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해를 마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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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짝수를 좋아하는 관계로 2018 이란 숫자가 맘에 들었는데 (이게 합치면 20도 되고 겸사겸사) 이제 곧 2019를 보게 된다. 숫자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만.
한 해를 마감하면서 궁금한 마음에 페북에 아이디를 아무거나 만들어서 들어갔더니 이놈의 페북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 모두 보여준다. 잘 지내는지 못 지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간 많다.
얼굴을 보니 너무 반가운데 다들 보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얼굴 사진과 승진했는지 어쨌는지 떡하니 붙어있는 회사 직함들뿐이다. 그냥 회사 직함 말고 나 요새 행복해, 나 심심해 이런 게 붙어있으면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디 살고 어느 회사에서 뭘 하는지 그렇게 붙여놓지 않아도 페친들 끼린 다 아는 것 아닌가. 무슨 구직/스카우팅 하는 사이트도 아니고. 나 = 사회적 타이틀인 건가? 누가 생각하면 ‘넌 내세울 타이틀이 없어서 열폭 하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나한텐 별로 의미가 없다. 내가 도움을 구걸할 것도 아니고 나한테 어떤 도움을 구한다 하더라도 내 사회적인 위치로 도와줄 수 있는 것도 (내가 사장이나 권력자가 아닌 관계로) 없다.
페북이란 세계가 언뜻 보면 전 세계 사람들이 한 공간에 들어와서 서로 페친되고 뭐 소통하고 어찌어찌할 것 같지만, 이게 나름 폐쇄적인 공간이다. 끼리끼리 놀려고 들어오는 공간이란 말이다. 내가 어디 살고 어디서 뭐 하는 사람인지 만방으로 오픈해 놓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별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가 잘 모르는 타인이 나에 대한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를테면 흥신소 사람들이 큰 노력들이지 않고 페북에 내 이름만 치면 딱 찾을 수 있고, 그때 내 모든 정보가 국가 전산망에 올라간 내 신상정보만큼이나 아니 더 자세하게 단 한 번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그런 존재는 아니었으면 하니까 말이다. 오픈해야 소통할 수 있으니 오픈되게 해놓고선 privacy를 걱정해야 하는 공간이 그곳이다. 멍청하게 default로 놔두고 하고 있으면 내 미주알고주알이 온 세상에 오픈되는 것이고, 어차피 오픈할 거 없는데 SNS 뭐 하려 하냐라고 하면 또 할 말 없다만. 법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나에게 공격을 시도하려는 상대방 쪽에서 가장 먼저 시도하는 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SNS 뒤져서 어떤 인간인가 알아보기. 지피지기라야 백전백승한다니까 그러는 모양인데 기분 매우 나쁘다.
어쩌다가 오래전에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나면 그동안 조용히 내 페북을 스토킹 해왔다는 얘기도 듣는다. 난 그 인간이 어디서 뭐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게 없다. 열어놓은 것도 없고 보여주는 것도 없으니까. 뭐냐 도대체 이런 인간은? 난 바보같이 친구라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오픈해놨건만 자긴 베일에 싸여있는 채로 스토킹이나 하겠다는 건가? 그것들은 그저 나의 자랑질이었던 건가? 또 그런 이유로 별 탈 없이 보이려면 어떠한 형태로든 유지시키는 사람도 봤다. 무슨 부도난 회사가 아닌 것처럼 문 열고 있는 것처럼 이나.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다들 대외적 직함들을 달고 계시니 그냥 안부라도 묻기도 뭐 하다. 예전엔 서로 농담 까먹으며 터놓고 지내던 친구도 그렇게 만나고 보면 그냥 공적인 사회의 페르소나로서의 1:1 교류가 되는 것이다. 뭐냐. 도무지. 그럴 거면 내가 그 사람과 소통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난 그냥 반가워서 인사나 하고 싶은 것일 뿐인데 뭔가 노림수가 있어서 접근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 아닌가?’원래 서로 그렇게 남남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애매한 상태로 있으면서 자랑질이나 하라고 만들어 놓은 공간에 가서 왜 naive 하게 인간 대 인간의 교류를 생각하고 있느냐? 바보 아니냐?’라고 해도 할 말 없다. 그걸 그렇게 naive 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내가 문제 있는 것으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만 정말로 그러하다면 너무 삭막한 것 아닌가? (왜 나만 몰랐지?)
너는 너, 나는 나의 서구 사회에서 온 것이라 그러하다면 인정이 될 것 같은가? 서구 사회라고 그런 것이 없을 거라고 보는 건가? 불평이 좀 많았다. 거들떠보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나에게 더 이상 naive 한 인간관계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 규정하고 그냥 내 갈 길이나 가면 그만이다. 오랜만에 잘 살아있는 것을 보니 반가워서 인사 한마디 나누기도 뭐 한 지경이 되었다면 들락거릴 하등의 이유도 없다. 그런 마음으로 안부 인사 날렸다가 ‘무슨 용건이냐 (=what do you want from me?)’라는 대답이나 듣게 될 세상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