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무소유의 삶

살아가면서 요즘처럼 내가 가진 게 없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있다. 최근 옷도 몇 달간 입지 않는다 싶으면 다 가져다버리고 가전제품도 1-2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싶으면 다 버린다. 용도가 비슷한 물건들도 다 버리거나 처분한다. 그러다보니 남게 된 것들이 신기하게도 케이블 따위다. 역시 다 처분의 대상이다.

책이라든가 예전부터 아무 이유없이 들고 있었던 것들은 여러 해 전에 다 없엤다. 장식장을 들여놓기 위해 뭔가 넣을 이유를 만들고, 장식장을 들여놓으니 그 안을 채우기 위해 쓸데없는 물건을 사들이던 때도 있었다. 역시나 다 없엤다.

덕택에 많은 공간이 비어있게 되었고 그래서 청소하기 수월해졌고 그래서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 절대로 좁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 시절을 맞이하여 겨울 동안 대규모의 집공사를 했다는 친구와 얘기를 하다보면, 아직 그 친구는 여전히 많은 짐으로 골치를 썩고 있구나 했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지만 예전에 비싼 값을 주고 샀으니까 그냥 들고 있고, 그래서 처분을 못하는 것이 수년째 계속 이어지다보니까 마치 가족처럼 되어버리는 현상을 겪는 모양이다. 뭐랄까 지금은 그런 경우가 ‘나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라고 해석될 뿐이다.

그만큼 나는 나를 포함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란 게 없다. 그런 것 가져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다버리는 물건들처럼 그런 것도 다 가져다버렸다.

그 사람들이 그 물건을 아마도 못 버리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금전적으로 아깝다는 생각보단, 그 물건에 깃들은 그들의 (행복했던 시간의) 추억 때문이 아닐까? 마치 이 물건을 버리고 나면 그들의 행복했던 기억들까지 버려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말이다.

첫 직장을 갖고 내 자리를 받았던 때를 떠올리면, 난 마치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듯이 이것 저것 책도 가져다놓고 가족 사진도 가져다놓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조직개편이다 뭐다 하면서 이곳 저곳 이사다니고 조직과 사람들에게 정 떨어지는 경험을 계속해나가다 보면 보잘 것 없는 내 개인 물품들은 그 이후로 늘 박스안에 들어있기 일쑤이고 책상은 늘 텅 비어있는 상태로 있게 된다.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렇게 내 발로 걸어나갈 땐 가지고 나갈 물건도 회사 보안 담당 직원에게 신고해야 할 것도 없어서 정말 어찌나 편하던지. 입사 초기의 기분을 떠올리면, 또 그 동안 뭔가 열심히 하겠다는 맘으로 하루 하루 살아갔던 것들을 떠올리면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이길 수 없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그런 의미로 보자면 나도 언제든 이 세상을 뜰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마치 당장에 세상을 뜨게 되더라도 그것을 치우러 올 누군가가 전혀 수고롭지 않을 수준의, 그동안 내가 살아가기에 불편하지 않을 최소한의 물건만 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갑자기 뭔가 사고 싶어서 주문 버튼을 누르게 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아니 갑자기 내가 그동안 없던 ‘삶’에 대한 의욕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하고. 그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목공이라든가 집안 공사에 관한 것들을 알아보고 하려고 계획하는 스스로를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어지려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 하는 불안함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