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치는 게 찰진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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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베이스를 갖고 있지 않다가 베이스를 작년 가을엔가 사놓고 요새 가끔씩 치는데, 정말 재미있단 생각이다.
다른 악기들 같으면 어떤 노래를 한 두 번 듣고 코드를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라도 원곡의 연주를 따라가기란 쉽질 않아서 악보가 없는 한 답답하고, 사실 악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교하게 따라가려면 사실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보니 재미가 점점 시드는 게 문제다. 다시 말해 연주를 즐긴다기 보단 연습하면서 카피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그럴 수록 (스스로에게) 화내게는 일이 더 많아서 즐긴다는 것과 멀어진다.
그런데, 베이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베이스라인을 완벽하게 따라 치지 않아도 그만이고 처음 듣는 노래도 그 코드를 금방 따라갈 수 있고 그렇게 코드를 따라가다보면 재밌는 진행도 배우게 되고 듣기엔 상당히 재미있는데 코드 진행은 생각보다 단조로왔다거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서 더더욱 즐기게 된다.
그러니까 베이스를 잡고 한번도 연주해 본 적 없는 곡을 틀어놓고 코드를 따라가다 보면 (대개의 곡들이 반복을 하는 구조이니까) 반복되는 코드 흐름과 곡의 전체 구조에 금방 익숙해지니까 즐기면서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기타 리프라든가 잘 안되는 솔로 몇 마디 때문에 골치아프다가, 또 애매한 화음 때문에 답답해하며 악보 어디서 찾아봐야 되나 인터넷을 뒤지다가 ‘오늘 연습 여기서 끝!’하는 낭패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 저것 하다보면 매일 같이 핑거 베이스를 열심히 연습하지 않아도 점점 실력 (제 박에 음을 잘 때려넣는 것)이 좋아짐을 느끼게 되고, 뜻하지 않게 슬랩을 만나더라도 슬랩 자체에 목메서 연습할 때보다 점점 더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을 느끼면서 악기도 진도 뽑기가 목적이 아닌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 재미도 있고 발전도 있구나 싶다.
그동안 어려운 테크닉으로 진도 뽑기 하는 걸 목표로 살아왔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려웠던 프레이즈는 다 잊게 된다. 아무리 완벽하게 연주해냈다 해도 한 두달 잊고 지내면 여전히 새로운 프레이즈처럼 다가오게 되고 안외워지는 것은 죽어라 해도 외워지지 않는 걸 보면, 역시 타고난 재능만큼만 하게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다 타고난 게 다른 데, 그래서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건데, 늘 못하면서도 무대에 나오는 사람들을 (노력하지 않으며 나댄다며) 비난하고, 반대로 비난 받을 까봐 절대 사람들 앞에 나서진 않으면서 재능을 타고난 소수의 사람들처럼 연주하고 싶어서 되지도 않는 암벽타기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저마다의 암벽이란 게 있고 스스로 자랑스럽다 싶으면 무대 위에 올라올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역시도 또 하나의 암벽타기와도 같은 것이니까. 다들 저마다의 패이스로 달리는 세상에서 나보다 뒷서거니 앞서거니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데 그런 것에 일희일비했던 것들이 반성된다.
그저 즐기며 달리기에도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을 몰랐기에 그랬지 싶고. 그냥 재밌으면 되는 거다. 적어도 아예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고, 음악 또한 그렇게 듣고 즐긴 적이 없어서 악기를 연주할 때의 그 엄청난 재미를 지금도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물론 virtuoso의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것은 다소 애석하지만 그들의 음악과 연주에 감동받고 환호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살아가는 것도 또한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