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굶주린 것일까?

정기적인 한국 방문을 위해 이것 저것 준비하는 와중에 대놓고 선물을 사오라는 얘길 직접 들으니 매우 기분이 나빠졌다. 어쩜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느냐. 진작에 필요한 걸 알려달라고 하지 않았냐, 그렇게 받을 줄만 아느냐 했더니 돈으로 주겠단다. 화가 더 치밀어 오르는 와중에 대화를 끊어야겠기에 알았다 라고 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지만 이런 얘길 들으면 어쩜 이렇게 아무런 생각이 없을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아니 여태 기른 자식의 생각을 이렇게 이해 못하는 것일까 할 뿐이다.

일부러 엄청 큰 suit case를 하나 사서 무슨 보따리 장사 마냥 선물을 잔뜩 사가서 나눠달란 소리다. 지금 세상이 그 옛날 같지도 않은데 부모도 늙어가니 이젠 서슴지 않고 그들이 봐왔던 옛날 사람들처럼 나도 그렇게 하라고 요구한다. 틈만 나면 내가 걱정된다며 밥은 잘 먹었냐며 집에 먹을 것은 있냐는 이야기나 규칙적으로 늘어놓을 뿐이면서 말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엔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직접 찾아와서 도울 일을 찾거나 도움이 되는 것을 나에게 부쳐줄 것이다. 그냥 그렇게 립서비스라도 해야 될 것 같으니까 할 뿐인 것이다. 자신이 키운 자식이 스스로 밥도 못 챙겨먹을 정도로 무능력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런 얘길 들을때마다 여러 가지로 한심하단 생각만 들 뿐이다. 도무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런 얘길 이렇게도 자주 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할 때마다 안좋은 소릴 들어가면서도 이런 바보같은 질문을 자식에게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 뭔가 안좋은 원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리 속에 맴돈다.

그런 생각 속에 인근 매장이 닫히기 전, 그러니까 도시 한 복판의 번화가가 아닌 이곳에선 그냥 내내 깜깜한 도로를 달려 내려갔다. 신기하게도 늘상 뭔가 사려고 가보면 난 뭘 사러온 것인지 쉽게 잊는다. 왜?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눈에 보이는 이런 저런 것들로 나도 모르게 생각의 생각이 이곳 저곳 뛰어다니다 보면 ‘내가 왜 여기 왔지?’ 하는 상황에 빠진다.

그렇다. 큰 luggage를 먼저 사고 이것 저것 되든 안되든 쓸어담을 생각으로 갔는데, 어차피 좋아하지도 않을 걸 뭐하러 꾸역꾸역 들고가야 하는 생각속에 까맣게 잊는다.

나도 모르게 처음 눈에 띄는 옷을 입어봤다. 10년 넘게 썰렁할 때마다 가끔씩 입던 옷을 이제 버리고 이걸 입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얼마 하지도 않는 이런 옷을 난 왜 사입지 못했을까 하며 스스로를 바라보는 중에 누군가 갑자기 나에게 ‘looks nice!’라는 말을 던진다.

뭐랄까 내가 모르는 누군가 나에게 내가 보는 앞에서 괜찮다라는 말을 들은지 너무 오래되서일까 나도 모르게 고맙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그냥 아무한테나 옷을 팔기 위해 던진 말이라기 보단 뭔가 도움을 줘야겠다는 진심이 절로 느껴지는 말이었기에,’보잘 것 없는 저에게 그런 말을 해주시다니 너무 감사해요.’란 말을 건네주고 싶었지만 ‘ㅁㅊㄴ이 갑자기 왜 이러나? 그냥 한소린데’하는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그냥 무뚝뚝하게 ‘thank you!’ 할 뿐인 거다. 그것도 일부러 저음으로 로보캅이 이야기하듯 말이다.

그 착한 ㅊㅈ는 내가 옷을 다 골라갈 때까지 흘끔 흘끔 도와주려는 자세를 취했지만 애써 외면하고 바람같이 아니 ㅁㅊㄴ처럼 물건들을 계산하고 나갔다. 얼굴을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진지함이 가득한 표정의 사람으로부터 너무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친절이었어서 그런 것일까 그냥 친구로라도 알고 지냈음 하는 생각이 마구 솟아오른다. 어차피 매장 문닫을 시간도 다 됐는데 ㅁㅊㄴ처럼 기다렸다가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얘기해주고 싶은 생각까지, 아니 귀한 뭔가를 대접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 한번의 돌아봄 없이 재빨리 매장을 떠났다.

돌아오고 나니 정작 사려했던 suit case를 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의미없이 쓸어담은 물건들보다 그게 더 필요했음에도. 어차피 잘 됐다. 생활 수준의 차이라는 게 요즘은 더 심해져서 이젠 서울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이젠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그저 상품의 대량 소비지인 이곳에 들어오는 물건들은 균일한 품질을 갖고 있지만 그만큼이나 균일한 디자인에 대량 생산에 유리한 물건들만 즐비할 뿐이니까. 거기서 뭘 집든 마치 다음 날 학교에 가보면 똑같은 옷을 입는 아이를 만날 확률이 매우 높은 그런 물건 말이다. 물론 그만큼 가격이 싸긴 하지만 그만큼이나 수준이 떨어진다. 나에겐 가격보다도 의미가 없는 게 그 생활 수준이란 게 되어버렸으니 뭐라도 좋지만.

그냥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다보니 이젠 본가에 한번 들러야지 했던 것이고. 그렇게해서 여러 날 사람들 버글거리는 서울에서 좀 지내다보면 내가 그동안 어떻게 달라졌는지 또 알게 되겠지 할 뿐이다.

뭐니뭐니해도 여행의 좋은 점은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곳을 찾아가는 동안 열심히 멍때리면서 나와 무언의 대화를 하며 날 더 알아갈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