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아무것도 안하면서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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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연말에 셧다운 하는 회사에 다니기 전엔 31일까지 회사에 나갔단 것 같다. 31일은 대부분 종무식(?) 이런 거 오전에 대충 하고 오후엔 사실 집에 가는 거지만. 그런 거 아마 지금 다 없어졌지 싶다.
셧다운이라는 걸 사실 여기 와서 처음 들어봤고 주변 사람들이 ‘니넨 셧다운 안하냐?’ 하는 말도 들어보고 했는데, 셧다운을 안하겠다 해도 대부분 연말 1-2주는 대부분 아무 것도 안하고 놀았고 셧다운 한다고 하면 1주 더 붙여서 놀았다. 뭘하면서 보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최소한 뭐라도 기록을 남겨놓긴 한 것 같다.
사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살아가면서 뭔가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둔 게 없으면 뭘 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꽤나 긴 여행을 다녀왔어도 찍어놓은 게 없으면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안한 게 되는 거다.
정말 기록을 남겨야 할 만한 순간도 그냥 현상에 겨워서 사진 찍어놓는 것을 잊으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는 거다. 물건이 남는다고 해도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좀 지나면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늘도 이런 저런 것들을 하고 시간을 보냈지만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으니 아무 것도 안하고 보낸 것 처럼 되어버렸다. 따지고 보면 최소한 하루에 뭔가를 한 개 이상은 다 했다만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니 그냥 멀건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조금 더 늙어지기만 했구나 한다.
올핸 살면서 이뤄놓은 모든 기록을 경신하는 새로운 일들이 많이 벌어졌지만 역시나 대단하게 생각하고 기록에 남겨두거나 이야기하지 않으니 전혀 대단할 것 없이 지나간 한 해가 되어버렸다.
한해를 기념해서 상을 주고 이벤트를 하고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좀 알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해야 매년 반복되는 지겨운 삶에서 기억할 거릴 만들어주니 말이다.
코로나 덕택에 가뜩이나 서로 자주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이 1년이 넘도록 얼굴 볼 일이 없다. 명절때면 형제부모가 만나고 뭐라도 모여서 웃을 일도 만들고 같이 음식도 해먹고 해야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거 내 삶에서 다 없어진지 한참이나 지나고보니 그랬던 시절이 그립다. 물론 연휴라고 해봐야 선물 사러다니고 교통 지옥으로 도로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작년 연말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보낸 것은 마찬가지라 아무 것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올해도 또 이렇게 보내면 아무 것도 기억 나는 게 없겠지. 2020/2021년은 내내 그렇게 하는 것 없이 집에 갇혀서 일만하다가 사라져버리지 싶다.
얼른 멀쩡한 카메라나 한대 사야겠다. 폰카가 아무리 좋아져도 사진찍는 데 쓰지 않는다.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