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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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diary)를 쓴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diarrhea가 떠오르는 것은 일기가 갖는 배설의 효과가 아닌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니까, 일기를 쓴다는 것이 뇌속에 퍼져있는 알지못하는 미생물들의 반란(?)으로 도저히 배설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을 때 하는 짓이란 건가?
아침 7시쯤 일어난 듯 한데 깨어나고 보니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어떤 강박때문인지 밤새 움츠려있던 것 같이 뻐근한 어깨의 통증이 느껴지는게 오늘도 뭔지 모를 우울함에 빠져있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상스럽게도 몹시 흐려있던 바깥 풍경 때문이겠지 한다. 가뭄이 몹시 들었다는데 이 지역에서 한 여름에 비가 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아침에 하늘이 마치 비가 올 듯 이렇게 흐려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때마침 폰을 켜보니 남가주에 정말 오랜만에 한 여름 소나기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뜬다. 그러나 그 따위 소나기로는 가뭄에 전혀 도움이 안될 거라며.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는 곳이라 아침 일찍 그렇게 하늘이 마치 비가 올 듯 흐려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지면과 상층부 기류의 온도 차가 심해서 구름이 잔뜩 발생했는데, 그게 남가주에선 비가 되어내렸고 이곳에서는 차마 비가 내릴 정도의 물방울로 모이지 못해서 해가 떠오르자마자 모두 해체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10년 전이라면 그냥 흐렸다가 맑아졌구나 하고 말았을텐데 늙어서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졌구나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든 말든 비가 올 상황이라면 비가 내렸고 아니라면 안오고 말았겠지. 야외에 세워둔 차가 소나기를 잔뜩 맞았더라면 그동안 차 위에 내려앉은 먼지쯤은 씻겨져 나갔겠지 하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없는 것들인데 머리 속에 번뜩 떠오르는 걸 보면 이 모든 게 늙은 이의 잉여로움에 인한 연상작용이구나 했다. 초등학생 시절이라면 귀한 방학 시즌의 하루가 소나기 때문에 날아가는 구나 하고 아쉬워하고 말았을테지만.
그리고보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 것 같은데, 기나긴 장마 때문에 몹시도 지겨웠던 여름 날이 떠오른다. 습하고 텁텁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데 비는 온종일 퍼붓고 있고 대낮인데 하늘은 온통 흐려서 어둡기만 하고. 밖에 나가 놀 수 없던 그 답답함. 밖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고. 그저 조용하기만 했던 대낮의 그 때.
지금은 한 여름의 장마는 구경할 수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와 있고 그 때의 지겹기만 하던 그 장맛비는 구경할 수도 없지만 창밖을 내다봐도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주 간간히 물건을 배달하는 차량들만 가끔씩 오갈 뿐. 장마가 한창 쏟아질 때처럼의 텁텁함도 없고 한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나 습한 기운도 없지만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다. 아니 가까이 보이는 큰 도로가에도 지나는 차가 거의 보이질 않는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난 이 말을 누군가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 뭐랄까 ‘쓸데없이 달관한 사람처럼 말하지 말아라’ 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보고 싶다. 틈틈히 일과 시간에도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대낮부터 소주를 사주던 그가 생각이 난다. 난 이 분이 당시 얼마나 답답한 기분이었을까 겨우 이제 이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과 더 터놓고 싶어서 일과가 끝난 후에도 ‘술먹기 싫은 데’하는 표정이 역력한 나를 데리고 나가서 또 소주를 사주던 그 사람이 보고 싶다. 이렇게 내가 사람들이 그리워질 줄 알았더라면 그 때 더 살갑게 굴 것을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글쎄..지금처럼 이렇게 오래도록 뭔가에 의해 강하게 내 생활 공간이 제약받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과연 난 언제쯤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할 수 있을까, 과연 그 때가 올까? 또 과연 그들이 나와 조우하면 반가워할까 하는 생각도 아울러 하게 된다. 아니면 말라지. 그래도 보고 싶은 얼굴을 마주해서 나만 반갑고 기뻤다면 그것으로 그만 아닌가? ‘쟤 왜저래?’하며 미친 놈 소릴 듣든 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