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 빼기: 3개월간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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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이란 게 생겨난 것을 기억해보면 20대 후반에 갑자기 살이 찌게 된 다음이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말로는 몸이 두 배가 되었다고 했다. 당시 대략 10kg 정도가 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는 몸무게가 약간씩 늘기만 했지 줄어든 때가 거의 없다. 성장기때엔 키가 크고 덩치가 커지니까 매년 몸무게 증가가 정상적인 것인데, 성장기가 다 끝난 이후에도 매년 몸무게 증가를 정상적(?)인 것으로 나도 모르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몸무게가 늘수록 (운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덩치가 좋아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팔다리가 굵어졌다든가 하진 않고 내 눈에 잘 띄진 않았지만 배가 나오고 있었던 것 같다. 서서히 배가 불러왔기 때문에 배가 나온지 몰랐지만 주위 사람들은 배 좀 넣으라고 하는 얘길 종종 들어왔던 것 같다. 스스로 배가 나왔다고 자각하지 못하니까 주변에서 배 좀 넣으라고 얘기하는 것에 무감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농담하는구나 혹은 배가 좀 나왔나? 이럴 뿐.
뱃살을 자각 하는 방법은 매우 쉽다. 거울을 보고도 자각을 못하면, 스스로 정상이었던 시절의 전신 사진과 지금의 전신사진을 비교하든가 그냥 지금의 전신 사진을 멀쩡한 public figure들과 비교해서 보기만 하면 된다. 뭔가 자각을 하게 되면 ‘뱃살만(?) 빼면 좋을텐데’, ‘다 좋은데 배가 많이 나왔네(?)’ 하며 뱃살만(?) 빼는 방법론을 찾게 된다.
뱃살을 빼는 것에 대해서 수많은 이론들이 난리를 친다. 뭘 먹어(?)야 된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어떤 운동을 해야(?) 뱃살만 뺄 수 있다, 혹은 근육은 그대로 두고 체지방만 뺄 수 있다고 한다. 아주 간단한 상식만 있어도 말이 안되는 말인데, 속는 사람이 많은지 이렇게 사기를 쳐도 되나 싶을 정도로.
뱃살을 없에는 방법은 뱃살이 없을 시절의 몸무게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냥 덜먹거나 굶거나 하면 된다. 더 먹어서 생긴 뱃살이니까 덜먹으면 없어진다. 너무 간단하면 그 방법론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든가 ‘그걸 누가 몰라? 누가 그런 방법으로 하겠대?’ 하며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다. 너무 간단하고 쉬운데 일부러 특수한 방법(?)이나 비결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착각들을 한다. 덜먹지 않고도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질량보존/에너지보존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먹은 것이 도로 몸밖으로 나오게 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엔 말이다.
또 덜먹으면 몸에 이상이 온다고 생각한다든가 쓰러지는 게 아니냐, 요요가 오는 게 아니냐 하는 쓸데 없는 생각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예전 그 몸무게로는 어떻게 (죽거나 쓰러지지 않고) 살아왔단 말인가?
어렸을 땐 아무거나 막 먹어도 살이 안쪘다는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 기억력이 나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정상 몸무게였을 땐 활동량이 많았거나 확실히 지금보다 덜 먹었을 때다. 스스로 이것 저것 많이 먹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
내 경우 비교적 슬림했던 내 20대 중반 시절의 몸무게에 접근하면서 아침마다 뱃살이 심하게 빠져있는 모습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둥근모양으로 불룩 나와있어야 할 배가 신기하게도 평탄한 모양을 유지하면서 복근의 윤곽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짐에 가서 미친 듯이 운동한 것도 없고 누구처럼 밤낮으로 조깅을 했다거나 무슨 다이어트 식품을 사다 먹지도 않았다. 사실 그런 짓거리를 할 때엔 힘만 들었지 딱히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왜? 그저 단기간 뭔가를 해보고 변화가 없으니 스스로 변명을 대면서 꾸준히 하지 않았으니까.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덜 먹었다. 정상적인 식단을 유지하되 양을 줄이라고 하지만, 난 간식은 원래 하지 않으니 하지 않고 점심을 건너뛰기도 하고 저녁을 건너뛰기도 한다. 어떤 날은 한끼만 먹기도 한다. 적게 먹다보면 공복감이 생활화되는데, 반대로 어쩌다 예전의 양만큼 식사하면 과식한 듯한 느낌도 들고 부담도 느껴진다. 소화력이 떨어진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것은 나의 경험에 따르면 잘먹기 시작하면 소화력은 그에 맞춰서 다시 좋아진다.
