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술 끊는 것은 좋은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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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재미로 살짝 살짝 마시는 사람이다. 사실 팬대믹 때 나처럼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안다. 난 팬대믹 전에도 사실 집과 회사만 오가며 살았어서 저녁에 약간 알딸딸 해질 만큼만 마시는 걸 즐겼다고 해야맞다. 더구나 미국은 술 값이 꽤 저렴한 편이라 지출이 별로 증가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내려놓은지 보름쯤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내려놓을 생각이다. 이젠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데다가 마시게 되면 득보다 해가 많을 거란 생각부터 들게 된다.
얼마전엔 지인들과 가볍게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나혼자만 마시지 않고 있었다. 이게 예의있는 짓은 아니지만 여럿이 마시는 자리에서 혼자 맨정신으로 있으면 나란 사람이 예전엔 술자리에서 어떻게 얘기하고 있었을지 대충 가늠이 된다. 우선 말 자체가 상당히 엉터리가 된다. 신기하게도 주변에서는 그것을 알아듣고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술자리 참석자들 모두 약간씩 지능이 떨어져서 엉터리로 말하고 엉터리로 알아듣는 그런 주고 받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마침내는 ‘이런 짓을 왜 하고 있나, 그냥 대낮에 맨정신에 즐겁게 할 수도 있는 것을’ 하는 자각이 온다.
대개 아무리 작은 양의 음주를 하더라도 잠을 깊게 자는 것에는 방해를 받기 마련이고 잠 들기 전에도 오래 깨어있게 한다. 또 한 밤에 흥이 돋으면 이것 저거 안 건드리는 것들을 하게 된다. 악기에 미쳐서 rock the night을 해버린다거나 노래를 한참 불러대기도 하고. 물론 당장엔 매우 즐겁다. 뭔가 억압되었던 기분을 풀어내는 느낌이 드니까. 여기까진 좋다.
대개 모자른 수면 상태가 계속 누적되면 머리가 맑지 못하거나 맑지 않은 머리를 어떻게 해보려고 커피도 열심히 마신다. 이게 계속 지속되다보면 사람이 점점 날카로와진다. 타인에게 날카로운 것은 사실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지 않으면. 회사생활을 하더라도 요샌 주로 비대면으로 일하는 일이 많으니까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거다. 문제는 그게 자신에게 향해져서 스스로를 더 몰아부치게 된다. 그래서 온종일 일하게 만든다거나 그런 날이 계속되게 만든다. 과도하게 업적을 이루려고 한다든가 과도한 정신력을 사용하여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고 하는 등의 일 말이다.
자신의 두뇌가 빠르고 문제 해결 능력이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역시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해결하면 웃으면서 끝낼 수 있는 일도 이렇게 스스로에게 강한 부하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는 하고자 하는 일은 매우 빨리 마무리 할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단시일에 얻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스스로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흔히 ‘번아웃’이란 상태가 이런 거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일을 빨리 해결해야 하겠다는 욕심이 과하다보니 원하는 시점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스스로의 능력에 의문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고 또 날카로와지다보니 협업자들의 반응에 과민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일은 짤리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하면 된다. 너무 잘해서 인정받을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나한테 돌아오는 몫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흐르는 대로 살면 된다. 너무 그런 쪽에 휘말리면 남는 것은 피폐한 나의 정신과 내 곁을 떠나가는 사람들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혹해서 늦게 자고 살짝살짝 마시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일단은 좋다. 아침형 인간이고 그런건 다 모르겠고 일단 일찍 눕게 되면 한밤에 감성 타임이 줄어들어 술을 마신다거나 불필요한 활동을 하는 것을 막아준다. 또 늦게 자면 다음 날 언젠가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그게 뭔가 강제되는 시간이어야 되므로 수면의 양이나 질이 떨어지는 거다.
생각해보면 난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뭔가 자리가 잡힌 이후에는 늘 번아웃에 있었던 것 같다. 덕택에 내 주변사람들이 힘들어했는데 그런지도 모르고 살았고. 지금 생각하면 몹시나 미안하다. 그러나 나 역시 별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야근하고 하던 시절엔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었으니까.
요새 일을 거의 절반으로 줄이고 정신력의 절반도 할애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야금 야금 만나고 다니다보니 소위 자존감이란 게 회복이 되고 있다. 나란 사람이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 더 지속해보면 이게 더 단단해지겠구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대낮엔 몹시 좋은 기분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자기 계발이란 것도 하고 싶어졌다. 오랜 취미인 기타를 거지같이 치고 있어도 예전처럼 화가 나거나 창피하거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 있어도 마음의 부담이 생기지 않고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도 당당해진다. 정말로 신기한 노릇이다. 예전처럼 움츠려든다거나 상대방의 반응도 긍정적인 것만 보이다보니 에전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지도 않는다.
여기엔 금주의 효과도 제법 크다. 과도한 업무에 추가해서 내 정신/육체적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었으니까. 물론 매일 같이 일만 죽어라고 하는 사람이 한잔하면서 뭔가 살짝 정상 일과 바깥으로 벗어나는 것 마저 없으면 어쩌면 더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몸과 정신이 덜 피곤하게 만들고 숙면을 취하게 했다면 차라리 더 나았겠지. 생각해보면 나의 선배들 아버지들은 다들 이러고 살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