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자는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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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이번의 해프닝에서 내가 얻은 경험은 ‘떠나는 자는 말이 많다’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떠나는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죄책감을 덜고자 모든 문제가 상대방으로부터 야기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단순히 한 두가지 사소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하면 스스로가 ‘못된 년/놈’이 되니까 길게 늘어놓아야 할 수 밖에 없다. 수 많은 결격사유가 있었기에 오늘의 이별이 있었다고 썰을 풀어가야만 스스로 지어야 할 윤리/도덕적인 짐을 덜어낼 수 있으니까.
글쎄 난 이걸로 만나야 된다 말아야 된다 옥신각신하게 되지만 결국 내가 생각하게 되는 건 하나다. 식은 거다. 뭔가 상대방이 뭔가 매력적으로 보여서 이런 저런 현실의 문제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호르몬의 역할이 다 한거라고.
원래 모든 만남이라는 게 서로가 지향하는 인생의 방향이 다르고 성향도 다른 사람들이 서로 한점에 모이게 된 거다. 우연히었든 필연이었든. 그래서 서로가 인생사의 목표와 달리 눈이 맞으면 만남이 지속되고, 그렇게 계속 이어질 수록 각자의 성향과 방향을 발전적으로 수정해서 하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처음으로 돌아가서 따져보자면 아무리 좋은 커플로 발전될 수 있는 이들도 처음엔 서로 ‘맞는’ 상대가 아닐 수 밖에 없다. 아니 그걸 바란다는 것 자체가 세상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다고 할 수 밖에. 그런 사람을 애초에 기대했다는 자체가 착각인 거다.
누가 누군가에게 강렬한 호감을 갖고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는 만남을 이어가서 마음을 열게 되는 것 까지도 매우 낮은 확률로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강렬한 호감으로 만난 두 사람은 각자의 성향/인생 목표를 살짝살짝 수정해가면서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자 노력하는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렸던 ‘강렬한 호감’을 초기 자본으로 해서. 그래서 초기 자본을 다 날려버리지 않고 잘 불려갔다면 또 그 이후레도 잘 불려간다면 오래 오래 같이 지내게 되는 것이고 아니면 각자 갈 길 가게 되는 거다.
나는 여기서 ‘각자가 자기 갈 길을 가게 되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대개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정한 그들 자신은 자신을 위한, 그러니까 현실적인 시각에서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판단을 하고, 또 그 판단이 100% 옳다는 전제하에 현재의 상황과 상대방을 이렇게 저렇게 재단하고 더 이상의 만남이 의미가 없다 선언하게 된다.
나는 이 판단의 기준은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잘 매치가 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죄책감을 느끼기 싫고 또 윤리적/도덕적 잣대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에게 알량한 배려심(?)따위 베풀려는 생각이 있다면 극구 부정하겠지만. 사실상 대체제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면 이런 무모한(?) 결정은 내리지 않는다. 이미 이 판에 들어왔다면 그 누구도 ‘둘’로 있다가 ‘혼자’로 가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수시로 변하게 되어있다. 제 아무리 이성적인 결정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제 밤에는 나에게 이별 선언을 해버린 상대가 너무나도 그리워 밤늦게까지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애초에 갈 길이 확연히 다른 사람이 만났으니 지금이라도 헤어지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기특하게 여길 수도 있다. 좋게 말해 이 정도다.
어차피 둘이 가야할 길이 달랐던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상대방이 내 best match라고 보기엔 갸우뚱한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던 데다가 심한 결격사유가 제법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했었음에도 이별의 단계에 이르면 그게 그렇게도 중요해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이성적인 사고라든가 이별에 대한 필연적인 의미나 해석을 하는 것에 동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매우 강력한 또 다른 요소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호르몬의 약빨이 되었든 (내가 알 수 없지만) 어디서 좋은 상대를 구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든 전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그 결정은 본인 스스로가 아닌 뭔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지극히 이기적이고 사소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단지 지금의 자신만이 이것이 매우 거대한 결격사유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란 거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가 따지는 요소들 중에 50%의 match도 달성하기 어렵다. 그래도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런 게 사람간의 만남에선 그다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인 거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그것을 뛰어넘는 뭔가에 의한 것이지 그런 조건 따위 때문에 의한 게 아니란 거다. 상대가 내게 뭘 해주고 안해주고, 나의 생각을 이해해주고 안해주고와 같은 자질구레 한 것들은 그냥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그 자신은 그것들이 정말로 관계 유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당장에 생각하고 애꿎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 뿐.
그저 상대방에게 ‘싫증’난 이기적인 자신을 어떻게든 감춰보려고 애쓰는 알량한 몸부림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이미 ‘싫증’나 버린 상대방은 자신의 눈에 그냥 찌질한 동네 아저씨/아줌마 그 이상 이하로도 보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말해버리면 그래도 여태 그런 사람을 좋다고 만나왔던 자신도 도매급으로 넘어가버리니 어떻게든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자신이 한심한 ‘속물’임으로 보여주는 꼴이 되는 거다.
결국에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의 인생에서 제법 오랜 시간 지나쳐 간 사람의 하나로 남든, 별 것 아닌 찌질한 상대중에 하나로 편입이 되든 할 뿐인 거다. 그 사람이 잘 살아가든 아니든 더 이상 관심이 있을리도 없는 거고. 다시금 당장 내 인생의 문제들만 눈에 보일테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