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요즘 "아 좋아!"를 연발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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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길게 이야기 해봐야 의미가 없으니 그냥 요약하면 자유를 발견/얻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긴 버전.
눈치 봐야 할, 신경 쓰이는, 또는 날 관찰하는 인간들과 멀어져서 너무 좋다.
미국에 살고 있다고 해서 ‘너는 너’, ‘나는 나’의 세상을 생각하면 안된다. 회사를 가도 그렇고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살아도 그렇고 멀쩡히 detached house에 살고 있어도 신경쓰이는 인간들은 있고 관찰하려는 인간들은 많다. 도심에 있는 아파트에 살다가 새 주택단지에 오니 귀찮게 하는 인간들이 거의 0으로 줄었다.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다.
난 정말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이가 내 주위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무슨 수가 있어도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거의 95% 이상 즉흥적인 것이 아닌 수도 없이 많은 검토와 명분을 따져보고 하는 것이라 거기에 토를 달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경우 난 너무 힘이든다. 이미 많이 생각해서 결정 내린 것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다 설명해야 한다는 자체가.
‘왜 내 일을 니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냐!’
하는 한마디로 끝을 낼 수 있지만 나란 사람은 참 어리석게도 그 이유를 일일히 설명하는 일부터 하려고 한다. 어차피 이성적으로 이야기해서 말이 통할 인간 같으면 감히 나에게 이럴 수가 없다. 이런 인간들을 내 인적 네트워크에서 거의 다 끊어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그러한 단호함(?)과 노력(?)의 결과이다.
음악을 내 맘대로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아파트에 살고 있던 시절만 해도 층간 소음이며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음악 한 번 크게 들어본 적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온 집안의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도 혹여 소음이 새나갈까 싶어 밖에 나가서 확인한 후에 음악을 들을 정도니까. 방음을 이렇게 잘 해놓을 줄은 몰랐는데, 앰프를 크랭크업해도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리가 거의 없을 정도이니 이 얼마나 기쁜지.
기타와 드럼을 풀볼륨으로 쳐본 것은 학교 다닐 때 이후 처음이다. 감정이 최고조에 이를 때 깔끔하게 플레이되고 있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때의 그 황홀감은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으니까. 또 그 때문에 내가 여태 악기 다루는 것을 그만 두지 않은 것을 여전히 살면서 가장 잘 한 일들 중의 하나로 꼽는다.
가전제품을 모두 한국산으로 바꿨다.
난 미국(산이라고 하지만 중국 OEM인) 전기제품들을 아주 싫어라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주 오랫동안 GE니 Whirlpool이니 그외 듣보잡(?) 미국 전기 제품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냉장고, 세탁기/건조기를 마주할 때마다 ‘아! 너무 좋아!’라는 외침이 절로 나온다. 냉장고가 배달되던 날 밤의 그 행복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정도였다.
원치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주어졌다. 아니 원래 있었던 것을 이제서야 발견했다.
하루 중 아무 때나 집 밖으로 걸어나가면 사람도 별로 없는 넓직한 공원이있고, 날씨는 하루 종일 구름 한점 없이 좋고, 그 가운데 혼자서 멍청히 달리고 있든 꾸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든 내게 한심하단 눈빛으로 이러쿵 저러쿵 하려는 인간 하나 없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왜 이것을 진작에 모르고 살아왔는지. 한밤 중에도 내가 가봤던 그 어떤 운동장보다 큰 루프를 언제든 달릴 수 있다. 100m도 못 달리고 숨이 차서 걸어가든 온전히 한바퀴를 다 돌든 말이다.
모든 것을 내가 관리한다.
아주 작은 돈 한푼, 집안에 굴러다니는 아주 작은 물건 하나, 내 입으로 들어가는 그 모든 것들 모두 다 내가 관리하고 모두 다 내 결정 하에 처리된다. 이 모든 것들이 아직까진 큰 문제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내 선택이 그 누군가의 눈에 한심해보이든 촌스럽든, 빈티 좔좔 흐르든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갈 뿐이다. 애진작에 눈치봐야 할 상대같으면 끊어내면 그뿐. 그래서 나만 행복해질 수 있으면 그뿐.
이 집의 방 4개 중 3개가 놀고 있고, 댄스 교습소를 차려도 될 정도로 거실은 텅텅 비어있지만 (집이 왜 이리 휑하냐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든 말든) 그래도 난 아무 신경도 쓰이지 않고 행복하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러쿵 저러쿵 하기 전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라고 말할 정도의 오지랖도 이제 내겐 없다. 그러든지 말든지.
길게 늘어놨는데, 가장 큰 것은 내가 누군가의 관리/간섭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씩 내 주위에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이들이 스스로 그렇게 지내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면 이젠 뭐라 해줄 말이 없어진다. 그들의 배우자/파트너는 상대방의 욕구/취향을 아주 당연스레 폄하하고 방해하고 간섭하고 모욕까지 한다.
자유를 잃고 신음하는 것도 모잘라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런 인간들의 상대방에 대한 학대는 끊임이 없다. 그들이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오죽하면 20년을 넘게 같이 살아온 사람에 대해서 “…가 죽으면 난…해야지, 그런데 지금은…” 하는 얘길 수시로 할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돈’ 때문에 같이 산다고 한다. ‘돈’때문에 인생의 일분 일초는 그렇게 자유없는 괴로움으로 채워진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택한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