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기..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서가 빌딩을 통째로 이동하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 부문이 점점 커지면서 단지 안에 계속해서 빌딩을 짓게 되어 새 빌딩으로 이사다녔던 기억도 있고 이직으로 인해서 했던 이사(?)도 있었던 것 같다. 또 회사가 더 큰 다른 회사에 합병되면서 했던 이사도 있었다. 정말 별에 별 이사를 뜻하지 않았지만 다 해봤던 것 같다.

회사도 부서이동을 한다고 하면, 개인 물품을 이사박스에 넣어두고 그것을 이사 용역을 고용해서 날라주니까 내가 힘들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사를 하게 되면서 경험했던 것은 이사를 하면 할 수록 개인 소지품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쎄 이사를 해서 그랬다기 보단 이사를 하면 할 수록 나이가 들어가니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을 것에 대한 구분이 더 잘 되게 되었기 때문이지 싶다. 쓸데없이 회사에 가져다 놓는 짓을 하지 않게 되었단 것이지.

그렇게 살아오면서 나도 집을 늘려가면서 정말 여러 번의 이사를 했다. 모두 이사서비스를 불러서 이사를 했고 출근 하기 전 쯤에 이미 이사 서비스 사람들이 집에 와있고 짐을 싸고 있는 것을 뒤로 한 채 출근해서 새 집으로 가면 이사가 마무리 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짐이 잘 옮겨지고 있는지 이사 서비스 사람들이 뭔가 요구하는 게 있는지 없는지 살폈던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이제 이번 달 말에 난 또 한번의 이사를 하게 된다. 회사에서 이사를 다니면서 짐이 줄어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살던 집을 옮기는 이사 역시 짐이 많이 줄어든 덕택에 내 힘으로 하고 있다. 가지고 있던 것들이 많이 줄어든 덕택이기도 하고 냉장고나 세탁기/건조기, 그리고 가구 따위를 옮길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옮겨야 되는 게 있다면 침대와 책상 정도인데 이쯤이야 아직 충분히 나를 수 있다. 도구들도 좋아지고 이사하는 기술 또한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울에 살 때 처럼 정해진 날에 집을 비우고 정해진 날에 들어가야만 하는 타이트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 싶다.

지금이나 그때나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임은 마찬가지지만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모든 예측이란게 정확하지가 않고 예측이 어긋났을 때의 손실이 엄청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간을 손실을 감수하고 날짜를 여유있게 잡기 때문이다. 이게 좋다는 게 아니라 내 입장에선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예전에 내가 살던 서울에 비해 너무 뒤떨어졌다는 말이다.

그래도 뭐 좋다. 죽을 때 까지 얼마나 많은 회수의 이사를 하게 될까 생각해보면 그 모든 이사의 순간도 기록해둘만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게 2년도 안되는 기간이 될 수도 아니면 10년이 넘는 텀이 될 수도 있긴 하지만. 그 전체 이사 회수라는 게 20번 이하일테니 나름 희소성(?)이란 게 있고 기억에 어려움이 없는 수준의 복잡도니까 말이다.

이사 서비스가 모든 과정을 다 수행하고 챙겼던 이사는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어느 날 새벽바람부터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쳐서 미친 듯이 모든 것을 박스에 담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모든 물건들이 이사한 집에 풀어져서 놓여있었던 것 말곤.

내가 짐을 싸지도, 짐을 풀지도 않았으니까 이사를 하기 위해 짐을 쌀 때의 그 특이한 감정이란 걸 느껴볼 새가 없었다.

한 때 소중했던 물건들을 ‘이젠 필요없으니까..’하고 내던져버리는 경험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물건은 …와의 …한 추억이 담겨있으니까…‘하고 쓸데없이 계속해서 옮겨가고 옮겨가고 하기만 했다. 그래서 이사를 하면 할 수록 짐이 늘어만 갔다. 마치 짐이 늘어나면 내가 가진 ‘부’라든가 ‘가치’가 늘어나고 있다는 착각속에 쓸데없는 쓰레기와 쓸데없는 과거에 대한 집착만 늘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잊고 말이다. 사람에겐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가장 중요할 뿐인데.

내가 직접 짐을 꾸리고 옮겨다닌 이후엔 쓸데없는 물건들은 거의 사지 않는다. 추억의 물건(?)으로 보이는 쓸모없는 물건이 보이면 ‘넌 여태 과거와 같이 살고 있냐?’하며 속으로 한 대 쥐어박고 그냥 버리게 된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과거와의 이별을 하고 물질적인/감정적인 배설을 하는 과정이 나는 ‘이사’라고 생각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새로운 곳으로 옮겨놓는 게 아니라 말이다.

처음 내 손으로 이사를 했을 땐, 내가 정말로 의미없는 것을 수도 없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첨 깨닫았다. 그 때의 자각은 내 생활 전반에 대한 재점검으로 이어져 내 인생의 의미없는 정말 많은 것들 (사람/물건/기억)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기회가 나에게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엔 그저 뭐든 많은 것이 좋은 거다 하는 생각으로 버리기 보단 늘려가기에 정신없었으니까.

이제 또 이사를 가야하(?)는 감회는 또 색다르다. 지난 번 이사는 마치 잔병에 시달리던 고도 비만이었던 사람이 몸의 모든 군살들을 걷어내는 고통스러웠던 작업이었다고 보면, 이번 이사는 스스로를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었는지를 평가해보는 시간이 되지 싶다.

이번 주말부터 이사가 시작되야 되지만, 나도 모르게 스스로 불안했는지 아니면 남은 군살을 제거하는 재미를 빨리 느껴보고 싶었는지, 지난 주말 나도 모르게 부지런히 이사박스도 사다놓고 그 박스안에 물건들을 다 담아놓으면서 내 삶에 의미없는 짐들을 벌써 많이 덜어냈다. 물론 그동안 불필요한 인연들과 사람들, 그리고 의미없는 욕심들도 다 덜어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