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각...

흔히 카메라를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의 폭을 화각이라고 말하는데, 이 단어의 어감은 그림 + 각도라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angle of view (시야각)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이게 사실상 가장 넓게 쓰이는 말이다 보니까 그러려니 하고 사용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렌즈가 광각이냐 망원이냐를 따질 때 쓰게 된다.

스마트 폰이 보편화되고 나서는 카메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좋은 사진을 잘도 찍는다. 그 전만해도 좋은 장비에 책 좀 읽었다거나 어디 동호회라도 가입해서 전문가와 출사도 나가고 해야 사진 좀 찍는구나 했겠지만. 좋은 감각 + 좋은 기회 앞에서는 비싼 장비 + 지식 따위는 다 무용 지물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별히 배우거나 하지 않아도 인터넷 덕택에 잘 찍은 사진들도 많이 보고 그런 감각을 나도 모르게 따라 배우는 게 적지 않다보니까 눈썰미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전문가를 능가하는 사진을 찍게 되는 거라고 본다. 어차피 노출이니 뭐니 몰라도 그만아닌가? 카메라가 다 알아서 해주는데. 그보다도 카메라 입장에서는 좋은 재료가 되는 좋은 배경을 제공하는 곳에 가서 그곳의 임장감이 주는 경이로움과 호기심 가득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게 더 먼저다.

내가 어려서 생전 처음 잡아본 카메라도 아버지가 즐겨 쓰시던 카메라도 필름 + 수동 카메라였는데, 조리개니 노출이니 하는 거 전혀 모르던 시절에 아무 거나 보이는 대로 덜컥 덜컥 찍었지만 좋은 사진들을 너무 많이 건져서, 그 사진을 현상해 오시던 날 되려 카메라와 오랜 시간 같이 해오신 아버지께서 꽤나 머쓱해하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공 기술 따위야 좋은 재료를 당해낼 방법이 없고, 사진을 촬영할 때의 그 경이로움/호기심 가득한 순간엔 구도를 어떻게 잡아야 되느니 따위는 다 의미가 없어진다. 어차피 촬영자가 보고 싶은, 담고 싶은 것 그대로 담으면 그게 최적의 구도이니까.

생전처음 DSLR을 구입해서 처음 찍었던 몇 십장의 인물 사진들이 내가 여태 찍어왔던 사진들 중에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카메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아이가 아무렇게나 눌러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놀라게 되듯. 대상에 대한 경이로움과 호기심, 사랑의 감정이 그 사진에 담기게 되기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물론 그렇게 담긴 것들을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것을 촬영했던 과거의 나의 주인인 지금의 나는 기억해낼 수 있다.

요샌 뭐랄까 어차피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순간을 담아놓고 그것들 다시 바라보며 생각의 젖는 것은 그래도 평온을 찾고 있는 내 자신의 연못에 괜히 돌을 던지고 있는 짓이라 생각하게 된다. 괜히 건드려서 지금이 그때만 못함을 되새기게 만들기만 할 뿐. 뭐랄까 하면 안된다, 하기 힘들다, 잘 되지 않을 것이다. 해봐야 별 도움 안된다. 이런 생각이 정말로 뿌리깊게 자리 잡아버린 모양이다.

삶이라는 게 별건가? 경이로움, 신기함, 놀라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가져다 줄 즐거움에 대한 희망.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강력한 충동, 열정 이런 거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나? 왜 어쩌다 이런 것들 내 안에서 찾을 수 없게 된 것인가?

가만히 앉아서 렌즈 화각 따위 따지는 게, 렌즈 플레어는 없는지 배럴 디스토션이 얼마나 되고, 그것이 후보정으로 제대로 보상이 되는지 않되는지, 그것들의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 따져보고 있는 게 다 무슨 의미인가? 즐거움의 원천인 희망과 호기심이 솟아나던 시절엔 난 카메라와 렌즈는 고사하고 그 흔한 스마트 폰 하나 없이도 즐겁게 잘만 지냈는데.

지금도 난 내 삶에서 무엇이 가장 귀하고 중요한지 하나도 모르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