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추억..

4k 60p로 촬영이 가능한 동영상 카메라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물론 열심히 들여다보면 스펙만 그러할 뿐 한심하기 짝이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뭘 담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 아닐까?

한심하게도 그 안에 늘상 담기게 되는 것은 사람보단 사건이나 배경이 주가 되는 이상한(?) 촬영 습관을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이 아닌 타인, 주변인, 또 사건이 중심이 된다.

늘상 내 자신은 카메라에 담기는 배경만도 못한 카메라 뒤에 숨어있는 존재로 있다보니 인생 그 자체도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결국 그래서 나는 관찰자의 입장으로 나의 죽음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주인공과 관찰자가 동시에 사라지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주변에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어르신이 있다. 하지만 본인은 노래도 하지 않고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다. 늘상 ‘내가 아는 xxx가’ 어떤 밴드의 맴버이고 누가 공연을 한 것을 촬영했다 라는 이야기만 한다.

자신은 음감이 좋지 않고 …… 수도 없이 많은 이유를 대면서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너무 자주 듣다보면 정말 한심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 역시 내 인생의 기록들을 가끔씩 들여다 볼 때마다 나 또한 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화면에 중심에 나타나는 기록들이 있으면 지우고 싶고, 혹여 타인의 기록에서 등장하는 내 자신도 그 부분만 잘라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난 내가 그렇게 싫은 것일까? 왜?

내가 보기에 못 나지 않은 답답하지 않은 멍청하지 않은 바보 같지 않은 내가 되기 위해서 살아온 것 아닌가?

이제 좀 적당히 하자.

남들이 뭐라든, 내 마음 속의 내가 뭐라고 하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태어나자마자 나로 결정되어 시작되었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인데. 왜 자꾸 나는 나의 관찰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왜 뭔가의 뒤에 숨어있으려고만 하는 것인가?

‘이건 내가 생각하던 나의 모습이 아니야…’

‘아 이것이 나일 수 없어…’

이런 건가?

아이의 어린 시절을 찍어주던 때를 떠올리면 이 아이가 카메라를 신경 쓰기 전의 기록일 수록 더 재미났던 기억이 있다. 슬슬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카메라에 찍힌다고 인식한 뒤로는 스스로의 모습이 싫은지 내빼기 바빴고 행동이나 말도 어색해진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이 아이가 (내가 싫은) 나 같아진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나 그대로의 내 자신일 때 가장 아름답다.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못하니까. 내가 내가 아니려고 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되길 바라면서 살아가는 순간 모든 게 다 어색해진다. 그런데 너무 어리석은 나머지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려고 하다보니 무엇을 하든 늘 어색하고 내 참모습을 싫어하니 삶이 힘들어진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방식으로 표현하려 어설프고.

난 그냥 나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남들이 인정하든 말든 난 그냥 나일 뿐이다. 아무리 내가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다라고 주장해봐야 내 자신이 그 모든 것이 다 의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 때문에 요즘 세상이 시끄러운 것 같다. 내가 내가 아닌 내가 아는 어떤 워너비의 모습이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생각만해도 불행할 것 같다. 내가 싫어서 나를 바라보는 관찰자로 살아가는 것도 행복한 삶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