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도 거의 다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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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photo cloud에 뭐라도 넣어둔 사진이 있으면 x년전엔… 하면서 주기적으로 연락을 한다. 3월이 시작할 때 쯤엔 4년엔 니가 이랬었지…하면서 메일이 왔는데 2018년 3월 보스톤에 잠시 출장 갔을 때 찍어놓은 사진들이 우연히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날씨도 매우 춥고 밤새 눈이 심하게 왔었던 기억이 나는데, 3년전 일이라고 받아들여지기 보단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이라고 느껴지는 게 이젠 3년이 3개월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는 나이에 이르렀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그날을 떠올리면 바람이 심하게 불고 밤새 눈보라가 심했었는데, 사실 그 전까진 언제 눈 구경 한번 하면 좋겠네 했었으니까 어찌보면 바램이 뜻하지 않게 이루어진 순간인 것인데 사실 그게 너무 과했다고 해야하나, 여러 해 못했던 눈 구경을 아주 심하게 하는구나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텔방의 난방 온도를 올리던 중에 갑자기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위치에서 일하던 친구가 죽었단 소식을 메일로 받게 되었다. 처음엔 중국 XX대 졸업생들 간 주고 받는 부고가 왜 나한테 날아왔나 했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니 내가 아는 누군가의 죽음 때문이었고, 대략 한 두달 전까지 회사에서 매일 같이 얼굴 보던 사이었다. 글쎄 내가 감히 (그 쪽이 나를 친구라고 인정하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니까) 친구라고 말해도 될지는 모르지만, 사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매일 같이 얼굴 보면서 수년간 시간을 같이 보내긴 힘든 거라 난 친구라고 강하게 인정한다.

몹시 유쾌하던 친구였는데 더구나 나와 나이 차이도 없어서 비록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난 친구이긴 하지만 별로 즐거운 일 없던 내가 이 친구 덕택에 간간히 크게 웃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제법 많다. 당시에 뭔가 몸의 변화가 있었던지 갑자기 안하던 운동도 시작했다고 하고 체중도 줄이고 있다고 하고 스쾃 중량도 많이 늘었다며 자랑하곤 했었는데,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하게 되었다며 덤덤히 그 사실을 알려주고서는 그 이후로는 전혀 출근하지 않았기에 이거 참 야박하게 관둔다고 하고서는 하루도 더 나오지 않는 구나, 이제 끝인가보다 했는데,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그런 소식을 받게 된 것이다.

알고보니 그 때부터 뭔가 아프기 시작해서 회사에 나오지 못했고, 그렇게 새로 옮긴 직장에도 거의 나가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사실 당시에 나도 아무도 모르게 구직활동 중이었는데, 이 출장을 통해 이런 저런 일을 겪다가 그냥 눌러앉게 되었다. 아마도 그 이후로는 삶이란 게 그닥 큰 기대와 희비 따위 갖고 느끼고 해봐야 다 의미없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다.

그가 그렇게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고, 그는 그저 감기겠거니, 좀 독한 감기겠거니 집에서 누워 앓있다가 그렇게 삶을 마감하게 되었다니까 그를 알고 있던 입장으로는 너무 허무하단 느낌 밖엔 없었다. 제 아무리 건강을 자부하던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에 닥쳤다면 살아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결국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삶이 유지되는 동안 잘 놀고 가자. 쓸데없이 애쓰지 말자. 어차피 그래서 생길 차이란 것은 미미하기 그지없으니까 하는 생각이 깊게 자리잡았던 기억이다. 눈 덮인 보스톤 변두리를 지나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은 짙어졌다.

예전까진 죽음이란 게 그렇게 쉽사리 오지 않을 뿐더러,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특별히 나이가 많거나 아니면 중한 병이 있다거나 하지 않다면 죽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 아닐까 했었는데, 막상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내가 그 였더라도 별 수 없이 그렇게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을 수 밖에 없었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쩄든 난 그 이후로 아무 생각 없이 살다보니 난 그 친구보다 3년을 더 살고 있다. 그 친구보다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특별히 노력한 것도 없고 더 건강해지려고 애쓴 것도 없다. 매일 매일 내 생각대로 되는 일 하나 없다며 어두운 얼굴로 하루 하루를 그냥 보냈을 뿐이다. 찡한 기분이 들면 슬픈 영화 열심히 검색해서 한편 보다가 훌쩍거리기도 애매한 눈물이라도 나와주면 그렇게 털고 답답한 하루를 마감했을 뿐이다. 그렇게 3년을 더 살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처럼 밝게 살기 위해서 뭔가 하진 않을 것 같다. 여태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밝은 웃음과 떠나지 않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 그리고 큰 덩치와는 너무나도 상반된 고음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무슨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크게 웃던 기억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