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 의미?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물론 알지도 못한다.

누가 말하길 삶이라는 게 ‘귀양살이’라고 한다. 귀양 갔다는 것이 좋은 뜻은 아니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이 힘들다고 했기 때문이지 싶다. 잠시 귀양왔다가 다시 어딘가로 복귀하면 살기 나아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삶은 여정 (journey)라고 한다. 솔직히 이렇게 생각하면 좀 살기 가뿐해지는 면이 있다. 사실 계속 경쟁속에서 뭔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잘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살다보면 삶은 귀양이니 여정이니 하는 것보단 일종의 task내지는 competition/contest(?) 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뭐든 열심히만 하면 높은 등수를 차지하고 그렇지 못하면 빌빌하게 살게 될 것 같은 뭐 그런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귀양살이보다 더 괴로운 것 아닌가? 귀양살이야 내 뜻을 펼치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귀양지를 지키며 사는 것이지만, competition이라 생각하면 사는 동안 내내 경쟁하고 겨우 한숨 쉴 정도의 여유만 갖고 살다가 그 때문에 힘들어서 앓다가 죽거나 괴로워서 자살하거나 하는 거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맘으로 살아온 적이 꽤 오래다.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는 죽게되는 존재라는 것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던 동안엔. 사람은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한 명제인데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게 되는 그 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아주 먼 미래라고 착각하게 되는 거다.

다시 얘기를 돌려서 인생을 여정이라고 보면 이야기는 좀 더 달라진다. 이것은 주어진 동안에 이 세상을 여행하게 되는 것이라, 여기에 욕심이 발동하면 30세에는 뭘 하고 40세엔 뭘해보고 이런 식으로 흐르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목적지를 다 찍고 돌아야 하는 ‘의무감’ 같은 게 있다. 여행지에 와서 정해진 계획대로 목적지를 찍고 다녔던 것은 처음 유럽에 친구들과 여행갔을 때 빼곤 없다. 계획을 어찌나 빡빡하게 짰던지 여행하는 동안에 피로로 탈진할 지경이었으니까. 스스로 인생은 여정이다 생각하고 욕심을 부려 기왕에 이 세상에 여행온 김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구경하고 가겠다 맘먹으면 이 또한 또 다른 competition과 다를 바 없다. 죽는 그 시점에 내가 돌아본 인생 여정을 다 기억할리 만무하거니와 아무리 많이 돌아다녔든 뭘 했든 뿌듯하고 말 것도 없다. 죽고나서 scoreboard에 난 뭘 했소 할 것도 아니고.

계획을 짜놓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냥 정신 차려보니 이 세상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주어진 시간동안 어떻게든 지내면 된다.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대로. 계속해서 안좋다면 내가 운이 좋지 못해 여행지에서 자연재해를 맞는다고 생각해야 할 밖에.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의도하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보다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그렇게 얼떨결에 여행 온 처지다. 여행객일 뿐이다. 가만히 바라보면 여행객의 입장에서 뭔가를 남겨가려고 아둥바둥하고 있을 뿐이다. 그냥 삶이 주는 풍경을 즐기다 갈 수도 있는데 삶이 주는 무엇을 참고 인내해야만 한다고도 한다. 글쎄 이렇게 여행 오지 못했다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시간의 흐름이니 뭐니 신경쓰고 말고도 없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채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 것도 없으니 괴로울 것도 없는 (그렇지만 기쁘고 눈물 흘릴 일도 없는) 무미건조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귀양살이/감옥살이일텐데 말이다.

삶을 그냥 누군가 나에게 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사는 게 덜 괴로워진다. 어차피 삶이란 자체가 영원할 수 없고, 삶의 순간 순간의 괴로움과 힘듦, 역경 따위 같은 것으로 평생 지속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날 괴롭힐 거라 생각하면 (혹시 restart 혹은 respawn할 수 있을까 하여) 종료하려 하는데, 내 삶을 누군가의 음모론의 결과라 생각할 이유 따위 없다. 다들 저마다의 여행하기에 바쁜 처지들이다. 그냥 가뿐히 살다가 가면 된다. 여행 중에 만난 이들과 친구하고 즐겁게 몰입해서 살기에 이 여정 그다지 길지 않다.

물건 반품하러 우체국에 왔는데, 오랜만에 대낮에 나와서 그런가 날씨가 너무 눈부셔서 잠시 헛소리 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