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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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회사 생활이 한참 힘든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저녁마다 사람들 데리고 가서 소주 한잔 하자고 붙잡던 직장 선배가 있었다. 이 분의 장점은 늘상 웃는 낯이란 것, 인상 구기는 일이 별로 없단 것, 뭔가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서 믿는 구석이 있단 것.
이 분이 주로 하던 말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이게 솔직히 30대 초반이 이해하긴 쉽지 않은 말이다. 지금 내가 직면하는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잘 모르는 일이고 미친 듯이 달려들어 해결하려고 하곤 있는데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러니까 지금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협소해서 그 모든 경험들이 다 훗날을 위해 체득되고 있는 것이고 그 골치 아픈 순간이란 것도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당장의 고통에만 몰입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생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다보면 인생 전체가 다 지나가버려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당장 마주하는 걱정들, 다가올지 아닐지 모르는 것에 대한 걱정들까지 쓸데없이 해가면서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인생 전체가 다 지나가버려져있는 것이란 말이다.
오늘도 별 것 아닌 일로 여기 저기 왔다갔다 뛰어다니고 ‘혹시 잘 안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차피 적어도 여태 ‘바보까진 아니야’하는 내가 움직였는데 일이 안좋은 방향으로 풀려갈 일이 있을까? 원래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정해진 일은 시작할 때 부터 알아채게 되어있다. 우리가 가진 그 지각 능력이란 것이 위기 상황에선 어마어마하게 빨리 돌아가게 되어있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경우도 걱정이란 게 필요할 이유가 없다. 그냥 안좋게 흘러갈 거니까 또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할 뿐. 그런 게 아니라면 걱정 따위 할 시간에 그냥 깡그리 다 잊고 노는 게 나은 것이다.
‘잘 하게 될까 잘 못하게 될까?’ 따위도 걱정거리가 되지 못한다. 내가 잘 할 지 못 할 지는 내가 더 잘 안다. 어차피 사람이란 게 실수하게 마련인 것이고 실수 안하면 평소 하던 대로 할 것이고 괜히 긴장해서 실수하면, 또 더 놀래서 연거풔 실수하면 그냥 그걸로 끝나는 것일 뿐.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 평소 일할 때의 확률의 문젠 거다. 10% 확률로 실수를 해왔다면 마찬가지로 10%의 확률로 실수할 거다. 아니면 진짜 운이 발동한 것이고. 실수했다면 할 수 없는거지. 실수 안하는 인간 봤냐?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도 머리속에 스며들어버린 습관들이 나를 괴롭혔다.
‘난 이 실수 때문에 내내 고통받을 거야..’ ‘난 이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것을 깡그리 날려먹겠지..’
아무로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는데 이놈의 부정적인 생각들은 끊임없이 찾아온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비슷한 사건들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범주를 넘지 못했다. 그냥 나혼자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날 못살게 구는 방법으로 활용했을 뿐. 이게 미친 짓이란 것이다. 이게 습관화가 되면 내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
네 주위를 둘러봐라. 네 주위의 사람들은 네가 보기에 그렇게 완벽한지 말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이것은 확인된 치료방법이라며. 안좋은 생각이 찾아들면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회피하라고. 그러니까 그 생각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명명함으로써 그 다른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일종의 교란작전인 셈이다. 나는 이것을 ‘ㄱㅅㄲ’로 명명하였다.
‘아 그래.. XXX 어서오고..’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ㄱㅅㄲ들이 찾아왔는지. 트라우마 라는 게 별 다른 게 아니구나. 바로 습관이구나 했다. 상처라는 것은 어떤 사건을 통해서 생기지만, 그게 오래 흉터가 되어버리는 것은 이런 현상이 또 일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습관처럼 자리잡기 때문이구나 하고 말이다.
어차피 습관이란 건 고치면 된다. 물론 한 두 방의 충격으론 안된다. 한동안은 끈질기고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바뀌는 게 습관인거라.
누군가 얘기 하지 않는가? 성공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사람이란 게 어리석다보니 성공이 연거풔 일어나다보면 ‘나에겐 늘 승리만 있을 뿐’ 하게 되는 것과 같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번번히 패하다 보면 패하는 것이 늘상 일어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루저’가 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