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rum 적응기: 대략 2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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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을 치고 싶었던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한국에서 자기 집에 멀쩡한 어쿠스틱 드럼 셋을 두고 연습하는 것은 특별히 운좋은 상황이 아니면 불가했고, 당시의 생각으로는 무슨 악기를 배우든 어딘가에 가서 누군가한테 배우거나 누군가를 모셔다가 배워야 되는 것으로 생각해서 이 모든 게 여의치 않다 생각해서 사실 포기했다. 대학에 와서 음악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꿈에 그리던 수준의 드러밍을 구사하는 선배들도 만나보고 그들이 어떻게 드럼을 치는지도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배우게 되었지만, 사실 드럼이란 것은 눈으로/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배우는 것이라 여전히 요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미국에 와서 살게 될 때만 해도 터만 잘 잡으면 집 주차장에 드럼셋을 두고 연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었지만, 이름을 알만한 미국의 도시의 주거 환경은 생각보다 밀도도 높고 집 자체의 방음 성능도 좋질 않아서 지은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주택도 집안에서 큰 음량으로 음악을 틀어놓으면 밖에서 잘 들릴 정도로 방음이 꽝이었다. 방음만 꽝인게 아니라 그만큼 단열 성능도 꽝이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eDrum 뿐이었고 사실 잘못 고르면 낭패를 볼 수 있던 터라 (워낙 부품이 많고 무거워서 리턴하는 것도 생각하기 어렵다) 벼르고 벼르던 끝에 Alesis의 $1000불 대의 드럼 셋이 나왔고 얼마 안 있어 Millenium이란 메이커의 mesh pad 드럼 셋이 나왔다. 사실 이게 나오자마자 가격도 훌륭했고 드럼 자체의 기능도 훌륭해서 냉큼 들여놓으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을 못하다가 겨우 겨우 크리스마스 시즌에 주문해서 작년 말에 배송받기에 이르렀다.

드럼 셋을 조립하는 것은 대략 1시간 정도가 소모되었다. 설명서라는 게 인터넷에 떡하니 올라와있는 pdf 인데, 그게 매우 불친절해서 (중국인은 분명이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설명서를 보면 그나마 한국인 정도 되니까 쉽게 이해하고 조립하지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쌍욕을 시전했을지 모를 일이다.) 대략 한 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야 제대로 된 드럼 킷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사실 이게 끝이 아니라 드럼을 제대로 쳐 본 경험이 없다면 대략 2-3일은 남들의 연주 장면도 보고 스스로 시연도 해보면서 이래 저래 조정하다보면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된다.

eDrum set에 대해서 (나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특히 궁금해 하는 것은 어차피 저가의 eDrum set이다보니 드럼 모듈의 소리가 훌륭하지 못할텐데 컴퓨터와 연결해도 되는지, 어떻게 연결해야 되는지, 연결하면 latency가 어느 정도일지, 쓸만한 것인지 하는 것이다.

드럼 모듈의 소리는 아주 아주 옛날에 나왔던 Roland의 SoundCanvas만도 못한 품질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만 SoundCanvas에는 없는 기능들이 좀 있을 뿐이지. 사실 구입하고나서 standard kit과 electronic 장르를 위한 몇 가지 셋 때려보다가 때려치우고 컴퓨터와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와 연결해야 들을만한 소리가 난다.

어떻게 연결하냐면

또 한 가지. mesh 드럼 패드란 게 실제 드럼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일반적인 드럼 피 (skin)은 합성 수지로 되어있다. 대신 Mesh head들은 뭐랄까 팽팽하게 되어있는 천조직 (대충 나일론으로 느껴진다)으로 되어있다. 이걸 두들길 때의 감촉은 일반적인 드럼피와 다르긴 한데, 타격할 때의 반응은 그다지 이질적이라거나 나쁘지 않다. 어차피 사운드는 모듈이나 컴퓨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드럼 헤드의 탄성이 어느 정도냐만 중요하다. 여기서 좋은 점은 드럼을 조율할 필요가 없단 것이다. 어차피 mesh head의 장력을 조정하더라도 음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이렇게 전부 셋업이 어느 정도 된 다음부터를 대략 day 1으로 치면 사실 1주일 동안은 오른 발 (사실 오른 다리가 맞다)이 적응하는데 보내졌던 것 같다. 적어도 음악을 들으면 듣고 있는 드럼 소리가 어떤 파트를 두들겨야 나는 소리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 치는 것은 가능했다. 다만 그것이 전혀 능숙하지 않을 뿐이지. 그런데 베이스 드럼을 때리기 위해서 오른 다리를 잘 써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생각보다 드럼 페달을 밟아대는 다리에 힘이 없다. 더블베이스를 빠르게 가격하려면 왼쪽다리의 힘도 좋아져야할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 더블 베이스를 잘 하는 법에 대해서 알려주는 클립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순전히 발목을 이용해서 더블 베이스를 가공할만한 스피드로 두들겨댄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오른/왼 발을 지면의 수직인 방향으로 내려 꽂는 것이나 아니면 온전히 발목만을 이용해서 페달을 누르는 힘이 대단히 약해서 여전히 이 부분이 적응 중이다.

매일 2-30분 정도 내가 알고 있던 노래들을 플레이 해놓고 맛보기를 하는 대략의 2주가 지나고 난 지금 느끼는 바는 다음과 같다.

적어도 두 다리로 더블베이스를 밟게 되려면 적어도 1-2년은 꾸준히 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1-2년이라도 먼저 들여놨다면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달라졌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당시에도 이러 저러한 이유로 들여놓으면 안된다/들여놓으면 드럼이 썩게 된다는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은 드럼셋은 놀고 있다. 온 종일 할 시간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앉아있지도 못한다. 당장에 급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지만 매일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것과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게 바로 실행의 힘 + 시간의 힘 아닐까? 실행하는 것과 생각만하는 것은 유와 무의 차이다. 쉬지 않고 몸과 머리를 자극해야 그리고 여기에 시간의 힘이 더해지면 그 모든 자극들이 씨앗이 되어 자라나면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게 된다. 물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잘 실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