식사에서 과한 탄수화물이다 싶은 것은 다 뺀다. 이를테면 빵이라든가 면, 쌀밥을 과하게 먹는 짓은 하지 않는다. 감자도 되도록이면 피한다. 솔직히 한국 사람에게 쌀밥을 빼버리면 다 빼면 고기 (of any kind), 야채, 계란 밖에 남지 않는다. 하루 섭취량이 대충 계산했을 때 1000 kcal이 안되는 날이 많아진다. 그래도 쓰러지거나 하지 않고 잘 살고 있다.
허기짐이 올 때엔 뭔가에 그냥 열중 했다. 아예 허기짐이 올 것 같으면 미리 뭔가를 했다. 그래도 못 견딜 땐 삶은 계란 한개 (대략 70kcal (콜라 한 캔의 절반 정도의 열량))를 먹거나 커피를 마셨다. 견과류가 좋겠지 해서 사다 놓는 경우가 있었는데, 견과류는 허기짐을 해소하는 데 별 도움이 안되고 포함된 지방의 고소함때문에 계속 많이 집어 먹게 된다. 또 커피라고 해봐야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커피 가루를 내린 물을 마시는 것인데, 이게 맛이 쓰면 입맛 없어지는 것엔 약간 도움이 된다. 이걸 큰 잔으로 하루에 3-4잔 하고 나도 허기짐은 지속되지만 안먹고 버티는 시간을 늘려준다. 무엇보다도 뭔가에 정신 팔려있으면서 시간을 버는 것보다 좋은 게 없다.
거꾸로 생각해서 내가 살이 찌고 있다는 것은 열중할 게 없고 진지하게 하는 게 없다는 말도 되고, 또 반대로 너무 스트레스 받고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과하게) 먹었다는 말도 된다. 안먹고 버티는 시간을 뭘로든 늘려주면 된다.
이론가들이 외치는 것처럼 GI(Glycemic Index) 지수이니 몸에 좋은 뭘 먹어야 된다는 것은 사실 다 필요가 없다. 기왕에 탄수화물을 먹는다면 GI가 낮은 것을 먹으면 좋겠지만 그 양이 작으면 그다지 의미가 없다. 원래 소식해서 말랐다거나 활동량이 많은 사람들이 매끼니 GI가 높은 쌀밥을 먹는다고 해서 그게 혈당에 문제가 된다거나 지방 축적(?)을 염려해야 할 일은 없다. 평소에도 늘 과식하는 와중에 살이 찌고 있으니 ‘쌀밥보다 현미가 낫지 않을까? 아니 현미보단 oatmean이?’ 하는 것이다.
20대 초중반에 살이 안쪘던 이유가 있다. 호르몬의 영향? 의미가 있는 말이긴 한데, 당시엔 뭔가에 많이 열중했다. 또 차가 없었으니 어딜 가든 지하철 버스를 타려고 늘 걸어야 했고,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고 여기 저기 많이 다녔다. 이곳 저곳 강의장을 다닌다고, 또 식당 가는 것도 한참 걸어갔다. 적게 먹는 것에 익숙해서 뭔가를 미친 듯 많이 먹지 못했다. 직장에서 하듯이 회식을 하는 일도 없고, 술도 별로 마시지 않았다. 간식이나 야식도 게을러서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온종일 앉아서 일을 하고 출퇴근도 셔틀 버스를 태우는 회사를 다니게 되었으니까 이땐 분명히 평소보다 덜 먹어야 했지만, 열심히(?) 일을 하니 잘 먹어야 한다며 아침까지 절대로 거르는 법이 없었고 하루 종일의 활동이라곤 내 자리에서 식당을 왕복하는 일, 셔틀 버스에서 집까지 걷는 일이 고작이다. 1-2년 지나면 몸무게가 부쩍 늘어나는데, 역시도 멍청하게 ‘아 학교 다닐 땐 날씬했는데/뱃살이 없었는데/이게 다 나잇살이야 나잇살’ 이럴 뿐이다.
