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방송 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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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 방송 듣는 걸 한동안 즐겼었는데 이번에 끊기로 결심했다. 안 듣기 시작한지는 제법되는데 끊고 보니 역시 효과가 있어서 적어보려고 한다.
요약하면
- 시사정치 프로그램은 평안한 마음으로 들어도 어느 새 나의 분노 게이지를 높인다. 그럼에도 실질적인 변화는 가져오지 못한다. 아쉽게도.
- 가끔씩 어려운 시사용어와 개념을 계속해서 듣으며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보면 그것을 찾아서 이해하는 데까지 제법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해야할 일이 많거나 복잡한 경우에는 이것들이 나의 집중을 크게 방해한다.
- 그런 시사용어와 개념들은 대부분의 나의 일상 생활과는 무관한 것으로 모두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놔누는 것이 맞다.
- 분노는 많은 정신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나를 일찌감치 피로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 정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로 하루를 살다보면 쓸데없이 예민해지고 쉽게 격분하며 불만 투성이가 된다. 졸린 아이가 잠이 들지 못하면 계속 울어대듯이.
- 일단 정신 에너지가 늘 부족한 상태로 살아가다보면 분노/불만의 악순환이 생겨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표출하는 상태에 이른다.
- 분노와 불만의 감정을 타인에게 쏟아내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없다. 내 자신을 잘 컨트롤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후회할 일 만은 하지 말자.
내가 대충 4-5개의 시사/정치 프로그램을 거의 매일 듣고 살았다. 그 이유는 시사에 둔해지지 않고 세상 변화를 읽고 싶은 생각이 첫번째고 두번째는 맘에 들지 않는 정치세력에 대한 풍자/비난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문제는 이게 매일 되다보면 이로 인한 문제가 점점 가중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정치가 주는 스트레스라기 보단 뭔가 집권세력에 대한 혐오에서 나오는 나쁜 기분이 나에게 계속 전이된다는 거다. 세상 흐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계속 듣고 있다보면 절로 분노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사프로그램을 계속 접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도 모르는 새에 집권세력에 대한 혐오를 갖게 되었다는 것과 그 혐오가 그칠 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 어느 새 그것이 중독처럼 되어서 때가 되면 그 방송을 듣고 집권세력의 횡포를 늘 확인해야 할 것 같고, 그들을 징벌하지 못하는 억울함과 함께 혐오의 감정이 솟아나는 일련의 활동이 매일 매일 없어서는 안될 것 같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생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치 이론/공작/음모이론 같은 것들에 취해지내다보면 멀쩡하게 착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도 그런 것이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기 일쑤이고 그로 인해 멀쩡한 인간관계까지 망가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뭔가 내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다 떨어져나가고 없는 거다.
대개 이런 방송을 켜놓고 뭔가를 하고 있는 이유는 조용히 혼자 뭘 하고 있으면 뭔가 허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에 시사용어도 배우고 새로운 소식도 놓치지 않겠다는 목적 때문이다. 누군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으면 덜 외롭고 생전 첨 듣는 용어들을 듣고 이해하다 보면 뭔가 배운 것 같고 뭐 그런 거다. 그런데 그게 내 외로움을 가시게 할 수 없고 나에게 정치외교학 학위를 가져다 줄리 만무하다.
예전 같으면 그들이 떠드는 이야기에 분노했다가 웃었다가 슬퍼했다가 하면서 또 무슨 말을 하나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정작 그렇게 맨날 살다보면 그쪽으로 에너지가 소모되어 정작 내 생활이나 문제는 뒷전이 된다. 아마도 내가 이런 것은 내 자신이 정리해 나가야 할 문제가 많아져서 이기도 하겠지만. 이젠 뭐랄까 새로운 정보의 습득 보다는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들이 한층 심화되고 점점 복잡해져서 짜증만 나는 거다.
차라리 그냥 나가서 누구라도 만나며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해지는 일이다. 그럴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야 사람 소중한 것을 깨닫는 법이니까.
아무리 가족이고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24시간 내내 같이 있어서 옆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서로의 몸을 쓰다듬고 있을 수는 없다. 아마도 그러려고 한다면 그 누구도 질려서 나자빠질 것 아닐까? 혼자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그러다가 만나야 더 즐겁고 좋은 기분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일단 정치 방송 하나만 내 삶에서 덜어내도 난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보다 더 내 자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일도 잘 할 수 있고. 너무 외로워서 정 다급하면 나 자신과 대화하면 된다. 궁금하면 chatGPT에게 물어보면 되고. 좋은 충고가 필요하다면 관련된 유튜브를 찾아서 듣고 또 듣고 하면 되는데, 이것도 자꾸 듣다보면 시간 낭비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아무도 읽지 않을 그러나 나를 위한 글을 차라리 쓰는 게 낫다.
일찍 자고 눈이 떠질 때 일어나서 적당히 산책도 하고 작게나마 커피도 끓여 마시고 나머지는 물로 연명하면서 소소한 삶을 사는 게 가장 적은 정신 에너지를 쏟으며 사는 것 아닐까 한다. 몸을 위해서는 충분한 중량의 무게로 운동해야 효과가 있지만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일부러 과중한 스트레스를 주면 마음의 근육(?)이 강화되기 커녕 오늘 쓸 정신적 에너지가 일찍 고갈 되어 되려 피폐해지는 효과만 난다.
마음이 피폐해지면 스스로에 대한 비난/타인에 대한 분노/정치세력에 대한 분노만 강해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게 적당한 수준이면 모르지만 과해지면 누군가에게 폭발하게 되기도 하고, 스스로의 이미지를 망치기 딱 좋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남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까다롭게 옷도 골라입고 자주 세탁해서 입고 다니는데 마음이 망가져서 표정과 입으로 추한 모습을 보인다면 뭐랄까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사람은 타인에게 분노와 불만을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의 악감정들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도 아니고 두고 두고 후회할 일만 생기게 된다. 불만과 분노가 솟아오른다면 혼자 있을 때 해소하자. 소리를 지르든 샌드백을 치든. 아니면 운동을 해보든. 이렇게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냐 하겠지만 나같은 사람은 여태 수천 수만번을 듣고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천하지 못하며 살았다.
시사에 둔해지는 것도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니 중요한 때마다 요점만 정리해서 듣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