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살기 위해 삶을 희생하며 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어딘가로 운전하면서 가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늘 나에게 던지는 질문 ‘넌 왜 살고 있냐?’에 대한 또 하나의 멍청한 대답이었다.

‘난 좀 더 잘 살기 위해 (지금의 삶을 계속해서 희생하며) 살고 있다.’

이 대답이 멍청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0) 기본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잘 사는 것인지 아는 바가 없다. 1) 그러니까 그냥 막연히 지금의 삶을 희생하면 더 잘 살게 되겠지 하는 것이다. 2) 소비를 절제하고 욕구를 절제하고 그래서 모든 생을 돈이 더 들어오는 방향으로 집중해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 많은 돈이 자산 계좌에 숫자로 쌓이면 결국에 그게 더 잘 사는 것으로 귀결되겠지 하는 것이다. 팬대믹을 맞이하여 생존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힘들어진 사람들도 많지만 나같은 사람처럼 돈 쓸 일이 급격히 줄고 온종일 일할 일만 늘어나서 또 말도 못하게 많은 돈이 풀리는 바람에 돈 가치가 하락해서 명목상의 자산계좌의 숫자만 (아무 실질적인 의미없이) 늘어버린 사람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자산을 계산했을 때의 숫자는 진짜 숫자에 불과하고 어떤 절대적인 가치라는 게 없으니까 그것을 절대적인 가치로도 환산하기가 애매하고 만약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저 물질적인 가치에 불과할 뿐이지, 그것이 나를 어떻게 ‘잘’ 살게 만들지, ‘행복’한 삶이 ‘좋은’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가치가 내 ‘행복’에 기여하는 바도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팬대믹 전이라면 내 수입의 일부를 할애해서 어딘가에 여행을 가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겠지 하는 생각에서 상상만해도 즐겁고 맘만 내키면 그냥 큰 부담없이 짐을 챙겨서 여행을 갔다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간다고 치면 그곳에서 머무는 그 짧은 시간동안 효율을 극대화해서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보고 스스로 여행 미션의 달성 정도를 평가해서 어떻게든 말도 안되는 기준으로 최고점을 받아야겠다는 말도 안되는 강박으로 시달리다가 올 게 뻔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지금은 모든 게 그렇게 쉽지 않다. 하루라도 늦어질 까봐서 부랴부랴 백신도 맞고 1-2차 간격이 짧은 백신을 맞겠다고 손품을 팔고 그렇게 그렇게 살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변종이 출현해서 난리가 났다는 뉴스들 뿐. 여전히 내가 접종받은 백신이 변종에도 강하다는 소식을 듣고 있지만 막상 지금 나더러 어딘가로 여행을 가라면 마음이 전혀 편하지 않다는 거다. 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도 없고 (무증상 감염자였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5월 초에 2차접종까지 다 끝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 돌아다니고 있으면 괜히 소리없는 전파자로 민폐를 끼치게 되는 거나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여행을 가라니. 이 와중에도 놀러다니는 사람들은 잘만 다니고 있다만.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산 계좌의 숫자와 나의 삶의 질은 무관하고 나의 삶의 질이라는 것은 온전히 내 마음 가짐에서 오는 것이라는 뻔한 얘기다.

총자산이 마이너스가 되어있더라도 행복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잘 들 살아간다. 반대로 내 자산 계좌가 마이너스가 되어있다면 아마 엄청난 불안으로 하루도 맘 편히 살지 못하겠지.

나도 내가 답답해서 미치겠다. 아무리 큰 깨닫음을 얻게 정신적으로 학대해도 달라질 기미가 안보이니까. 이러다 죽을 때가 다 되서 ‘아 이렇게 살지 않았어야 하는 데’하는 추함은 없었음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