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어렵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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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느끼게 된 것이지만, 종교는 쇼핑몰에 진열된 그런 아이템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시중의 종교는 워낙 다양하기에 또 같은 종이라도 다양한 모델들이 있기에 내가 어떻게든 의지해야겠다 도움을 얻어야겠다 해서 종교를 가져봐야겠다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어떤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마치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니듯 손품을 팔고 다녀야 할 것 같아보인다. 게으르다면 동네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사오듯, 또 마진을 많이 붙인 것인가 아닌 것인가, 불량 제품인가 아닌가 꼼꼼히 따져보게 되듯, 내가 선택한 종교의 내용물이 과연 양질의 것인가 아닌가 소위 사이비로 불리는 불량품은 아닌가, 또 내가 모르는 더 나은 품질의 종교가 있는 것인가,어리석고 허접한 중생의 바램을 더 잘 들어주는 종교 혹은 종파가 따로 있는 것인가하는 황당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손품을 팔다보면 저마다 다른 종교가 이단이다 몹쓸 종교다 지옥에 갈 종교다 비방하기에 여념이 없는 종교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종교 혹은 종파, 혹은 특정 교회가 브랜드화 되었다고나 할까? 그것들을 브랜드로 부른다는 게 좀 뭐하긴 하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기엔 그러하니 말이다. 물론 타 제품을 비방하는 데 열심인 브랜드는 사실 유사품이 많고 경쟁이 치열한 브랜드 뿐이다. 나머지 다른 브랜드들은 감히 타 브랜드 제품이 이러 저러한 이유로 뭔가 기준에 미달한다 안한다 하는 말조차 대단히 조심스럽다. 이들은 아예 타 브랜드에 그다지 관심도 없고 그저 자기들의 일만 열심히 할 뿐이고. 내 입장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종교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이게 좋다 나쁘다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내가 보고 들은 다양한 종교의 이야기들은 저마다 다 타당한 부분이 있고 보잘 것 없는 인생 살이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지혜를 준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를 철학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학문, 또는 일종의 과학말이다. 다만 나와 같이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에게는 이러한 철학으로부터 나오는 지혜들이 막상 삶이 힘들어지고 일이 정말로 어려워지고 나서야 눈과 귀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미리 예방하고 대비하고 있으라고 배우는 것인데도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명절 때 모이는 가족들 중에 우리집을 빼면 대부분 개신교회에서 다들 한자리씩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셨다. 목사님도 계시고, 장로 권사님등등. 그 각각이 뭘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계급장 같은 걸 달고 계시니까 믿음의 단계로 치면 빨간띠나 검은띠쯤 된다고 생각했다. 명절날에도 이분들이 모여서 서로 손잡고 예배드리면서 찬송하고 울고 서로 위로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땐, 내가 보기엔 참 어려운 것 모르고 부족한 것 없이 잘도 사시는 분들이 무슨 세상의 걱정을 온몸으로 짊어진 것처럼 저러는 것일까 했다. 물론 이런 일을 여러 번 겪게 되면 점점 무뎌지면서 ‘또 시작이네’ 하게 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분들의 이런 행동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던 나의 입장에서는 이분들이 보는 뻘건 테두리의 성경부터, 예전부터 들어왔던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또 인간을 빚어내셨다는 창세기의 이야기 부터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고, 모세가 바다를 갈랐다는 이야기나 예수가 기적으로 병자를 치유했다는 이야기나 부활의 이야기 모두 다 사람들을 혹세무민하기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중2때 천주교회에서 6개월간 교리를 듣고 영세를 받을 때에는 이 황당한 이야기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지만 믿어야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나처럼 무지하고 미약한 존재가 감히 진실이냐 아니냐를 따질 수도 없는 지극한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또 무엇보다도 십계명을 어기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 지옥으로 떨어질만큼의 큰 대죄라고 하며, 죄를 지은 이는 지옥에서의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했다. 난 그 무엇보다도 지옥의 존재여부를 떠나서, 또 지옥의 고통의 정도를 떠나서, 내가 그러한 죄를 지으면 내 자신이 오염되고 그 오염된 상태로 머무르고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단죄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청소년인 내가 보기에 십계를 어기기는 쉽지 않았지만 어쩌다 거짓말이라도 한 번 했다고 하면 그 양심의 가책이란 것은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죄짓는 이들에 대해 하신 멘트들은 나의 어린 가슴에 무섭게 다가오기도 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어쩌다 거짓말 한 번 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만.
어쨌든 어떤 종교에서 최고의 가치로 흠숭받는 절대자라면 그런 대우를 받을 만큼의 뭔가를 하시겠지 하는 것은 내 입장에선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었다. 심지어는 다른 신들이 아닌 오직 나만을 섬겨야 한다고 하시는 하느님이시라면, 분명히 그분과 그분의 뜻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그만큼의 아니 그보다 훨씬 통 큰 보답을 해주셔야 맞는 것이다. 그냥 간단히 명절날 어린 아이들로부터 세배 받는 것만으로도 지갑을 열어서 뭔가를 꺼내줘야 하는 것만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은가? 하물며 제발로 찾아와서 재물을 바치고 수도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는 평생 해 본적도 없는 모든 공경, 흠숭, 사랑의 표현은 머리 속에서 어떻게든 쥐어짜서 그 자신들의 복을 빌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지금 내가 마주하는 시련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분의 심기를 크게 거슬러서 생긴 일일 뿐더러, 그분의 전지전능하신, 이 우주를 창조하고 관장하시는 어마어마한 능력으로 보면 정말 무한대 분의 1도 안되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어찌보면 그동안 내가 그분께 머리 숙이며 공경드리고, 그 분의 뜻을 조금이라도 어길까 전전긍긍했던 괴로워했던 것만 생각해도, 내가 아프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어도 충분히 미리 해결해주시고도 남았을 법한 일이다. 그렇지만 난 아직도 고통받고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매일 매일 기도하면서 그분의 의중을 궁금해하고 있다. 도무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일까 하고 말이다. 차라리 들어주지 못하겠다 하시면 그렇게 해달라고도 해봤고, 이렇게 계속 아프고 고통스럽게 있을 바에야 목숨까지 거두어 달라고도 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답이 없으시다.
여태 난 내 인생의 문제들은 그분께 가져다 드리기에 너무나도 작고 보잘 것 없기에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려고 했지 감히 이분께 도와달라고 간구드린 것이 없다. 예배 시간에 기도하라고 할 때에도 뭘 도와달라고 말씀드려야 되나 하면서 멍하게 있던 게 대부분이고, 그래도 뭐라도 간구를 드려야겠다 생각하면 고작 가족들의 건강을 돌봐달라고 슬쩍 말씀드렸던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그분에 대한 나의 신뢰가 없었다고 생각하셔서 심기가 불편하셨던 것인지 아니면 내 문제에 엮인 다른 사람의 문제때문에 나도 자매품으로 끌려 들어간 것인지 도무지 확연한 답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젠 그 분과의 대화를 시도해야 될 때라고 생각했다. 그분과 직접적으로 대화가 안된다면 다른 분이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