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열어볼까나...?

뭔가 마음을 닫고 은둔자처럼 생활하던 시간이 정말 길었다. 때마침 팬대믹까지 왔었고.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났고 내가 갖지 못한 그 사람의 매력에 완전히 허물어져서 난 다시 그 사람에게 나의 모든 것을 열어보였다. 아쉽게도 참담한 결말을 맞고 나선 난 다신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움츠려들려는 시점에 놓여버렸다.

기왕 이렇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잔뜩 멍까지 들게 되었는데, 때가 또 다른 blow를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내 블로그의 타이틀이 blow by blow인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이미 고인이 된 Jeff Beck의 앨범 이름이기도 하다) 살아간다는 것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는, 그렇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그런 것이기에 그렇게 적었지만. 난 인간관계라는 도전에는 몹시도 소극적이었다. 강펀치를 쳐맞고 벌러덩 드러누웠다가 정신이 들면 억울해서 엎어져서 계속 울고 있을 것 같은 내 모습이 떠올라서.

어차피 내가 나를 홀라당 오픈해서 쳐맞고 실신을 하든 말든 갑자기 그런 맛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의 맷집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그냥 내가 원래 내 일도 아닌 일로 바빴으면 좋겠고 내 생활에 아무 관계도 없는 일로 정신없어봤으면 좋겠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 내가 얼마나 뻔뻔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도전해보고 싶고.

그러니까 아주 간단히 말해서 내 “life configuration”에 내가 ‘아무 의미 없다’고 표기했던 checkbox들을 모두 ‘의미 있음’으로 다시 설정해놓고 삶을 살아보고 싶은 거다. 한 번도 그렇게 살아 본 적 없고 마치 그렇게 살면 과부하가 걸려서 사람이 망가지게 되는 거나 아닌가 해서 차마 시도해보지 못한 삶.

이런 와중에 내 블로그에 들렀다가 뭔가 유익한 인상을 받고 갔다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으니 뭔가 좀 힘이 났다. 난 역시 누군가의 인정(?) 같은 게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누군가 나를 ‘찌질해’, ‘별로야’, ‘실수 투성이네’ 하더라도 이젠 그것에 저항하는 훈련을 해보려고 한다. 이를테면 손가락 버릇 때문에 도저히 연주가 안될 것 같은 프레이즈를 꾸역꾸역 이겨내서 마침내는 능숙하게 쳐내게 되듯이 말이다.

또 내가 원하는 바 대로 속이지 않고 마음 껏 얘기해 보고 싶다. ‘쟤 싸가지 없네’, ‘쟤 너무 잘난체 한다’ 하는 소리가 들려도 끝까지 이겨내면서 말이지. 여기에서 밀리면 그냥 ‘미친놈’으로 끝장 날지 몰라도 어떻게든 계속 시도해보는 거다. 이것은 타인들에게 저항 하는 것이라기 보단 지독하게 엄격한 과거의 나를 허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뭔가 ‘착하고 좋은 사람’, ‘착하고 조용한 사람’으로 더 이상 남아있기 싫어서 그런 거다.

‘어차피 안되면 말고…’

어제 동네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만났다. 소위 이 지역에서 잘 나간다고 하는 회사 (FAANG)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다. 링크드인이나 페이스북에 늘 스스로를 과시하는 글을 올리고 있는 사람인데, 그 때문에 다들 이 사람이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다.

2년만에 만났는데 얘길 들어보니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뭐랄까 (이젠 과거의) 연인으로부터 쳐맞아서 KO되어 버린 나보다도 훨씬 불쌍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측은지심이 절로 일어나는 그런 상황. 그러니까 생존을 위해 오로지 회사일에 몰두해 있다보니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은 아예 없는 그런 지경이었다.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회사에서의 목숨부지를 위해 털어넣고 있는 그런 인생. 그럼에도 늘상 불안에 쩔어있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걱정해주는 질문과 대답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회사의 방향이 어떻고 기술 내용이 어떻고를 연발하고 있는 그가 몹시도 신기했다. 에전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행동인데 난 그의 말을 수시로 끊고 들어가서 그가 과연 ‘안녕’한지 계속해서 물어봤다. 왜 사람처럼 살아가기 위한 시도조차 하고 있지 않은지.

반면교사가 되었다기 보단 이런 모습도 내 안에 아직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되돌아보며 또 뭔지 모를 힐링감도 느꼈다. 나처럼 누군가와 눈이 맞아 1년 넘게 두 눈에 하트 문신을 새긴 채로 정신없이 보내다가 갑작스런 이별통보를 쳐맞고 나서는 쓰라린 마음 고생을 할 수 있는 것도 어찌보면 선택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로운 일이로구나 하는 것도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