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성 무드 변화..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환경이나 게절에 따라 감정이 영향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이다. 자신의 기분은 언제나 한결 같다며.

글쎄 얼마나 강인하고 좋은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소유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아서, 내가 기억하는 한 계절에 따른 기분 변화를 겪고 살았고 그게 당연한 것을 알고 있다. 계절 뿐인가 살아가는 장소를 바꾸기만 해도 그에 따른 기분 변화는 늘 있었다. 이루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기분 변화가 당장 침대에 쓰러져 누워서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든가 아니면 좋아서 방방 뛰는 기분이었다가 아니라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에서부터 뭔가 차분해지면서 그동안의 나는 무엇을 했는가 돌아보게 되는 그런 기분 그 정도였지. 일상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다운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날씨가 좀 시원해지니까 차분한 기분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너무 흐리고 추운 겨울 날씨가 지속되었다가 화창하고 따스한 봄날이 시작되면 그냥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앞세대/조상들이 남겨놓은 기록이나 생활 문화들만 봐도 그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은 성정/계절에 따른 무드 변화를 겪은 것임이 분명하다.

또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게 되는 경우, 새로운 곳에서 뭔가 희망을 찾아서 살아가야 하니 강한 동기가 솟아오르는 그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한다. 특히나 전에 살던 곳 보다 온화하고 일조량이 많은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면 당연히 그에 따른 긍정적인 기대감/무드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난 그대로 그렇게 살았다.

슬슬 가을이 시작될 무렵부터 난 여름에 찌운 살을 빼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절식을 했더니 에상했던 키토플루가 찾아와서 2-3일간 멍한 상태였었고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나니 기온이 떨어지면서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고 하니 더워서 정신없던 여름날이 다 갔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뭔가 여름 내내 더워서 정신 못차리며 놓친 것들이 무엇인가 살펴보려는 마음가짐도 생기게 되었다. 뭔가 일도 더 열심히 하고 싶고 내가 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집에 갇혀서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던 팬대믹 시절에도 가을이 되고 나선 어떻게든 밖에 나가서 활동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먼거리를 걷거나 뛰거나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거나 하는 일을 했었다. 그만큼 가을이 되고부턴 나 자신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시작되었고 뭐든 집중하고 계획대로 성실하게 생활하려는 욕구가 솟아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또 그만큼 올 여름도 더워서 정신 못차릴 정도였지 싶고.

흔히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러니 현실에 충실해라)’ 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새삼스럽게 여름에 무얼했나 아니 가을이 되기 전까지 올핸 내가 무엇을 했나, 아니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무엇을 했나 떠올려봐도 별 다른 게 없다. 아니 아무 것도 딱히 한 게 없다. 그래도 난 잘 살아왔다. 뭔가를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래도 뭔가 해야겠다고 스스로 맘 먹고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도 대단하다면 대단한 것이다. 저마다 다들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가겠지.

그냥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이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하는지 평가하지 않고 점수 매기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것의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세상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왔을 뿐. 우린 그냥 살아갈 뿐이다. 살아가야겠으니까 뭔가를 하고 있을 뿐. 그런 뭔가를 찾지 못할 때마다 살아가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될 뿐. 그런 뭔가가 없으면 없는대로 두면 그뿐이다. 그러다가 다시 생겨나면 뭔가를 하면 되고, 계속 없더라도 상관없다. 그냥 살아가면 된다.

오늘도 나는 수 많은 소식들을 읽고 듣고 느끼고 반응한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다. 내가 남보다 못해서 괴롭다는 이야기들이 반을 넘는다. 나에게 발생하는 현상들을 남들이 겪은 것과 비교한다. 스스로 평가하는 것도 자신이고 우열을 가리는 것도 그 자신이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고 모자른 것에 대해서만 억울하게 생각한다. 스스로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나는 잘했는데 타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며 떠들며 살아간다.

그 모든 것을 떨어져서 바라보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다. 그냥 살아있으니까 벌어지고 있는 것들일 뿐. 어떤 기준을 갖다대느냐에 따라 옳기도 틀리기도 좋고도 나쁘기도 할 뿐. 뭔가에 욕심 내면 낼 수록 그것이 내 생각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겨나고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실망하며 더러는 분노한다. 너무 조바심 내지도 욕심 내지도 말자. 그냥 나는 나 일뿐. 내가 가진 것은 그냥 잠시 내가 맡아두고 있는 것일 뿐. 남과 비교해야할 이유도 좋아하고 괴로워해야할 이유도 없는 그런 거다.

다만. 적어도 내 자신과 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기분이 들고 호감을 주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은 바램은 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기에. 하지만 그것에 욕심 내는 것 또한 불필요한 노력과 실망을 줄 뿐이니 내 있는 그대로, 내 가진 그대로를 다 할 뿐이다. 환심을 사기위해 내키지 않는 것에 애쓰지도 말고 싫게 느껴지는 것에 좋다고 할 필요가 없다.