먹는 것도 습관이고 어떤 것들은 중독성이 있어서 점점 더 많이 먹어야 포만감도 있고 더 만족스럽게 느끼게 되는 그런 게 있다. 직장에 들어가서 회식하거나 뷔페에 갔을 때 웬지 더 많이 먹어줘야 본전 뽑은 듯한 착각을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해서 양을 늘리고 나면 평소에도 더 많이 먹게 된다 알게 모르게. 또 집에서는 한창 자랄 땐/힘 많이 쓰는 시절(?)엔 많이 먹어야 한다고 많이 먹으면 좋아라(?)한다. 20대 초 중반에 뭘 더 자랄 게 있을까만.
누군가를 사귄다거나 하면 또 살이 찐다. 서로 얼굴보고 만나야 하니 평소에 하지 않던 간식을 이상스레 자주 먹고, 혼자 지낼 땐 귀찮으니 툭하면 지나치던 끼니까지 꼭꼭 챙겨먹는다. 같이 살게 되면? 같이 할 별 다른 게 없으니 계속해서 같이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이것 저것 해먹는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 같으니까. 그래서 서로 같이 살이 찐다. 결혼 전엔 날씬했는데 하면서 스스로 기억력이 나쁘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면서 말이다.
가벼운 간식이든 끼니든 3-400 kcal는 거뜬히 넘어가는데, 이거 하나만 놓고도 대충 한달만 따져도 9000/12000 kcal가 된다. 1g에 9kcal인 지방으로만 계산해도 1kg이 넘는다. 1년이면 지방만 12kg이 된다. 평소 안먹던 끼니나 간식만 늘려도 이 정도가 된다. 따라서 내 몸(식욕)이 알아서 컨트롤 못하면 내 뇌가 컨트롤 해야되는 것이다.
3개월간 체중 감량은 매우 간단했다. 단순히 먹는 양을 줄일 뿐이다. 하루 1000 kcal 언저리로 조정한다. 그 결과는 수 많은 이론가들이 얘기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 처음 몇 주간 감량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2주 정도면 3-4kg 감량이 된다. 흔히들 글리코겐과 물이 빠져나간다는 경우다.
- 첫 2주가 지나면 감량속도가 현저히 둔화된다. 웬만큼 덜 먹는 걸로는 감량이 되지 않고 공복감과 식욕과 씨름해야 한다.
- 한달 반 정도 지나면 이렇게 덜먹고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가, 이러다 곧 죽게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 두달 정도 지나면 비루한 현실(?)에 적응이 되면서 날씬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돌아온다. 날씬했던 이유가 많이 먹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을 기억하게 된다. 아주 가끔씩 포식할 때가 있었을 뿐.
- 세번째 달에는 아침 샤워할 마다 복부가 특히 슬림해진 나를 만난다. 얼굴도 해쓱하다 못해 심하게 노안이 되어있지만 기억을 되돌려보면 슬림했던 시절에 얼굴 좋다는 얘긴 듣지 못했다. 얼굴도 아아주 호오올쭉 했기 때문이다.
지방과 물이 많이 들어있던 부분의 볼륨이 빠지면서 마치 ‘근손실’이 일어난 느낌을 받는다. 글쎄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해서 ‘득근’ 한 적도 없는 사람이 잃어버릴 근육이란 게 딱히 있을까 싶다만.
체중과 체지방은 그냥 나의 식습관/생활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살빼는 문제는 아주 쉬워진다.
체중과 체지방이 맘에 안든다면 그것은 내 식습관과 생활스타일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란 것이다. 나이먹고 호르몬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많이 흡수한 에너지를 호르몬이 강제로 소모시킨단 말도 못 들어봤고, 근육이 많이 생겼다고 갑자기 하루에 2-300kcal 정도의 열량을 더 태우게 되었다는 말도 못 들어봤다. 식습관과 생활 스타일은 유지하면서 체중과 체지방을 줄이고 싶다는 것은, 글쎄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또 근육이 조금 늘어난 것으로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 한 끼니를 덜 먹은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하지 않고서는 운동으로 인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결론은 그냥 덜먹는 거다. 뱃살이 더 늦게 빠진다고? 그건 착각일 뿐이다. 몸에서 물만 빠져나가도 뱃살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느끼지 못할 뿐. 몸무게가 슬림하던 그 때의 몸무게로 돌아갔는데도 뱃살은 그대로다 라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아니면 시력/기억력에 심한 장애가 있는 것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