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주간이다..

월요일 출근하려고 보니 생각보다 도로가 매우 한산해서 역시나 추수감사절 주간이로구나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살았을 때를 생각하면 추석이 있는 주라고 해서 휴일도 아닌 평일의 출근길이 한산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역시 이곳은 일은 대충하고 노는 것은 팍팍 노는구나 할 뿐이다.

아무리 이곳에 오래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명절(?)을 맞이하는 기분은 늘상 생뚱맞다. 더구나 남의 나라에 홀홀단신 와서 살고 있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비슷한 처지에 있으니까 같이 시간 보내자 하는 동포(?)들이 있을 것 같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상 그럴리가 없고. 가장들은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로 집안에서든 여행지에서든 종 노릇하고 살아가는 인생이니까 성자(?)와 같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가족을 위해 시간을 보내든, 아니면 순교자(?)의 입장으로 정신적 학대에 시달리든 어떻게든 멘탈 털리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멀쩡한 것으로 인정받는 가정이라면 이 때를 맞춰서 어디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와야 제대로 잘 보냈다라고 공인 받는 시절이니까, 나같이 엉뚱하게 혼자 있는 사람은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들 무리에 휩쓸려서 같이 시간을 보내 주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야 될 것 같아 그들과 시간 보내며 앉아있으면 늘상 자랑할 것 많은 분들의 일장연설을 온 종일 듣고 앉아있어야 하거나, 혹시라도 자랑 거리가 떨어지거나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이것 저것 자랑할 거릴 찾아서 물어봐주고 맞장구치고 환호해야 하니 마찬가지로 정신 에너지를 탕진하게 된다. 듣고 있는 동안은 할 게 없는 이유로 이것 저것 계속 먹게 되니 ‘쓸쓸’해지지 않으려고 몸과 마음이 고생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사실 늘상 보는 사람들만 자리하고 있거나 자기 가족만 있으면 특별히 자랑할 것도 없고 웃어줄 사람도 없고 내내 지루할 뿐이니까 뭐 그런 용도로 나같은 어수룩하고도 자기 인생에 대책없는 사람들이 ‘혼자 있으니 얼마나 쓸쓸하겠어요?’ 하는 유혹에 ‘아니오’ 하지 못하고 휘말리게 되는 것인데, 그것도 이제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신선한 맛이 떨어지는지 그런 일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 적어도 들러리를 설 것이라면 젊고 이쁘고 활기차고 신선해야 되는데, 또 진지하게 경청하고 환호해야 되는데, 점점 늙어가고 그 사람들의 자랑 거리란 게 내 입장에서도 뻔해지다보니 그 반응이 격렬하고 감동스럽지 못해져가니까 들러리로서의 효용성이 떨어지는 것이겠지 한다. 역시 나이들어가고 누군가에게 익숙해지고 지루한 상대가 되어가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나 별로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

너무나도 어수룩한 나머지 나는 가끔씩 지루한 상대가 되지 않으려고 원치도 않는 정보라도 알아두어야겠다 책도 읽고 좋은 강의도 찾아듣고 많은 정보수집을 하지만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유용하고 새로운 정보를 물어다주는 것 보단 그들의 자랑을 들어주며 새롭고 발랄한 반응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shut up and listen’이지만 ‘young and fresh’ 해야 되는 것이다. 그들의 자랑을 이미 여러 번 들었으면 들러리의 수명이 다했다는 것이다.

이게 혼자 있기 때문에 겪게 되는 수모(?)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람들은 어차피 이기적인 것이고 이기적이지 않다는 가면을 쓰고 이기적인 짓을 하는 게 또 사람이니까, 긴 휴일을 가족과 같이 보낸다고 해서 달라질 이유는 없다. 어쩌다 한번씩 만나는 들러리도 지겨워질 마당인데, 매일 같이 얼굴보며 살고 있는 사람에게 지루하고 따분한 존재가 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진작에 되고도 남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따분하고 지루한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든 어필하다 못해 가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꼴도 보게 된다. 그들은 지루함을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라도 지루해져 민폐만 끼치고 있는 나를 학대 해줘야 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해줘야 당연한 줄 아는 인간도 늘어만 간다. 자신들 또한 엄청나게 지루한 상대라는 것은 망각한 채 말이다.

인간이 인간과 함께 지내는 것이 그렇게 가학적이고 잔인해야 하는 것이면 그렇게 똑같이 가학적이지 못해서 늘 학대 상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라면 혼자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 모처럼 새로운 분야의 책을 하나 잡고 통독을 할 수도 있고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끝을 볼 수도 있다. 직장에서 제공하는 휴일은 이틀이라 주말을 붙이면 4일인데, 어차피 1주 내내 휴일분위기로 흘러서 사실 1주 정도를 놀게 되는 셈이라 뭐든지 프로젝트 개념으로 일을 벌여서 마무리할 시간이 충분히 된다.

어차피 인생은 자기만족 아닌가? 그렇게 새로운 재미를 터득해서 즐거운 시간을 그만이다. 뭘 해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 시간을 지겨운 남의 자랑을 듣고 환호해주며 멘탈 탈탈 털리고 그것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쓸데 없이 먹어대며 살을 찌울 수도 있고, ‘우린 가족이니까’ 하며 가학적인 배우자에게 정신적으로 학대 받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 ‘쓸쓸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날 쓸쓸하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오직 나 자신 뿐이다. 괜히 서로에게 상처주지 말고 쓸쓸함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인생 계급장/위장복 같은 거 다 벗어 버리고 서로 찾아만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텐데 왜들 그렇게 빡빡하고 답답하게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