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프 시뮬레이터 vs 리얼 앰프..??

리얼 앰프도 제작해보고 앰프 시뮬레이터도 여러 가지 만들어 본 입장에서 내가 느낀 점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들어가며

이곳 블로그에 어설프나마 정리된 것이 있으니까 내가 어떤 앰프들을 만들어봤는지는 대충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타 앰프를 직접 구입해서 쓰는 일이 여러 가지로 나에겐 비효율적인 일이라 그냥 만들기로 결심하고 프리앰프 회로를 갈아끼워서 음색을 변화시키는 접근 방식으로 도전했다. 이미 알려진 모듈러 프리앰프와 달리 내가 취한 접근 방법은 오리지널 회로 그대로를 가져다 끼워넣고 오직 진공관과 전원회로만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적어도 프리앰프 단에서는 오리지널 프리앰프와 가깝게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위에 파워앰프를 흉내내는 부분을 끼워넣고 IR과 같은 것들은 컴퓨터에서 처리하게끔 만든 거다.

이것은 나중에 앰프시뮬레이터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할 때 일종의 reference가 되어주었다. 시작할 때는 작은 프리앰프 한대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소프트웨어 플러긴을 만드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어떤 것이 더 정확한가?

앰프 시뮬레이터를 어떻게 모델링 하느냐에 따라 정확도의 문제는 달라질 수 있는데, 최근의 앰프 시뮬레이터들은 실제의 전기 회로를 그대로 시뮬레이션 하는 방법으로 모델링한다. 그래야 원하는 소리를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도 앰프 회로를 거의 아무런 변형 없이 그대로 모델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앰프 시뮬레이터를 만들 이유가 없다. 대충 톤을 흉내내는 시뮬레이터들은 지천에 널렸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수고를 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간략화된 모델을 가지고 특정 톤을 흉내내려고 하면 거기에 들어가는 수고가 원래 회로를 그대로 모델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간다. 진공관 증폭기 모델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적당한 가정을 주고 간략화하면 매우 쉽게 구현이 가능하다.

프리앰프

프리앰프부는 당연히 소프트웨어 앰프 시뮬레이터의 승리이다. 왜냐면 회로 그대로를 가져다 시뮬레이션 했고 여기에는 어떠한 오차도 끼어들 틈이 없다. 단지 진공관을 모델링하는 방법, 또 거기서 발생하는 오차가 확산되는 정도에 불과하지 일반 아날로그 회로에 들어가는 부품들이 가지고 있는 오차 (아무리 좋아도 1-5%)를 생각하면 앰프시뮬레이터가 실물의 아날로그 회로보다 원래 회로에 가장 근접한 프리앰프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귀로 들어서 이 오차를 구분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오차가 큰 것이 오차가 있는 것보다 더 좋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아날로그 회로를 디지털 신호처리 수식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bilinear transform이라고 해서 아날로그 세계의 미분 방정식을 discrete signal processing 세계의 수식으로 가져오면서 발생하는 오차가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없긴 하지만 sample rate를 올림으로써 충분히 낮은 오차로 만들어줄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앰프 시뮬레이터는 최소한 x4, x8 정도의 oversampling을 하고 있어서 이 부분에서 발생하는 오차도 충분히 낮다고 할 수 있다.

파워앰프와 나머지

그런데, 파워앰프와 스피커, 캐비넷으로 가게 되면 문제가 좀 달라지게 된다. 그것은 실물의 앰프가 회로도 그대로 만들어지긴 하지만 파워앰프에 달라붙는 부품들은 그것을 완벽하게 모델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 부품들 자체가 이상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고, 부품의 제작 방법에 따른 차이가 어떻게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이상적인 동작에 가까운 부분은 phase splitter + power tube pair까지이고 이게 출력 트랜스 + 스피커 + 캐비넷으로 가면 어떤 정형화된 모델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또 앰프가 어떠한 전원회로를 쓰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도 다양하다. 이를테면 앰프가 엄청나게 큰 출력을 내보낼 때 분명히 전원으로부터 많은 전류를 갑자기 끌어쓰게 될텐데 이 때마다 공급전압이 흔들리게 되고, 이때 전원회로가 어떠하냐에 따라 응답 특성을 다 달라지게 된다. 또 출력 트랜스의 응답도 경우에 따라 다 달라지게 되고 스피커와 캐비넷의 응답도 천차만별이 된다.

그래서 대개 이 부분은 IR(impulse response)로 뭉뚱 그려 모델을 해버리거나 모델을 단순화해놓고 사용자가 그 모델에 들어가는 parameter를 설정하게 해놓은 경우가 많다. Fractal audio의 AxeFx에 엄청나게 많은 설정 파라미터가 달라붙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할 말을 잃게 되는데, 이 역시도 단순화된 모델이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 존재하는 요소들은 이보다도 훨씬 더 다양하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특징이 앰프 시뮬레이터가 실물 앰프와 가깝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같은 모델의 앰프를 쓰더라도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냐 어떤 부품을 쓴 것이냐 등등에 따라 변화되는 요소가 엄청나게 많다는 의미가 된다. 모델링은 그 수많은 가지 중에 한 가지만을 택하여 이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소는 어떤 마이크를 썼느냐 마이크를 어떻게 대놓았느냐 믹싱 과정에서 어떤 이펙트를 뒤에 대 놓았느냐 EQ를 어떻게 잡았느냐에 비하면 정말로 미미한 차이에 불과하다.

앰프를 만드는 게 좋은 것일까?

