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깨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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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감정이 격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였는지, 상황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특정 단어나 사건에 꽂혀서 힘들어했던 것을 깨달았다.
이런 상태가 되면, 만약 내가 컴퓨터 소프트웨어라면 에러를 뿌리고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있을 텐데, 사람인지라 그런 상태에 몰입된 채로 한참을 흘러가게 된다. 대개 주위 사람들도 같은 상태에 놓여 있을 확률이 높고,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존재가 없어서 분위기가 안 좋게 흘러가는 걸 그대로 지켜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실제 상황보다 내가 그 상황을 더 어렵게 바라볼 때, 하필 그때 외부에서 “왜 빨리 못 하느냐”고 채근하면, 이런 조합은 악순환을 일으키기 딱 좋다. 그때 누군가 문제를 지적하면 나는 내 문제를 차근차근 들여다보지 못하고 흥분해서 방어만 하거나, 손쉬운 방법으로 땜빵하려 한다. 땜빵은 또 다른 땜빵을 낳고, 상황은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이런 일은 주로 큰 프로젝트를 맡거나 스스로 레벨업을 하려 애쓸 때 생긴다고 본다.
이럴 때일수록 여유와 평온함이 필요한데, 주위 상황이 그렇게 놔두질 않는다. 누군가 지금 발생한 문제를 대단한 문제인 양 감정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면, 나는 그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지하기 쉽고, 그게 나 때문에 촉발된 것만 같고, 그렇다면 내가 단숨에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 같고, 생각해보면 그것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는 것 같고… 이런 식으로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결말을 맞이할 것 같아도, 평온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여기까지 온 것은 내가 뭔가를 간과했거나 해이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차근차근 밟아왔기 때문이다. 당장 흥분해서 머리가 하얘졌더라도, 마음을 안정시킨 후에 다시 보면 생각보다 쉬운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또 그게 나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님을 빨리 증명하려 하기보다, 예상했던 것과 실제가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지 탐구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답이 빨리 보인다.
내가 잘못했을 수도, 상대방이 잘못했을 수도 있다. 남들과 함께하는 일은 원래 그렇다. 대개 이런 일은 초반에 “누가 잘못했나”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짙은데, 나는 이게 각자의 불안이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신감이 없고 스스로 불안하니까, 누군가 잘못해서 나에게 시간을 벌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것이다.
자신감이 없어질 수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어려운 주제를 다루다 보면 그렇다. 하지만 거기에 압도되면 안 된다. 처음 보는 용어나 개념적으로 연결하기 어려운 말로 어떤 개념을 설명하는 걸 오래 들여다보면, 오랜 시간 이해하려 애썼는데도 결국 용어 자체의 모호함 때문에 에너지와 시간만 소모하고 사실상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상황을 맞게 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특정 영역에서 오래 일해왔다면, 내가 이해하기 힘든 이론이나 주제란 있을 수 없다고. 인문 계통에서 십수 년 일해온 사람에게 어느 날 2차 미분방정식으로 풀어야 하는 복잡도의 시스템을 분석하라는 일 같은 건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개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의 난이도는 그 사람 능력의 최대치를 넘지 않는, 절반 이내 수준이라고 본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어렵게 느끼는 건, 어떤 개념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호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개념을 짧은 글자 수로 표현하려다 보니 자신이 아는 단어들 중 가장 가까운 것들을 조합해서 쓰는데, 그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게 오히려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내가 대학 과정에서 처음 마주한 가장 힘든 과목이 solid state electronic devices였다. 반도체를 처음 가르칠 때 쓰는 대표적인 교재이자 과목인데, 비슷한 시기에 공부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 과목을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내용 대부분은 전자의 분포와 관련된 몇 개의 방정식을 풀거나 그 개념을 확장한 것뿐인데, 그걸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고, 다들 자신에게 익숙한 용어부터 던지며 쉬운 문제를 어렵게 만들어 설명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이과 수학을 제대로 마친 사람이라면, 약간의 미분방정식과 그걸 해석하는 방법(주파수/시간 영역)만 익히면 개념적으로 충분히 학습 가능한 과목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험을 못 보면 공부 안 한 나, 제대로 이해 못 한 내 지능을 탓했던 기억이 있다. 정작 수업 시간엔 황당한 강의 방식 때문에 개념 파악도 잘 안 되는 채로 지내다가, 시험이 코앞에 닥쳐서야 공부를 하는 패턴으로는 절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매 수업에서 핵심 개념만 챙겨갔어도 그렇게 고생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조언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결국 너나 나나 생전 처음 듣는 용어에 압도되어, 본질을 엄청나게 어려운 이론 덩어리로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떤 분야에서 통찰을 얻기 위해 학습하는 과정에서, 나는 언어가 주는 감정적 충격에 압도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별것 아닌 과제도 낯선 언어와 개념의 충격에 압도되면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된다. 자기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데 경계 구분이 잘 안 돼서 많은 일을 떠맡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긴 책임 — 원래 내가 짊어질 책임이 아닌데도 — 에 압도되어 과도한 책임감과 부채감에 시달리다 보면, 역시 본질을 보지 못하고 빠르게 소모되어 쉬운 일도 어렵고 힘들게 하게 된다.
‘쫄지 마.’
이 말은 상황이나 언어가 주는 감정적 충격에 압도되어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일종의 “정신 차려!”에 해당한다고 본다.
정상적인 고등교육을 좋은 성적으로 마쳤다면, 그 이후 인생에서 마주치는 이론이나 개념 중에 ‘도저히 내 지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신출귀몰한 이론이나 기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 또 그만한 교육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모여 머리를 맞댔을 때 해결 못할 문제도 없다. 사람이니 실수는 할 수 있고 그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말도 안 되는 실수나 완전한 몰이해로 상황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아두자.
상황이 나를 압도해서 불안하거나 흥분한 상태로 본질을 못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조용히 혼자 회의실에 들어가 칠판에 상황을 정리하며 말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글로 적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누군가에게 설명하듯 말로 정리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놓친 부분을 채울 수도 있다. 즉, 내가 발표자이자 청자가 되어 일종의 메타인지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감정(불안)에 매몰된 하락의 악순환에서 빠르게 벗어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일단 안정을 확보하면, 점점 더 상황이나 충격에 덜 압도되고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