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풀 수가 없다..

스트레스라는 말은 정말 역사가 깊은 외래어가 아닌가 한다. 외국어가 아니라 외래어라고 봐야지 맞다.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pressure라는 것이 가장 적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압박? 압력? 짓누르는 그런 느낌? 이렇게 해석이 되야 맞을 것 같은데, 한국어가 모국어인 내 입장에서 해석되는 스트레스라는 말의 의미는 짜증이 맞지 않나 싶다. 압박과 짜증은 엄연히 다른 의미인데, 우리 말에서 느껴지는 그 스트레스라는 것은 압박을 받는다기 보단 짜증, 그런데 어떻게 해소하기 쉽지 않은 그런 짜증, 그냥 나는 짜증이 아니라 원인이 분명한 짜증, 내재적인 원인이 아니라 외래적인 원인 때문에 생기는 짜증.

봄이라 spring break라고 해서 학교 다니는 애들도 휴일을 갖는 시절이다. 그러나 월급받고 일하는 인간들은 그런 게 없다. 알아서 휴가를 내고 놀러가야되는 입장인데, 일이 쏟아지면 그냥 참아주고 일할 뿐이다. 작년 내내 휴가 하루도 안 썼지만. (집에 있다는 이유로 수시로 놀아버린 까닭에) 도의적으로 안 쓴 놈들이 더 많겠지만, 어차피 안놀아도 돈으로 돌아오지도 않을 휴가를 나처럼 못 쓴 이들도 많다. 휴가가 생겨봐야 코로나 시국에 어딜 가기가 애매한 지경이었으니까. 올핸 중반부터 (이미 신나게 놀러다니는 놈들도 있다만) 백신의 효과가 발현될 상황이라 좀 달라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만.

대개 짜증이나는 경우는 스스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맞다. 우린 그걸 스트레스라고 한다. 이를테면 잠을 자야되는데, 모기가 내내 왱왱거리고 있다면 ‘모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모기는 어떻게 해도 잡히지도 않고 나갈 생각도 않는데 계속 짜증나게 주위를 뱅뱅 돌면서 기회만 노리고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거다.

이런 경우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조금 괴롭더라도 모기를 어떻게든 죽여놓는 것이다. 만일 모기를 처치할 수 없다면 그 스트레스는 내내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기에게 좀 피해를 입더라도 정신적인 안정을 찾겠다 맘먹고 신경 끊고 빨리 잠이드는 것이지 싶다.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제거할 수 없는 원인으로부터 발생되는 짜증이라면 어떻게든 감내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스트레스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짜증을 내면 낼 수록 화만 늘어나고 스스로의 정신 상태만을 계속 의심하는 상황만 발생할 뿐이다. 그 피해는 온전히 내게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 수 밖에 없다.

한 때는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지금 떠올려보면 스스로 분노를 가눌 길이 없어서, 제 발로 걸어나간 적이 있다. 그냥 돌아가는 상황을 눈 질끈 감고 참아가면서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도저히 끓어오르는 화를 누를 길이 없었다. 내게 여유가 있었다면 그 이후로 아예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을 듯 하지만, 주택담보 대출에 가장이라는 지위를 누리는 입장에서 또 모범생으로만 살아온 내가 그런 과감한 결단을 내릴 만한 인물은 되지 못했어서 결국 개긴도긴의 조직에 다시 흘러들어갔다만 (내 발로 걸어나간 덕택에 모두 누리는 ‘경력자’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모두 포기해야 했다).

조직에서 속해서 일을 하는 경우엔 그 거지같은 hierarchy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어차피 중요한 일은 나 혼자 다 해결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눈에 허수로 보이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더라도 조직에 속해서 월급을 받아오는 입장에서는 그들의 동의하에 뭔가를 해야 하고 그들이 일을 개판 치더라도 일이 돌아가게 하려면 그들이 싸놓은 똥을 다 치워야 한다. 어차피 그렇게 했다고 내 업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과실의 열매를 취하는 인간들은 따로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다녀야 그나마 알량한 소득이나마 보장받을 수 있다.

만약 그 hierarchy에서 조금 높은 위치에 처하게 되면 위 아래 놈들이 갑질을 하는 꼴을 보게 된다. 쉬운 일만 골라 시켜도 그 일의 어려움을 일장 연설하고 그나마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놈들, 쪼아대는 놈들 사이에서 환장하는 게 매일 매일이 된다. 비교적 사람들을 잘 만나는 경우 (똘똘하고 자발적으로 일하는 이들을 풍부하게 채용할 수 있는 조직에 다니는 경우) 상대적으로 쉽게 일할 수 있다. 그 반대는 일 못하는 쓰레기들을 데리고 일은 혼자 다 해내면서 사람 좋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되니까 죽어나는 게 보통이고.

그래도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남의 돈을 먹으려면 방법이 없다 생각해야 맘이 편해진다. hierarchy에 속해있으면 좋은 것은 내가 최상위 포식자가 아닌 이상엔 가장 애가 타는 놈이 내가 아니란 사실이란 것이다. 너무 급할 이유가 없다. 개판되서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놈이 환장하게 되는 상황까지 내버려두자. 안 그러면 내가 길길이 날 뛰든 멱살잡이를 하든 어떻게든 일이 돌아갈 거라 생각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