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ve Radi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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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에 블투스피커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가지고 있는 블투 스피커만 수십개 되는 듯 하다. 가격이 싸고 이것 저것 해볼 게 많으니까 계속 사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사서 사방팔방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할 정도다. 나도 2개나 선물을 받았을 지경이니까. 그러나 집안 어디엔가 쳐박혀있다.
난 이 물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리도 그냥 그럴 뿐더러 이게 그냥 mono sound source가 되는 데다 이게 소리가 편안하기보단 거슬리는 느낌으로 많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옛날 AM/FM 라디오처럼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음원 자체가 훌륭하고 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측면에선 좋다고 볼 수 있지만, 뭐 그렇게까지 음악에 목이 말라 있을 수 있나 싶기도 하다. 그 덕택인지 길 거리를 걸어가면서 마치 오토바이에 음량을 크게 해놓고 다니듯 하는 사람들 제법 봤다. 사람 달랑 둘이 있는 짐에서 그렇게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이들도 봤고.
왜 passive radiator 얘기를 하면서 블투얘길 하느냐 할 수 있는데, 대개의 블투스피커에는 passive radiator가 달려있다. 그 이유는 스피커의 몸체, 드라이버의 지름이 작아서 태생적으로 저음을 낼 수 없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passive radiator를 달아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물건이 저음을 아예 내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팔릴 수 없었을 것이다. 요새 음악은 별 것 없어도 쿵쿵 거리는 저음이 빠지면 너무 심심하니까. 특히나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분들의 음악은 특히나 저음이 강하다. 거의 sine wave에 가까운 순정의, 매우 낮은 음의 베이스를 쓰기도 하고.
대체 이 원리가 뭘까? passive인데 왜 더 큰 소리가 나는 것일까 처음엔 좀 신기했다. 그 단어 자체도 많이 신기하다. 스스로 뭔가 하는 일이 없는 데 뭘 radiation을 한다는 것인지. 혹자는 공갈스피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좀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기존에도 다른 방법으로 저음을 보강하는 기술이 있었다. bass reflex라고 해서 공기가 드나드는 구멍을 스피커의 전면에 만들어넣는 것이다. 왜?
그러니까 스피커라는 것은 공기를 매질로 하는 공간에서 일종의 파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피커의 콘지가 앞뒤로 이동하면서 공기의 밀도를 높였다 떨어뜨렸다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스피커 통안에 있는 공기 또한 정반대의 파동을 갖게 되는데, 어차피 음악이라는 것은 매우 짧은 시간으로 놓고 보면 같은 패턴의 파동이 반복되는 것이라서 적당한 거리에 구멍을 뚫어놓으면 그 구멍으로 드나드는 공기의 파동과 같은 위상을 갖는 소리는 더 강조가 되는 효과를 보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주파수의 소리는 감쇄를 경험하게 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특정 주파수의 음역의 소리가 커지는 효과를 갖게 된다. 효율로 따지면 우퍼용 드라이버 2개를 놓는 것만은 (절대로) 못하다고 하더라도 큰 노력/비용추가 없이도 저음을 보강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멍을 뚫는 대신 또 하나의 진동판을 놓게 되면 스피커 인클로우저 내의 공기 흐름에 따라 그 진동판도 같이 움직이게 될 것이니까, 그 진동판의 크기, 놓인 위치에 따라서 특정 음역이 보강되는 (대신 특정 음역은 상쇄되어 줄어드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러니까 스피커 드라이버의 지름이 늘어나지 않아도 특정 대역의 저음의 크기를 늘려줄 수가 있다.
듣는 사람들은 계측기기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음역에서 어떤 주파수의 소리가 강조되고 감소되고 하는지 따위는 관심이 있을리 없고, 손바닥 만한 크기의 스피커에서 생각지도 못한 저음이 둥둥 거리고 있으니 뭔 대단한 기술이라도 적용된 것이 아닐까, 음질이 대단히 좋은 물건이라고 착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몹시 이 물건을 기특하게 생각하게 되어 필요없어도 계속 사게 되는 것이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왜 작은 몸체인데 큰 저음이 나오느냐 물고 늘어지기에 하는 말이다. 문제는 정작 음량이 커지면 사실상 이 계(시스템)의 균형이 다 깨어지기 때문에 적정한 음량에서만 사용해야 된다. 역시나 왜 볼륨을 올리면 소리가 개판이 되느냐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 그 정도의 파워를 핸들링하라고 나온 스피커 드라이버가 아닌 것을 사용하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앰프야 어떻게 되었든 좋은 배터리 덕택에 (출력전류량이 높은 LiPo 배터리)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다고 하지만.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드라이버의 지름이 작아서 저음을 상대적으로 잘 내지 못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스피커 통 안의 공기 흐름에 영향을 받는 진동판 하나를 옆에 붙여놓는데, 특정 주파수일 때 동상(in-phase)으로 진동하는 위치에 갖다놓는다치면 사실 그 주파수의 소리를 낼 때는 사실상 스피커가 2개 있는 것처럼 (절대로 2개일 수는 없지만 없는 것보단 훨씬 나은) 소리가 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원래의 스피커와 진동판을 포함한 영역을 가상의 스피커 지름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의 효율이 나올 수는 없다만). 그래서 크기가 작지만 마치 블투 스피커 전체가 하나의 드라이버가 된 듯이 저음을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hifi 측면에서 보자면? 보나마나다. 블투스피커에서 뭘 기대하나. 문제는 hifi가 아니어도 상관없고 성능이 더 좋은 시스템과 비교하지만 않으면 좋게 들린다는 것이다. 말로는 늘 hifi를 울부짖고 비싼 시스템에 대해서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는 이도 별 것 아닌 블투 스피커에 감동하는 것이다. 그 옛날 스피커가 청자가 아닌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는 스피커도 비싼 값에 잘만 팔렸다. 그래서 세계적인 대 메이커가 되었고. 솔직히 음악을 집중해서 듣지 않고 그 음악을 그냥 배경으로 깔아두고 싶을 때는 그게 좋게 들릴 때가 오히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