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에서 플레이하기...

내 지인들은 방구석에서 DAW나 가지고 놀고 있는 날 보고 사람들과 밴드를 하지 왜 그러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느냐 한다. 솔직히 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밴드를 한 적이 없다. 한 두 번 기회가 왔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그저 예전 친구들과 정말 간만에 어쩌다 만나면 잠시 몇 번 놀았던 것 밖에. 그나마 결혼을 하고 난 뒤엔 이런 기회는 정말 3-4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이 40이 넘어서도 열심히 밴드를 하고 밴드 경연대회 같은 데도 나가고 있는 분들도 본다.

방구석 밴드 놀이도 그 때 그 때 의욕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시절엔 그 시절 최고의 연주기량을 보이는 이들의 음악을 듣고 배우는 것을 주로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어떤 밴드의 음악을 전체 귀카피를 하면서 그 곡의 구조나 사운드를 어떻게 만들어야 되는가에 관심을 갖을 때도 있고. 그렇게 한참을 지나고 보면 이런 일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되서 그저 어쩌다 가끔씩 옛날 노래들이나 튕겨보거나 두들겨보거나 하는 것만 하게 된다. 그러니까 최첨단의 새로운 것을 열심히 듣고 외우고 하는 것도 다 관심이 없고 큰 그림을 보겠다고 이것 저것 들여다보거나 하지도 않고 그저 가끔씩 예전에 잘하던 것들이나 해보면서 ‘실력이 개판이 되었구나’만 확인하는 정도인거다. 그러니까 다 의욕의 문제인 거다.

2년 전 쯤인가 재미로 사봤던 알리익스프레스발 기타를 동네 사람에게 넘길 때를 떠올려보면 이 분은 나이가 거의 60에 가까와 보이는 분이었는데 친구들과 밴드하러 가는 중에 들른 거라 했다. 기타를 어려서 부터 오래 해왔던 입장에서 보면 그 분이 기타를 만지는 모양새, 말하는 것 등등을 보면 이 분의 공력이 대략 어느 정도이고 그 분이 한다는 밴드가 어떤 소리를 만들어낼지는 그냥 안봐도 4k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특별한 재능이라든가 그전에 잘하던 악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5년이나 했다면서도 튜닝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하고 튜닝을 못하는 수준이면 뭘 하든 그냥 아무리 쉬운 것이라도 한심한 소릴 낼 수 밖에 없다. 악기는 꼭 그렇게 뭔가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럴 거라면 혼자 즐기는 게 답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 소리에도 마다하지 않고 서로 죽이 맞아 모여서 밴드로 한다면 다행이고. 그런 의미에서 난 그 사람의 의욕과 같이 밴드를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내가 드럼이나 베이스를 하는 사람인데 만약 기타가 저 모양이면 같이 밴드하기 싫을텐데’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은 같이 놀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거니까 방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는 나보다 훨씬 운이 좋은 것이다.

잘은 몰라도 그 괴로운 기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밴드를 하는 친구들이란 그들의 실력도 다들 비등비등한 수준이겠거니 한다. 아니면 즐기러 가서 내내 괴로워야 될 테니까. 그래도 그렇게 동기화가 된 것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어차피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밴드도 아니고 돈을 벌려고 하는 밴드도 아니고 모여서 잡담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고 하는 거보단 악기를 해보자 하고 해서 서로 여가를 즐기는 건데 한심한 악기 수준에 튜닝도 못하는 수준이든 말든 자기들만 좋으면 된 것 아닌가?

어제 낮부터 일을 하면서 같은 팀 사람들이 작업해 놓은 한심한 결과물을 보면서 갈아엎고 싶은 생각이 치밀면서 도저히 태도나 실력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다간 이 많은 일을 혼 자 다 커버하게 생겼으니 죽어나겠다 싶어서. 아무리 리드해서 밴드 플레이를 하려고 해도 ㄱㄴㄷ도 안 들어먹히는 이들과 무슨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을 누군가에 말한다면 그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 빈정거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한다.

‘넌 어디가 그렇게 잘났냐?’

‘그럴 거면 왜 거길 다녀, 다른 데 알아봐서 다녀.’

그저 푼돈 벌면서 시간 떼우러 직장 생활이란 거 하고 있는데 또 나도 모르게 의미를 크게 부여했구나 한다. 어쩌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냥 고인물이 되어버린건데 그냥 편히 좋게 좋게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어쩌다 악기를 좀 오래하다보니 밴드를 하겠답시고 나타난, 자기 말로는 밴드를 십수년 했다는데, 계속해서 초보자의 소리만 내고 있는 그런 이들과 어쩔 수 없이 밴드를 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구나 한다. 싫으면 밴드를 나가면 그 뿐인데, 그나마도 하는 게 나으니 나 역시 들러붙어 있는 것이고. 또 더러 어쩌다 밴드에 좀 싹이 보이는 친구가 들어왔다 싶으면 몇 달 못 있다가 나가버리거나 하기도 하고.

그렇게 놓고 보면 나도 그 옛날 학교 밴드 연습실에서 좀 과장하면 24/7 상주하던 복학생 선배들이 떠 오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혹시나 하고 방과 후에 연습실에 찾아가면 이미 건물 밖으로 그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그렇듯 열심히 반겨주면서 새로 들어온 이가 주인공이 되어 실력을 뽐 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시던 선배들.

무슨 노래를 하자고 하든 곧바로 연주가 시작되던 그 밴드. 꼭 그들이 지향했던 칼박의 극강 사운드와는 비록 거리가 제법 많다 하더라도 언제든 그 누구에게든 맞춰 줄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 밴드. 각자의 상황에 따라 라인 업은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언제든 그 자리에서 바로 합을 맞춰볼 수 있던 그 밴드. 그래서 1분이라도 더 즐겁게 놀 수 있으면 되는 그런 밴드.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실력이라든가 장비라든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포기했지만 그래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에서 재미를 찾던 밴드. 어쩌다 공력이 한참 달리는 친구가 나타나도 그 친구가 배우고 활약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그런 밴드.

어느 새 고인물이 되고 보니 일도 그런 식으로 해야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고인물이니까 덜 고인물의 실력없음에 실망하기 보단 그들이 제대로 플레이 할 수 있게 보여주고 도와주는 그런 밴드를 만들어야 되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잘해서 돈을 더 받든 못 해서 잘리든. 어차피 밴드라는 것은 그냥 내 몫을 잘하고 그렇게 조금이나마 보람을 찾고 재밌게 놀면 그만인데 뭘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나란 사람은 혼자 라시이틀을 할 수 있는 세계최강의 독보적인 천재가 아닌데, 그럴거라면 가끔씩 주인공 시켜주는 그런 밴드에서 새로 온 이들도 재미있게 일할 수 있게 분위기 맞춰주며 좋게 좋게 가는 것도 답이 아닐까 한다.

‘넌 태어나서부터 그렇게 잘했냐? 너도 여기 저기서 보고 배우며 오래 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 아냐?’

조용히 일터에서 짐을 싸서 나오게 될 때 까진 어떻게든 그냥 재밌게 놀면 그만인 거다. 기왕에 그럴 거라면 더 신선한 레퍼토리를 찾아다가 더 창의적인 즉흥 연주로 맛을 더 해서 즐기면 그만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