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Haircut

목표치가 높으면 생각보다 어렵고 아니면 생각보다 쉽다.

괜히 어줍잖게 머리 깎으러 갔다가 코로나 옮아오는 것 보단 이게 낫다고 본다. 전혀 내 생각과 다르게 자를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고려하면 셀프 헤어컷이 훨씬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미국 처음와서 동네 사람들 머리스타일을 보니 도저히 어디 가서든 애매하게 잘랐다가 낭패를 보고 싶지 않아서 하나 구입했던 클리퍼가 있었는데, 당시에 이래 저래 시도하려다가 결국 동네에서 머리를 자르고 (낭패가 된 이후로는 계속 그렇게 자르게 되어) 한번도 쓰지 않고 쳐박아두던 것을 이제서야 요긴하게 쓰게 되었다.

그 때엔 선택권이라는 게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으니까. 사실 머리 자를 때 쯤 자택 감금령이 내려졌으니까 그 이후로 2달이 더 지나버린 상황이라 자르지 않고 버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아마 한국 사람들은 훨씬 더 경량의 배터리로 작동하는 기민한 클리퍼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이 동네에서는 Wahl이라는 회사에서 나오는 클리퍼를 많이 쓴다. 가격도 쓸데 없이 비싸고 배터리 구동이 아니다. 100V로 구동되는 기계다. 당시에도 배터리로 구동되는 게 있었는데 쓸데없이 비싸서 이 물건을 선택했던 것 같은데, 여하튼 이게 가증 흔한 전동 바리깡 되겠다.

생각보다 다양한 플래스틱 덧날(?)들이 있어서 매우 길게도 혹은 매우 짧게도 자를 수 있다.

그래서 권장하건데, 나처럼 처음도전 하는 것이라면 제법 길게 자르는 덧날 (25mm?)을 끼우고 꼭 잘라주어야 할 부분부터 시작해보길 권한다. 몇 번 왔다갔다 해보면 감이란 게 금방 생긴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덧날의 높이를 낮춰서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길이로 잘라주는, 또 대충 왔다갔다하더라도 실수하기 어려운 덧날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다.

가장 어려운 것은 뒷통수의 가장 아랫부분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게 잘 안보인다. 나안 시력이 안좋은 문제도 있지만 클리퍼와 거울을 들고 있으려면 양쪽팔 모두 올라가야 되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을 가려버리기도 하고, 거울을 보고 하는 액션이라 내가 생각하는 운동 방향과 반대라 적응이 잘 안된다. 무엇보다도 크고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 잘라야 되는 게 문제다. 칼날이 언제 머리칼에 닿게 될지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6mm 보다 아래의 덧날을 대는 것은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한다. 실력이 없다면 6mm이하는 도전하지 않는 게 좋고 막상 실수하더라도 그것을 보완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한방에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이번에 잘 안되었다면 다음에 좀 머리를 기른 뒤에 또 도전하면 되니까.

유튜브에 보면 생각보다 기술자(?)들이 많아서 그들의 클리퍼 동작을 보면 악조건에서도 손놀림이 매우 능숙한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거울을 대충 들여다보면서도 능숙하게 뒷머리를 쳐내는 걸 보면 한 두번 익힌 솜씨가 아니다.

욕심을 너무 부리지 않으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볼 수 있다. 즉, 2-3개 정도의 덧날로 옆머리와 길게 아래로 자라난 뒷머리만 적당히 잘라내도 매우 깔끔해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분명히 처음엔 25mm 정도의 긴 덧날로 시작하길 바란다. 그리고 6mm 이하는 웬만하면 도전하지 않는 게 좋다. 손놀림이 서툴 수 밖에 없는 초반엔 리스크가 낮은 25mm 덧날로 시작해서 25-18-12-6 의 순서로 클리퍼가 움직이는 범위를 점점 줄여서 작업하면 되지 않나 싶다.

사용하는 덧날의 레졸루션이 촘촘하지 않고 손놀림이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을 주기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약간 층이진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초보자가 그 층이 자연스러워 보이게끔 덧날을 바꿔가며 다듬으려 한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라고본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에 괜히 엄한 짓을 하다가 망치고, 그걸 보정하려고 점점 더 깎아내려가다가 총체적 난국을 맞게 되는 것에 비하면 적당히 포기하고 나머지를 건지는 선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으면 커트를 해야 하는 순간이 빨리 다가오기 때문에 연습할 기회도 더 많아진다. 반면에 이리 저리 다듬으려 하고 쓸데없이 기술을 구사하려다 망쳐서 어쩔 수 없이 짧아져버리게 되면 회복시간도 길고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