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관계라는 것

예전엔 다른 사람들이 나의 행동이나 언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어서 (내가 나의 행동이나 언행을 잘 통제하고 잘 교육받아 왔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알고 있는 대로 이야기 하며 살았던 것 같다. 딱히 그랬다고 해서 원래 가깝게 지냈던 친구나 이웃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실제로 그랬던 경우도 없다. 내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럴만하구나 하고 이해하며 살았으니까, 이런 인간 관계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관계이고 내가 말도 안되는 잘못을 고의로 저지르지 않는 이상엔 항상 유지되는 관계려니 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이게 신경쓰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예전같으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애쓰지 않아도 좋은 관계가 되었으니까 그러려니 했다면, 지금은 별로 딱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도 잘 지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것 말이다. 스스로 인간관계의 을로 자청해서 기어들어가는 경우라고나 할까? 잘은 모르지만, 내가 속했던 사회에서 벗어나서 좀 다른 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부터 생겨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아무리 평등하다 사람들은 다 고만고만하다 하다고 말 하더라도 신기하게도 비슷한 성장환경/경제적 상황에 있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면 아무 문제 없는 것이 뭔가 조금 차이가 있는 사람들과 지내다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말이 그렇지 사람고 사람, 가정과 가정이 모두 같은 환경, 같은 조건에 있을리 없기에 이런 별 것 아닌 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막상 사람들과 지내다가 이런 것들이 신경 쓰이면서 부터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1. 내가 딱히 누군가와의 관계에 의존해야 할 일이 없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다. 내가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맞이했다고 하더라도 날 기꺼이 도와줄 사람은 없다. 도움의 말 몇 마디 해주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2. 내가 그러한 관계를 통해서 이득을 얻을 것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 이득이 없다. 이득을 보고 싶은 생각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3. (사람이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니까) 그냥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자체가 정신적으로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그들 또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위안을 받는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4. 그래도 적어도 어떤 호의를 보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게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반대로 과한 것으로 해석될까 싶어서 하지 않는다. 그걸 빚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상당히 불편한 관계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싶다. 그들이 스스로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잘해주고 싶다. 불편함/아픔을 덜어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이게 과다한 호의로 보일까봐 잠자코 있는 경우가 많다.
  2.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든 잘해주고 싶다. 그래야 될 것 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미친놈 같다.
  3. 혹여나 내가 뭔가 실수해서 원래 알았던 사람과의 관계를 망쳐버리는 것이 아닐까 신경이 쓰인다. 망쳐버려도 상관없는 관계임에도 말이다.
  4. 그들에게 내 존재/호의 따위 별로 중요하지 않음에도 나만 이것을 신경쓰고 있다.

뭐랄까, 내가 정식으로 가족을 데리고 이민을 오기 전에 들렀던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되어버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난다.

밥은 제대로 먹고 있냐, 생활이 제대로 되고 있냐, … 물어보며 날 측은하게 생각했던 모습들.

글쎄 그 당시 내가 자신 총 자산과 수입만 보더라도 그분들의 서너배가 넘을 정도로 좋았고 비록 잠시 혼자 지내느라 애매한 곳에 머물고 있었고 이직 뭔가 확신이 들지 않았던 터라 간을 보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분들은 자신들이 이민왔을 때의 상황(잘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 압박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만을 생각해서인지 어떻게든 날 도와야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문제로 요새 나 스스로가 왜 이러는지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내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쓰지 말자. 어차피 나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세상이다. 누군가 내가 싫으면 싫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냥 살면 그만이다. 관계를 끊자고 하면 끊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2.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한 오지랖 넓은 짓은 하지 말자. 정말 불편하고 힘들면 그쪽에서 알아서 내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3. 내 주위에 나와 인간관계를 새로 맺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서로 피차 궁한 게 없는 상황이니까 좋게 받아들이자. 일방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관계의 괴로움을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은 데도 불구하고 계속 도움을 요청하고 그래서 거절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던 기억은 다 어디로 사라졌냐?
  4. ‘넌 어떻게 네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관심 할 수가 있냐?’ 라는 말 따위 신경쓰지 말자. 다들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가끔 뭐라도 이벤트가 생기든, 뭔가 잉여로운 생각이 나면 잠시 관심갖게 될 뿐.
  5. 난 이 인생의 진리를 너무 잘 알면서도 늘 잊는다.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뭘해도 안된다.’ ‘나의 어떤 점은 고치고 나의 어떤 점을 부각시키고 하면…‘하는 따위의 처세술스러운 말 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