어서 좋았다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 자신이 아예 음감이 없다라고 고백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 싶다. 절대음감으로 오래 살아오면서 악보에 따라 연주하고 노래부르던 사람에게 즉흥 연주를 하자고 하면 괴로워하는 이들도 제법 봤다.
나는 기타를 좋아해서 꽤나 쳐왔는데, 절대음감으로 피아노에 익숙한 이들은 기타의 음을 듣기 어렵다라는 얘기도 들어봤고, 절대음감으로 기타를 치면서도 수시로 조바꿈이나 조바꿈에 버금가는 재미있는 화성진행을 하는 음악에 잘 적응을 못하는 이들도 봤다. 어찌보면 내가 절대음감도 아니고 상대음감도 아니라서 나는 나 혼자 기타를 가지고 잘 즐겨왔다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사실 예전을 거슬러가보면 일렉기타를 처음 시작하던 1-2년은 지금 듣기엔 굉장히 괴로운 상태의 튜닝을 한 상태로도 열심히 연습을 했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내가 기타 초심자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걸 그들이 튜닝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고 연주하느냐에 두고 있는데, 그걸로만 따져봐도 절대음감들은 거저먹고 들어가는 게 크다. 이들은 단순히 기타를 1-2년만 연습해도 정말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음감이 없는 이들은 튜닝도 제대로 못한 채로, 그래서 구사하는 기술들 또한 내내 어설프기 그지없는 1-2년을 보내지만, 절대음감들은 시작할 때부터 정확한 튜닝으로 연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음의 높이를 반음단위로 분절되게 듣기 때문에 어떤 주법을 하더라도 대개 그렇게 안정된 음의 인식을 기반하고 있어서 절대로 어설프게 들리지 않는다는 거다.
예전에도 느끼는 바지만,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어떤 조의 음악이냐에 따라 특유한 느낌이 있다고 하고 그런 기준으로 음악을 듣기 때문에 나처럼 그 기준점이 어디에 있든 코드 진행이 중요한 입장에서는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놓치고 있으니 또 아쉬운 면이 있다. 이것은 감각의 차원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러이러하다 라고 설명해봐야 이해하거나 알 수가 없는 영역이다. 세상에 나와 제대로 눈을 떠보지 못한 사람에게 빛과 색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살다보면 음감과 박자감 둘 다 다 현저하게 떨어져있는 사람들도 보게 된다. 애초에 계발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 같고. 그런 걸 생각하면 난 괜한 억울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운동선수와 같은 운동신경을 갖지 못한 것엔 무감각한 반면 음악적인 소양을 타고나지 못한 것만 억울해 하는 것도 좀 의아하긴 하다. 그래서 내가 음악/운동을 업으로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한 건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억울할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고 많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