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블랙 프라이데이 감상..

예나 지금이나 별로 소비하는 게 없는 내 입장에선 블랙 프라이데이는 남의 이야기이다. 바다 건너에서 블랙 프라이데이를 처음 알았을 땐 이 좋은 구매의 찬스를 왜 놓치나 했지만, 배송비가 만만찮고 배송기간도 늘어나는 이유 때문에 ‘남의 잔치’로구나 했던 것 같다. 막상 눈 앞에서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떠들썩 한 것을 여러 해 곁눈질 한 바로는, 이것은 그냥 매년 있는 (고마진) 재고 떨이기간이구나 할 뿐이다.

그러니까,

그냥 재고 떨이 마케팅 행사일 뿐. 정말 말 그대로 ‘no-brainer’ 가격으로 나오는 것은 없다. 평소에도 꾸준히 팔리는 물건이 세일로 나올리도 없고. 원래 안팔리고 원래 마진률이 높은 애들만 나온다. 아예 재고가 될 물량이라 이 기간에 안팔려도 올해 안엔 팔려야 되니 그냥 가격 인하가 된 거나 마찬가지다.

11월 11일이라고 광군절(?)에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세일을 한다고 했는데, 블랙 프라이데이는 이보다 약 2주 뒤이다 보니까 어정쩡한 상황이 된다. 사실 미국에 들어와있는 대 다수의 물건들이 중국에서 온 것들이니까 광군절에 세일 해놓은 가격이 어정쩡하게 그냥 2주 내내 유지되다가 블랙프라이데이를 맞고 그렇게 해서 재고 소진때까지 그 가격으로 간다.

그렇지만 올해도 티비를 보면 사람들이 매장 앞에서 줄 서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미친 듯이 물건을 집어들고 나오는 광경이 나온다. 들고 나오는 물건들을 보면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물건들, 그동안 안가지고 있었지만 아무 상관없는 물건들이지만 값이 싸졌다는 이유로 들고 나오는 것 아닌가 싶은 물건들이다. 그래도 내년 신상들이 들어올 매장 공간을 마련해주었으니 성공인 셈이다.

좀 아쉬운 일이긴 한데, 전반적으로 기술 수준이 너무 높아지고 뭔가 엄청나게 획기적인 필수기능(?)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보니 작년 물건과 올해 물건의 차이는 약간의 디자인의 변화밖엔 없다. 그러니까 올해 재고가 싸져야 할 큰 명분을 마련해주지 못한다. 또 중국에서 ‘기능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가격은 거의 절반인’ 물건들을 꾸준히 내주고 있는 덕택에 블랙 프라이데이의 효과를 크게 떨어뜨린다.

특별히 미국 브랜드 제품 + 삼성 제품에만 꽂혀있지 않고 중국 브랜드로 초점을 옮기면 사실 거의 블랙프라이데이 에브리데이인 셈이다.

어차피 정작 쓸만한 물건들은 그다지 세일을 하지 않을 뿐더러, 이 참에 값을 내려버리고 블랙 프라이데이니 사이버 먼데이니 끝나도 할인 가격을 유지한다. ‘이 날이 아니면 안돼!’ 했지만 안 팔렸으니까 그대로 그 가격에 파는 것이다.

TV는 정말 매년 엄청나게 가격이 떨어지는데, 최근 2-3년은 거의 반토막이 난듯 하다. 그 이유가 기존의 티비의 수명이 너무 길고 점점 더 티비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을 뿐 아니라 LCD/AMOLED 생산단가가 (심한 경쟁 때문에)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나야 생필품, 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먹는 게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갑자기 싸질 리도 없고, 옷도 내가 보는 극 저가대 의류에서는 변동폭도 적을 뿐더러 한번 값을 내려놓으면 그 모델이 전부 다 팔려나가지 않으면 재고가 되어버리니까 내내 그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게 된다. 기왕에 값을 내렸으니 사람들이 와서 재고를 전부 털어갔으면 했던 건데 그렇지 않은 것이니까.

정상가 매장에 가본 기억은 나지도 않은, 코스트코나 이베이 같은 곳에나 얼씬 거리는 내 입장에서는 매일 매일 블랙 프라이데이 가격으로 물건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거 생활 수준이 너무 다운 것 아닌가? (내 벌이가 이 정도로 암울하진 않은데..)’ 하지만 막상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보다도 더 한 짠돌이 생활을 하는 것 같다. 벌이도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 1년 내내 거의 비슷한 옷을 입고, 그 옷이라는 것도 1년 내내 입는 옷이라고 하기엔 많이 아쉬운 수준임에도. 그러니까 너도 나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벌이와 상관없이 씀씀이는 서울 기준으로 보면 거의 바닥을 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어느 것이 합리적인 소비인 것이냐에 대한 의견은 많겠지만, 한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하는 것이나 한푼이라도 덜 쓰겠다고 하는 것이나 내 눈엔 같아보인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라는 말은 힘들여 벌어온 가치를 값어치 있게 쓰겠다는 말이라고 이해하고 보면 (남들의 눈을 핑계로) 작년에 입던 옷을 올해 또 입기 싫으니까, 또 (남들의 눈을 핑계로) 정상가 매장에서 (남들보기에 없어보인다며)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옷을 (유행에 뒷쳐질 수는 없다며) 신상을 꼭 입어야 겠다고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사는 것은 ‘정승같이 쓴다’라고 보긴 어렵지 싶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SNS가 그런 ‘경쟁심리(?)’ 혹은 ‘남의 눈(?)’을 의식하게 만들어서 대중 소비를 엄청나게 이끌어낸 것에는 ‘상’을 받아야 마땅하지 싶다. 특히나 프리미엄을 더 주고도 무엇인가 사고 입고 쓰고 해야하는 명분을 더 마련해주었으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선 여전히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뭔가 한다는 것은 내가 ‘정승’처럼 보이는 데 일조 하기 보단 ‘호구’처럼 보이는 것 아닐까?

뜻하지 않게 나의 고객들이 얹어준 프리미엄때문에 내 벌이가 갑자기 그렇게 늘었다면 물론 나도 그런 ‘호사(?)’를 누려볼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