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받기..미련함..

어렸을 때는 지금에 비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 싶다. 신기하게도 무슨 정의파(?) 비슷하게 누군가 규칙을 안지키거나 하면 지적하고 지킬 때까지 괴롭히거나 (그러면서 내적으로 스트레스받고) 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내가 들었던 얘긴 ‘미련하다’였다. 남이 그러든 말든 왜 신경쓰면서 괴로워하냐 이런 뜻이다. 그런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미련한 짓’이란 거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대놓고 법을 어기고 살면서도 멀쩡한 이들이 이 세상에 참으로 많구나 란 것도 이제 거의 모든 국민들이 잘 알게 되고 (사실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이 좋아졌지만) 평생을 착하게 살아와도 국민들이 법을 지키게 하기 위해 국민이 고용한 공무원들이 그들의 권력을 남용해서 멀쩡한 가정을 풍비박산나는 경우도 모든 국민들에게 생중계되기 까지 했다.

나와 같은 소위 어려서는 ‘정의파’였지만 나이들면서 좀 썩은 이들이 이 세상에 한 둘이 아닐텐데 그들이 매일 받고 있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공공의 적’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게 된다.

어렸을 시절에 나에게 ‘미련하다’ 하던 분과 가끔씩 대화를 한다. 난 이제 이 세상에 대해서 더 이상 분노하지 않지만 그 분은 잘못된 뉴스로 세상에 분노하신다. ‘미련하십니다, 이 세상이 뭐라고. 그래도 이런 걸로 분노할 정도면 예전에 제가 분노하던 시절에 비하면 너무 좋아졌는데..’ 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 지금 내가 스트레스 받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늘상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서 한발 떨어지라고 하지 않던가? 문제는 그게 잘 되지 않는 다는 것.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지어는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도 누군가 그렇다고 하면 정말 그렇구나 하면서 분노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너무 허다하니까.

당장 팔지도 않을 주식의 주가로 하루가 즐거웠다가 짜증났다가 하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의 소식에 배아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럴거라면 그냥 즐겁고 그냥 기쁘면 안될까? 어차피 나와 상관없는 허상일 바에는 즐겁고 기쁠 허상만 바라보고 사는 게 좋은 것 아닌가?

그래서 종교가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싶다. 특히나 대한민국 좁은 땅덩어리 위에 그 많은 교회가 있는 것도 우리가 유별나게 스트레스를 잘 받는 이들이라서, 그 정도로 ‘정의파’들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뜻이니까, 다 나를 사랑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야 덜 열받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