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의 머리깎기

팬대믹이 시작되었을 때쯤 사실 머리 깎을 시점이 다가올 때였는데, 재택을 시키는 것도 신기했던 것도 모잘라 신규확진자 수도 많았고 락다운을 걸어버렸기에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는 상황이었구나 싶어서 감히 머리 자르러 갈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여러 달 지나고 나서는 스스로 괴로워서 셀프해어컷을 했고 이제 그런 생활이 1년을 넘어가다보니 나름 일가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전엔 아저씨 따위 머리 어떻게 자르든 무슨 상관인가 지저분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하는 시각이었다면 지금은 기왕에 자를 거 좀 신경써서 자르면 안되나 하는 그런 것 말이다.

유튜브에 보면 미용일을 하는 사람들이 머리자르는 동영상을 올려놓은 것이 꽤 많다. 개인이 자르는 것도 있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개인이 스스로 해어컷을 하거나 남편 머리를 자르는 것이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 하는 것보다 더 낫구나 하는 걸 더 많이 본다. 아니, 자기 머리가 아니라고 남의 머리를 저렇게 바보같이 잘라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더 먼저 든다. 어차피 앉아서 머리 자름 당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자를 수 없으니 맘에 안들더라도 할 수 없지’ 하는 생각이니까. 분명한 것은 직업이란 게 꼭 (남보다) 잘해서, (남보다) 좋은 감각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거란 말이다.

외모에 특별히 신경을 더 써야 할 사람들은 그동안의 외모가 좋지 못했으니까 ‘어차피 내가 머리에 신경을 써봐야 달라질게 없어’ 하는 생각을 할 테니 그럴 수록 더 실력이 없는, 쉽게 말해서 ‘보는 눈’이 없는 사람들에게 머리가 맡겨지니 더 형편없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외모라는 것도 빈익빈 부익부나 다를 바가 없다. 돈 불리는 것에 진정 신경을 써야 할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돈을 써버리거나 돈을 관리하는 반면, 충분히 많은 돈이 있는 이들은 가진 것들을 더 늘려보기 위해서 수익성이 뛰어난 곳에 앞다투어 투자하는 것처럼이나 말이다.

자르는 사람의 입장에선 어차피 손님이 (날 믿고) 내 가게에 들어와서 특별하게 요구하는 게 없으니 그냥 평소 하던 대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니면 예전에 연습했던 대로 그냥 잘라낼 뿐인 것이다. 손님이 별 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니까, 그 모양새가 손님이 원하는 모양이었든 아니었든, 어차피 말로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개인이 하는 경우는 서로 잘 알고 오래도록 지내오던 사이니까 비록 이발 기술이 좋지 않더라도 원하는 모양에 최대한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는 내가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잘라오는 결과물이 100% 더 훌륭하지 않다면 더 이상 돈 내고 머리 자르러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동안 왜 난 아무 생각없이 살아왔나 하는 생각만 하게 될 뿐이다. 누군가 아무렇게나 잘라주어도 그런가보다 하면서 살아왔으니까. 머리를 자르고 와서 거울 앞에 서 있는 날 보면서 황당해했던 순간이 대부분이었고, 또 그렇게 한주 두주 지나면서 적응해 왔던 게 지금까지의 삶이었으니까.

내가 머리를 자르고 와서 만족을 했던 경험은 정말 손에 꼽을 것 같다. 같은 사람이 자른 경우라도 늘 같은 만족감을 주진 않았고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도 없고, 머리를 자르려는 당시에 그 엉뚱한 모양새가 내가 원하는 모양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 말도 안되는 소통의 어려움을 겪느니 어설프더라도 (또 내 두눈으로 직접 들여다보지 못해서 더 어설플 수 밖에 없더라도) 내가 자르는 게 100% 속편하다. 내가 실수로 망쳐먹더라도 어차피 남들이 맨날 망쳐놓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안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