내가 기타 앰프를 만들던 시절은 Axe Fx처럼 좋은 이펙트가 나오기 전이다. 또 다양한 프리앰프를 써보고 싶었기에 프리앰프 회로만을 바꿔쓸 수 있도록 모듈러 타입으로 만들었다. 다들 이해하다시피 파워앰프를 뭘로 쓰느냐 캐비넷을 뭘로 쓰느냐도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프리앰프를 바꾸는 것에 비하면 톤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다시 말해서 앰프 톤의 대부분은 프리앰프에서 만들어지고 프리앰프라는 것은 일반적인 전기회로의 법칙을 아주 잘 따라서 동작하기 때문에 디지털 모델링을 한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하다. 그런 의미라면 구태여 힘들게 앰프를 만들 이유가 없다. 노이즈에 더 강하고 전원의 영향도 받지 않고 기능도 엄청나게 다양할 뿐더러, 이펙트 플러긴으로 쓰면 언제든 음색을 바꿔쓸 수 있고 병렬로 다양한 앰프를 연결해서 원하는 톤의 조합을 찾기도 좋고 그 이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다만 아날로그 회로는 즉각 반응하는 반면, 앰프 시뮬레이터에서는 내부의 신호처리 과정을 최적화해야 하기 때문에 신호를 블록 단위로 처리해야 되고 DMA를 통해서 데이터를 이동시키기 때문에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는 버퍼링 때문에 latency라는 게 생긴다. 못해도 100ms 정도는 느리게 반응한다. 이것은 현재로서는 피할 수 없다. 대신 디지털 세계가 가져다 주는 이득 - 복제와 저장, 개체화 등등 - 으로 단 하나의 하드웨어를 가지고 엄청나게 다채로운 톤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아주 쉽게 변형, 복사, 전송이 가능하다.

신뢰성의 문제

디지털 앰프 시뮬레이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면 사실 그것은 앰프 시뮬레이터의 소스 코드를 전부 다 열어보기전엔 알 수 없다. 개발자가 어떤 꼼수를 썼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발자가 간과할 수 있는 요소도 엄청나게 많고, 모든 제작사가 디지털 신호처리를 완벽하게 할 수 있다 볼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것은 실제로 앰프 시뮬레이터를 제작해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개발자가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Axe Fx가 매우 훌륭한 앰프 시뮬레이터이긴 하지만 그 역시도 다양한 타협을 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취미형 개발자가 보더라도 아쉬운 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작사가 능력이 없어서라기 보단 이 제품이 일반 사용자를 위해서 나온 상용 제품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편의성, 사용자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 음색이 얼마나 실물에 가깝느냐이지 조작 특성상의 차이는 다른 문제이다.

이를테면 실물 앰프에 달린 EQ는 앰프에 따라 다르고, 그 반응의 정도라는 것도 앰프 설계에 따라 다 다르다. 쉽게 마샬 앰프를 예로 들면 mid와 bass는 반응 정도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흔히 우리가 아는 오디오에 달린 EQ에 비하면 차이가 많다. 실물 앰프에 익숙한 이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물 앰프와 가깝지 않은 사용자가 많다면 그들의 요구에 부합해야 하니 개발자는 실물 앰프와 가깝게 만들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런 식의 타협이 들어간단 뜻이다. 엄밀히 말하자만 이런 타협도 있으면 안되겠지만, 세상엔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이 부분을 간과하기 힘들다.

어찌되었든 지금처럼 좋은 시대에 많은 제작비와 공임이 들어가는 실물 앰프 제작은 그다지 유익한 일이라 보기 어렵다고 본다. 물론, 완벽한 아날로그 회로이기 때문에 zero latency에 실물을 눈으로 보는 뿌듯함을 포기할 수 없다면 만드는 것이 낫다. 그런데 얼마나 편리하고 쓰기 좋으냐라는 측면에선 디지털 앰프 시뮬레이터를 따라갈 수가 없다.

앰프 프로파일러

앰프 프로파일러가 하는 일은 아주 간단히 말해서 기타 앰프의 주파수 특성을 가져오는 일이다. 실제의 앰프 설계가 뭐가 되었든 간에 간단히 2가지 특성을 가져온다고 보면 된다. 하나는 찌그러지기 직전의 주파수 특성, 하나는 찌그러진 다음의 주파수 특성이다. 이 개념이 잘 안와닿을 수 있는데, 이것은 대부분의 앰프 프로파일러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회로 시뮬레이션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간단하고 단지 프로파일러가 실제의 앰프 특성을 흉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용자가 이 접근방식을 더 좋아하고 잘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상용 제품으로 큰 성공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정말로 간단한 연산 몇 개로 끝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더 없이 편한 방법이다. 실제로 오차는 엄청나게 크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귀로 구분해내지 못하고 불평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이 귀로 듣기에 실물과 차이가 없다고 듣기 때문이지, 정말로 엄청나게 정확하기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전술한 수많은 기타 앰프의 구성요소들의 정확도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용자가 귀로 듣기에 똑같기에 (프로파일러에 차이를 들어서 구분할 수 있도록 버튼까지 잘 마련되어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뿐이다. 그만큼 사람의 귀가 그다지 예민하지 않고 관심있는 특정 요소에만 민감하기 때문이다.

결론

엄청난 음량과 엄청난 전원 소비를 감당해가며 실물 앰프를 써야 하는 이유는 순전히 심리적인 이유라고 본다. 실물 앰프를 만드는 일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그것이 취미라 이것 아니면 안된다면 모를까. 앰프회로를 그대로 잘 구현해놓은 앰프 시뮬레이터, 그 가격이 어떻든 모양새가 어떻든, 그것이면 족하다. 실물 앰프보다 훨씬 구하기 쉽고 다루기 편하다. 쓸데 없이 까칠하게 실물 앰프를 가지고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 시간에 더 많은 연습과 음악적 경험을 쌓는 게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