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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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은 이 동네에서는 그냥 july-4th라고 부른다 (4th-of-july라고도 하고). 그러니까 광복절을 815라고 부르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 8월15일하면 그냥 광복절을 떠올리듯 말이다.

그러다보니 independence day라는 말을 붙여주지 않으면 나같은 외계인의 입장에선 ‘7월 4일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놀라고 하는 날인가?’ 혹은 ‘상식적으로 넌 그런 것도 모르냐? (내가 왜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알고 있어야 되나?)’ 혹은 ‘넌 탐 크루즈 나오는 영화도 안봤냐?’ 등등의 생각이 떠오른다. 탐 크루즈가 누구인지도 잘 모를 뿐더러 영화는 더더욱 모른다. 이게 독립기념일인지는 그날 뉴스를 본다든가 공식 행사를 통해서 ‘아 이 날이 독립 기념일이구나?’ 일 뿐이지, 그냥 ‘폭죽 터지는 날’, ‘불꽃놀이로 돈 쓰는 날’ 일 뿐이다.

이민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사는 이 나라에서, 또 특히나 많은 이민자들이 대부분 독립기념일의 실제 이벤트가 일어난 뒤에 이 땅으로 이주했으니까 이 날을 기념하면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는 자체가 나처럼 고루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게 뭥미?’한 일이다.

또 그 이민자들의 자녀들 또 그들의 자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 날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조상들이 수백년 (1776년이니까 대충 250년전쯤이다만) 전 이날 독립을 한 것인 양 말이다. 난 이게 코미디로 보이지만, 이 나라에 사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2세 3세들에겐 당연한 일인 거다. 오히려 이런 걸 생각한다는 자체가 내가 꼰데 소릴 들어 마땅할 이야기이지 한다.

그러나 나에겐 여전히 그냥 매일 매일 심심하다가 이 날은 폭죽 터뜨려도 용인되는 날, 그러니까 (재미삼아) 폭죽 터뜨리는 날, 또 성조기가 그려진 옷 입고 뽑내는 날, 대규모 폭죽 놀이가 벌어지는 곳에서 일찌감치 전망 좋은 식당에 자리를 잡아놓고 돈쓰는 날 등등이 아닐까 하는데.

Memorial day때 (우리 나라로 치면 현충일?) 바닷가에 나와 파티를 하고 했다는 것 역시나 이 나라가 참으로 근본없는 나라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이유다.

내가 아는 (비교적) 토종(?) 미국인, 그것도 이주한지 제법된 백인,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의 아버지가 1차대전 이후에 독일에서 이주한 이민자이고 그 자신은 이민자의 2세, 그러나 나같은 외계인의 시각으로는 토종(?) 미국인, 그저 오래 살아왔다는 이유로 native American English speaker인, 그도 7월 4알이라고 성조기 문양이 들어있는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페북에 올리고 있으니까 나와 같이 고루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에 웃긴 일일 수 밖에. 그렇게 따지면 역사적 이벤트는 ‘속지주의’의 경향이 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당사자에게 물어봤다.

‘너희 조상은 2차대전때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7월 4일이 어떤 날인지 이게 개념적으로 감이 오는 거냐?’

그렇단다.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그렇다는 거다. 역사적인 사실만을 놓고 봤을 때는 그렇지 않은 것이지만.

통계자료를 구태여 보지 않더라도 1-2차 대전 시절에 유럽대륙(독일/폴란드/…)에서 북미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동했다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사실 이 사람들이 미국의 수많은 ‘백인’을 구성하고 있다.

이 나라에 거주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다보니 머릿속에서 생각지 못하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미국인도 아니면서 미국인처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처럼 고루한 사람의 입장에선 (반복을 통해 내가 꼰대형의 인간임을 강조하는 중이다)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한번 정해지면 (좀처럼? 전혀?) 바꿀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순도 100%의 한국 사람이 매일 매일 접하는 정보의 내용이 달라진다고 해서 그 순도가 90-80-70 이런 식으로 떨어지진 않는다고 본다만.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나의 반응이 예전보다 이상스레 미국인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뉴스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상 백악관 브리핑이라든가 미국의 탑 뉴스거리들이 미국 사람의 시각으로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미국 뉴스가 아닌 한국 뉴스를 즐겨보다가 미국인의 시각을 갖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떤 경우는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같은 시각으로 보도를 해서 ‘니들은 주체성도 없냐?’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물론 그 이유는 특파원이 미국에 오래 머물고 미국인의 시각으로 보도된 보도 자료를 여러 해 들여다보다가 스스로가 미국인이 되어버린 착각(?)속에서 보도를 하게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래서 특파원은 자주 자주 바꿔줘야 하는 것 같다.

어쩄든 오늘 밤도 폭죽 터지는 소리 만발하겠다 싶다. 내가 요사이 이 동네 주변을 관찰한 바로는 코로나가 사실상 극복 단계에 이르러서 내심 그 누구도 마스크 쓰고 싶지 않지만 쓰고 있고, 그러나 아예 안쓰고 돌아다니는 놈들이 늘아나고 있으면서 거의 예전 수준의 교통량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상 백 투 노멀한 상황이다. 이 지역의 백신 접종률이 80%가 넘어가고 있다보니까 (그러니까 멀쩡한 애들은 다 2차 접종까지 진작에 다 마쳤다. 난 5월 초에 끝났으니까.)

이러다보니 또 귀찮게 누군가가 ‘독립기념일 휴일에 뭐 하셨어요?’ 하는 바보 같은/하나 마나 질문을 하겠지. 그러니까 ‘보복 소비’ 내지는 ‘보복 여가 활동’을 했을 거 아니냐는 거다. 그런데 지극히 내성적인 내가 코로나 이후로 세상의 중심이 진정 ‘나’와 ‘내가 머무는 곳’이 되어버린 이후로는 혼자인 상태에서 더욱 평안을 얻고, 어쩌다 누굴 만나는 일이 생기면 마음이 복잡해지고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도 피곤해지고 뭘 어찌해야 좋을지도 몰라지고 그래서 그 스스로를 ‘이 바보야…! 어휴’하는 후유증도 깊어진다.

갑자기 성수기라는 게 따로 없을 정도로 사람 바글대던 명소에서도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던 2020년 이 맘때가 그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