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을 읽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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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너무 심심하고 시간은 많아서 모처럼 책을 읽고 있다. ‘진화심리학’이라는 책. 분량도 엄청나게 많은데 시작한지 얼마 안되고 한국말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진도는 더디게 나가고 있다. 역시 한자를 이용해서 응축해놓은 용어(?)들은 소화가 쉽지 않은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 마냥 불편하다.
이렇게 불편한 문장들을 있는 그대로 다 풀어놓게 되면 엄청나게 긴 문장이 되거나 한 문장으로 안되서 아예 한 문단으로 만들어야겠지.
어쨌거나 난 사람들을 쉽게 이해해보려고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사실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이 더 쉽지 않다. 쉽게 말해서 ‘아니 사람들의 행동이 이렇게 단순한 욕구에서 출발한 것일까?’ 혹은 ‘고작 이걸 이루겠다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일까?’ 하는 것 들이다.
뭐랄까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맛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독특한 인간형을 만나서 새로운 것을 알아갈 때의 기쁨(?)은 사실 진화심리학 책을 읽다가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한 문단 하나를 풀어냈을 때의 느낌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러니까, ‘와 이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런 방법으로 이해를 하고 있네, 정말 놀랍다!’ 하는 경이로움과 ‘글쎄 고작 이걸 이야기하자고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그렇게 써놓을 것일까?’ 하는 실망스러움을 어떻게 비교한단 말인가?
예를 들어, 이미 여성이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이르렀다면 노산을 하기로 맘 먹지 않은 이상엔 더 이상 어떤 생식과 관련된 동기 부여 같은 게 되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보면.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미 출산하기엔 나이가 제법 들었다고 하더라도 좋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면 50대고 60대고 70대 80대 노인까지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한참 동안 그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아주 많이 봐 왔다.
도무지 이 노인 남성들의 행동은 어떤 욕구에서 출발한 것일까? 어차피 생식 기능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여성을 보고도, 그것도 자기보다 나이가 3-40살 넘게 어린 여성을 보고, 그것도 처음 보는 여성에게 대놓고 강렬한 시선을 보내고 그 시선을 떼지 한참동안 못하는 그들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한참 생각해보게 된다. 어차피 그런다고 뭐가 될 것도 아니고 괜히 정신 못 차리고 들이댔다간 큰 낭패를 당할 확률이 100%인데 말이다.
솔직히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될 때마다 같은 남자로 살고 있는 게 창피할 때가 있다. 글쎄 이런 행동은 전혀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나이가 들면 이성이 죄다 사라져버리는 걸까? 나 역시 그 나이가 되면 저렇게 나이가 들었더라도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보게 될까? 생각만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오히려 한창일 때의 남성들이 같은 나이대의 여성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볼 때의 느낌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더구나 결혼, 더 나아가서 출산을 꺼리는 남녀의 비율도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고 들었다. 과연 그렇다면 이런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진화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본성 이런 것과는 머리가 멀어지는 현상인데 말이다. 생존을 위해서 생식을 포기하겠다는 현재의 상황을 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와 같이 살면서 2세를 부양해야 한다는 자체가 생존의 부담이 되는 지경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되어버린 현상을 말이다.
뭐랄까 여성을 생식활동을 위한 상대자라고 바라보기 보단 다같이 생존을 목표로 경쟁하고 있는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든다. 그러니까 내 생존을 위한 한정된 기회를 이들과 공유해야 하는, 더러는 아까운 내 기회를 박탈해가기도 하는 그런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